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살것노"라며 운동 가는 언행불일치 어머니 [마흔이 서글퍼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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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한 기자]
"내가 살몬 얼마나 살것노..."
전화하며 오늘도 여전히 익숙한 멘트를 시전하는 어머니다. 어느덧 칠순이 된 그녀는 문득 깨닫게 되는 당신의 나이듦에 기막혀하며 여러 감정을 쏟아낸다.
"벌써 70이라꼬? 하이고 참말로. 언제 시간이 이리 갔뿟노?"
"어머니도 참, 손녀가 낼모레 중학교 갑니다!"
"그라게... 그리 됐네. 인자 맘 편히 갈 수 있것다."
"또 말도 안 되는 말씀을... 근데, 어디세요?"
"응? 요 앞 공원에 걷기 운동할라꼬 가고 있는데?"
'언행불일치'의 어머니는 오늘도 빠짐없이 운동 중이다.
걱정 많은 어머니의 건강관리법
▲ 어느덧 칠순이 된 어머니는 문득 깨닫게 되는 당신의 나이에 기막혀하며 여러 감정을 쏟아낸다.?'언행불일치' 어머니는 오늘도 빠짐없이 운동 중이다.(자료사진) |
ⓒ 픽사베이 |
당신 나이 50대까지만 해도 산을 거침없이 올랐던 어머니는 점점 약해지는 무릎 때문에 고생이시다. 물리치료도 받아보고 주사도 맞아 보지만 효과가 신통치 않아 운동을 시작했다.
매일 집 근처 공원에 나가 트랙을 따라 두세 바퀴를 도는 것인데, 힘들고 귀찮아도 날씨만 허락하면 빠짐없이 운동을 나간다. 앉아있을 때면 무릎 주변의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도 열심이다. 그런 그녀의 무릎은, 젊은이들처럼 뛰지는 못해도 걷는 데엔 아직까지 큰 무리가 없다.
그녀의 대단한 건강관리 성과 중 하나는 고지혈증을 스스로 치료한 것이다. 몇 년 전 건강검진에서 고지혈증 진단을 받은 그녀는 대두와 보리만 갈아서 만든 미숫가루를 2년 동안 매일같이 마셨다.
직접 재료를 수급해 방앗간을 선별해 맡기고, 설탕 한 톨 넣지 않은 밍밍하고 텁텁한 미숫가루를 2년 동안 복용한 것이다. 그 결과, 고지혈 수치를 400에서 100대로 낮추는 데 성공하고 만다.
당신은 고소하고 먹을 만하다고 하는데, 아들인 내가 먹어보니 사실 매일 먹을 정도의 맛은 아니었다. 달콤한 비타민 하나 챙겨먹는 것도 잘 까먹고 귀찮아하는 나로선, 어머니의 2년을 들인 이런 노력이 대단하기만 하다.
고혈압 전조 단계 진단을 받았던 그녀는, 꾸준한 운동과 함께 대부분의 음식에 양파와 같은 각종 야채를 넣어 먹음으로써 고혈압 진단도 무효화시켜 버렸다. 60세가 넘을 때까지 편식을 했던 그녀는, 이제는 요거트와 토마토 같이 이전엔 멀리하던 음식들마저도 챙겨 먹고 있다.
적다보니 어머니가 툭툭 내뱉던 말이 참으로 무색하다. 얼른 가야 된다(?)는 사람이 매일 같이 운동을 가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야채가 얼마 남지 않았다며 걱정하는 아이러니.
비록 내가 인공지능 AI는 아니지만, 이 정도 데이터면 답이 딱 나온다. 아무리 봐도 어머니는 장수할 팔자를 만들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아래 이런 장면을 봐도 그렇다.
"아이 원트 투... 투... 뭐더라? 에이~ 참말로!"
"아무리 외울라케도 안 외와져..."
뭔가 원하는 것을 말하려던 어머니는 원하는 대로 되지 않자 갑자기 화를 냈다. 어제 수십 번을 반복해서 들었던 영어 표현이 오늘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분명 외웠는데 또 까먹었다며 시무룩하게 말하는 어머니의 작은 소망은 멋들어지게 영어로 말하는 것. 아직 영어에서의 유창함이나 멋짐은 조금 부족하지만,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만큼은 멋지기 그지없다.
"와~ 꾸준히 하시네요. 잘 하시는데요? 대단합니다! 정말!"
▲ 치매에 잘 안 걸리는 사람의 특징이라는데, 어머니와 비슷하다. 유튜브 화면갈무리. |
ⓒ 유튜브 굿라이프 |
많은 연구결과에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학습하면 치매가 예방된다고 말한다. 그러는 동안 두뇌가 활성화되고 자기 효능감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어 치매예방에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뜻하지 않게 치매예방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는 셈이다. 어머니의 속상함과는 무관하게 나로선 뿌듯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눈에 띄는 사물들의 숫자를 세고 물건 가격을 암산으로 셈하는 어머니의 습관 역시 두뇌 운동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어릴 때는 당신 혼자 중얼거리는 모습에 의아함을 느꼈는데, 이제는 그 모습에 안도감을 느낀다.
아직은 한참 멀었기를
영어 공부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면 "이제 (갈 때가) 다 됐는갑따~"하며 한탄하는 어머니. 하지만 아들인 나의 수십 년 전 흑역사를 굉장히 세밀한 내용까지 장황하게 늘어놓으실 때면, 어머니의 순간은 아직 한창이라는 확신이 든다.
무슨 그런 사소한 것까지 기억하시냐며 핀잔으로 반박하지만, 달아오르는 얼굴과는 무관하게 마음만은 편안해진다. 스스로를 너무나 잘 관리하는 어머니 덕에 아들은 감사하기만 하다.
"내가 너그들한테 해준 게 없어 미안타..."
"이래 잘 키워 놓으셨으면서 참... 이젠 그냥 건강하게 오래 오래 함께 해주시면 됩니다!"
"내가 더 해줘야 되는데... 말이라도 고맙네."
때때로 순전히 혼자만의 '뇌피셜'로 당신이 자식들에게 해준 게 없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는 당신이 매일같이 가장 큰 유산을 만들고 있다는 걸 모르시는 것 같다.
어머니가 장수할 팔자라 별 수 없이 빈말로 흘려듣는 대답을 굉장히 오랫동안 해야 할 것 같다. 식상하지 않게 다양한 멘트를 좀 만들어둬야겠다.
"여사님의 건강이 가장 큰 유산이지요.", "Long time, we'll see.(오래 오래 뵐게요)", "그대가 있음에 행복합니다." 등등.
그러나 이 모든 감사와 당부의 말이 식상해질 때까지, 어머니께서 우리 곁에 오래 오래 함께 하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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