[엄윤상의 세상만사] 계속되는 왕따…직장 내 괴롭힘

2024. 7. 21.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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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는 ‘왕 따돌림’의 준말로, 집단에서 특정 개인을 괴롭히는 현상을 일컫는다. 1990년대에 생긴 신조어인 이 단어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정식 단어로 추가되기까지 했다. 혹자는 ‘왕따’가 중세 ‘마녀사냥’이 현대 사회로 오면서 변형되어 나타난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문명과 이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현상이라는 뜻이다.

‘왕따’가 주로 발생하는 시기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고등학생에 해당하는 사춘기 나이대이다. 즉, 아직 자제력과 분별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또래 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하는 시기에 주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가해자의 지속적인 폭력, 폭언, 비웃음, 모욕 등에 노출된 피해자는 외부와 고립된 채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되고, 심하면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왕따’가 사춘기만의 현상일까.

악몽은 A 실장이 ‘그’의 영업소로 발령받으면서 시작되었다. A 실장은 장애를 가진 그를 시도 때도 없이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가 근무 중 휴대폰을 봤다는 이유로 퇴근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단체 채팅방에서 휴대폰 미소지 관련 투표를 반복적으로 진행했다. 어떤 투표에서는 ‘병신이 따로 없다’며 장애인 비하 욕설을 선택지에 포함하기도 했다. 그를 직접 겨낭해 언급한 것이다.

어느 날은 ‘프린터 부품이 없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면서 애꿎은 그를 윽박질렀고, 때마침 그가 영수증 용지를 들고 있자 ‘왜 지금 창고에 기어들어 가서 그걸 꺼내 가져 오냐’고 타박하였다. 이 모두 함께 일하는 동료와 고객 앞에서 당한 일이었다. 또한, 장애로 인해 이동이 불편해서 혼잡한 출퇴근 시간대를 피하는 유연근무제 사용을 회사로부터 허락받았음에도, ‘왜 이렇게 늦게 출근하냐’며 강제로 출근 시간을 당기기도 하였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그는 회사에 A 실장의 악행을 알렸으나, 회사는 A 실장을 전보 조치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마저도 근무 층만 달라져서 근본적으로 업무 공간이 분리되지도 않았다. 결국 그는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다. A 실장과 회사가 주도하여 그를 ‘왕따’시켰고, 다른 직원들은 이를 방조한 셈이다. 자제력과 분별력이 부족한 사춘기 또래의 ‘왕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직장에서 이런 현상을 막고자 5년 전 소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근로기준법에 추가되었다. 이 법에서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정의하고, 이런 행위를 한 자에게 형벌 등 벌칙을 부과하도록 하였다.

이 법이 시행된 직후인 2020년 노동청에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는 7598건이었으나, 지난해에는 1만5801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고, 올해도 1월부터 5월까지 5개월 동안 5000건 넘게 접수되었다고 한다. 물론 모든 법에는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있기 마련이고 그런 통계적 허수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아직도 하루 30여 건 정도가 매일 접수되고 있다는 건 놀랄만한 수치이다. 법이 제정된들 지키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법이 시행된 지 5년이 지나고 있다. 시행 초기, 그동안 억눌려 있고 참아 왔던 피해자들의 신고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직장 내 괴롭힘의 골이 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긴 흐름으로 보면 5년은 초기에 해당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은 곤란하다. 이제 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각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회사의 사용자, 직장 동료, 관련 당국, 모두 이 법의 제정 취지를 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그’는 말한다. 전쟁이나 재해가 일어나고 있는 장소를 제외하면 ‘왕따’ 없는 곳이 인간 사회에서 가장 평화로운 장소라고.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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