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무례함 앞에 고개 숙인 이 남자가 씁쓸한 까닭

김종성 2024. 7. 21.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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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tvN <감사합니다>

[김종성 기자]

과거에는 귀족이 주로 농업 대지주와 그 일가족의 모습을 띠었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이들이 주로 재벌기업 총수나 대주주의 모습을 하고 있다. '노동귀족'에게 주의를 돌리기 위한 논리가 재계에서 끊임없이 나오고 있지만, 우리 시대의 진짜 귀족은 뭐니 뭐니 해도 재벌 귀족이다.  

그런 현대판 귀족의 모습이 재벌 기업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 자주 등장한다. 대기업 감사팀이 주 무대인 tvN 드라마 <감사합니다>에서는 부사장 황대웅(진구 분)과 사장 황세웅(정문성 분)이 현대판 귀족을 연기하고 있다.

현대판 귀족
 
 드라마 화면 갈무리
ⓒ tvN
 
그중 부사장 황대웅은 현대판 귀족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다. 일반 임원들과 달리 헤어스타일과 복장에서부터 '심히' 자유분방하고 말투도 거칠고 무례한 그는 '나는 이렇게 해도 돼'라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과시한다. 상대방의 나이를 불문하고 반말하는 모습은 그가 회사 내의 특권층임을 보여준다.

그는 회사에서 발생한 타워크레인 붕괴 사고를 초래하고 은폐한 실질적 몸통이지만, 이에 대해 책임지지 않았다. 일반 임직원에게는 한없이 엄정한 신차일 감사팀장(신하균 분)도 그에게만큼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선에서 마무리할 기회를 제공했다. 신차일 같은 사람도 로열패밀리인 그를 어쩌기 힘들다는 현실적 판단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장면이다.

법적 책임을 지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의 망신을 산 황대웅은 그 뒤 틈만 나면 신차일을 압박하고 훼방하며 함정에 빠트리려 한다. 그런데도 신차일은 항상 정중하다. 황대웅 부류의 인간들은 상대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신차일은 황대웅만 부딪히면 겉으로나마 깍듯이 예의를 표한다. 대기업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일종의 성역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만드는 장면이다.

주로 재벌기업 최상층부에 포진한 우리 시대 귀족들은 상당히 안전한 법적 장치 속에 살고 있다. 회사 내부의 노동자나 외부의 대중이 분노해 폭발하지 않는 한, 이들은 자신들이 관련된 부조리에 대해서까지 책임을 지지 않고 지위를 계속 이어간다. 대표이사 같은 구체적 직함을 갖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대주주의 지위만 유지할 경우에는 법적 책임에서 사실상 자유로워진다.

법적으로 주주는 회사에 대해 유한책임을 진다. 출자한 금액 범위에서만 책임을 지게 돼 있다. 이런 구조는 소액 투자자들에게는 적절하겠지만, 대주주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이를 통해 대주주들은 무한특권과 더불어 미미한 유한책임만 지는 특권층이 된다.

'개미'들에게는 주식이 투자의 의미이지만, 대주주에게는 그에 더해 지배권의 의미까지 띤다. 이런 지배권을 통해 대주주는 자신뿐 아니라 일가족까지 '존귀한 존재'로 만든다. 지분보다 훨씬 많은 특권을 회사 안에서 누리는 이런 특권층이 회사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지분의 범위에서만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이런 불합리는 오늘날 당연한 듯 용납되고 있다. 대주주들은 평시에는 귀족의 특권을 누리며 임직원들은 물론이고 세상까지도 일정 정도 지배하지만, 자기 회사의 불법행위가 논란이 되면 일개 주주로 돌아가 아무런 책임도 없는 듯이 행동한다.

재벌기업 대주주들의 횡포
 
 드라마 갈무리
ⓒ tvN
 
2014년 세월호 참사는 국가권력뿐 아니라 청해진해운에도 책임이 있는 비극이었다. 그해 하반기에 <경제와 사회> 제104호에 실린 지주형 경남대 교수의 논문 '세월호 참사의 정치사회학'은 청해진해운의 책임에 관한 당시의 논의를 이렇게 정리한다.

"배가 복원력을 상실하고 기울게 된 까닭으로는 여객선 차량 적재기준 완화, 무게 중심을 높인 배의 증개축, 화물 과적, 과적을 가리기 위한 평형수 감소, 컨테이너 화물 고박 불량, 선원에 대한 안전교육 및 해양사고 훈련 미실시 등 돈벌이를 위한 해운사의 위험한 선박 운항이 지적되고 있다." - '세월호 참사의 정치사회학' 중에서

이런 책임은 사실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진뿐 아니라 회사를 지배하는 대주주들에게도 귀속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경영진에게는 책임을 쉽게 묻지만, 실질적 지배자들에게는 웬만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 의회에 대한 대주주들의 영향력은 이들에게 극히 유리한 법률 제도를 만들어 놓았다.

지난 2020년 1월에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유병언의 참사 책임을 인정하고 자녀들에게 1700억 원 상당의 구상금 지급을 명령했다. 세월호 책임자에 대한 정부의 구상권이 처음으로 인정된 사례지만, 이는 유병언의 상속인이라는 지위를 근거로 내려진 판단이다. 그렇기에 상속을 포기한 장남 유대균씨에 대해서는 국가가 구상권을 청구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같은 불법행위책임은 '회사 귀족'인 대주주의 책임으로서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2016년 <국제정치논총> 제56집 제2호에 실린 김종철 서강대 교수의 논문 '회사의 본질: 정치학적 해석'은 "세월호 참사와 비슷한 유형의 참사가 대기업에 의해 크고 작은 규모로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지만, 대기업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대주주는 그 참사에 그 어떤 도덕적·법적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며 이런 예시를 든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에서 160여 명이 직업병을 얻어 60여 명이 백혈병·림프종 등의 암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이건희 회장, 이재용 부회장은 물론 임직원 어느 누구도 입건되지 않았다. 그리고 삼성중공업이 태안 앞바다에 기름을 유출하여 생태계를 모두 파괴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 '회사의 본질: 정치학적 해석' 중에서

현대인들은 대통령이란 이름으로 군림하는 독재자에 대해 극도로 민감하다. 특히 한국인들은 이런 독재자의 하야를 외치기 위해 촛불을 들고 언제라도 주말에 광장으로 나갈 채비가 갖춰져 있다.

그에 비해 현대인들은 자신의 일터를 지배하는 독재자와 그 일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둔감하거나 유화적이다. 이들 현대판 귀족들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을 견제하는 논리도 강력하고, 그런 비판을 부자에 대한 옹졸한 마음의 표현으로 매도하는 논리도 존재한다. 이런 분위기도 대중의 귀족 비판에 영향을 주고 있다.

대통령 못지않게, 어쩌면 그 이상으로 현대인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재벌기업 대주주들이다. 이들에 대한 비판이 활성화돼야 우리의 삶이 훨씬 풍요로워지리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드라마 <감사합니다> 속의 신차일 감사팀장이 앞으로는 부사장 황대영 앞에서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일반 임직원의 잘못과 황대영의 잘못을 똑같이 취급하는, 인간이 숨을 쉴 수 있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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