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원 때문에 시흥 수퍼 주인 살해…16년만에 잡은 결정적 증거
“낚시를 자주 다니는 사람이었다.” 16년간 미제로 분류된 경기 시흥 정왕동 수퍼마켓 점주 살인 사건의 실마리는 제보자의 결정적 한마디로 풀렸다. 범행 당시 낚시용 과도를 소지했던 피의자 A씨(40대)는 검거 당시에도 차 안에 낚시용품을 싣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21일 시흥경찰서 등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 2월 ‘2008년 시흥 수퍼마켓 점주 살인 사건의 범인은 A씨’라는 제보를 받았다. “(A씨는) 낚시를 자주 다니는 인물”이라는 등 제보 내용이 구체적이었다. A씨의 비교적 최근 모습이 담긴 사진도 경찰에 제공했다. 그렇게 미제 사건의 실마리가 풀려가기 시작했다.
경찰은 A씨가 시흥에서 머무를 당시 그와 잠시 함께 살았던 지인의 진술도 확보했다. 지인은 경찰에 “A씨는 시흥에 연고가 없고 한두 달 머물렀을 뿐이다”라고 진술했다. 제보자뿐만 아니라 그의 지인 모두 2017년 시흥경찰서 미제전담 수사팀이 제작한 수배 전단에 담긴 모습을 보고 A씨를 지목했다. “이 사람이 맞다”고 모두 입을 모았다고 한다.
경찰은 A씨의 2006년 운전면허증 사진과 폐쇄회로(CC)TV 마스크 미(未)착용 사진 등을 분석해 수배 전단에 담긴 모습과 A씨가 ‘92% 이상 동일인이’라는 감정 결과를 받았다. 통신·금융계좌 기록 추적 등을 토대로 A씨의 동선을 확인한 경찰은 지난 14일 경남 소재 한 주택에서 산책하러 나온 A씨를 체포했다.
A씨는 14일 체포된 이후 16일까지 이뤄진 세 차례 조사에서 범행을 극구 부인했다. 그러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17일 오전 6시 자진해서 면담을 요청했다. A씨는 “내가 (피해자를 흉기로) 찔렀다. 죄송하다”며 “가족들이 살인자 가족으로 지목될까 봐 걱정돼 부인했다”고 털어놨다고 한다. 사건 발생 5700일 만에 A씨는 구속됐다. 법원은 “도주 우려가 있다”며 A씨에 대한 강도살인 혐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A씨의 자백에는 경찰의 설득이 영향을 미쳤다. 유족에 대해 미안한 감정은 없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담당 수사관은 “면담을 진행할수록 A씨의 기가 꺾이는 게 눈에 보였다”며 “계속해서 (자백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 자백과 참고인들의 진술, 감정 결과 등을 토대로 그의 혐의 입증엔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A씨가 범행 시점 전후로 광명과 화성에서 현금을 인출한 내역 등도 보강 증거로 낼 예정이다.
A씨는 2008년 12월9일 오전 4시쯤 정왕동의 한 24시간 수퍼마켓에서 점주 B씨(사망 당시 40세)를 흉기로 살해한 뒤 금품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를 받는다. 당시 경찰은 A씨가 얼굴을 드러낸 채 담배를 구입하는 영상을 확보하는 등 공개 수배에 나섰으나 구체적인 신원 파악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게 16년간 풀리지 않았던 장기미제 사건이 됐다.
이번 조사를 통해서 경찰은 A씨의 구체적인 범행 동기도 확인했다. 생활고로 돈이 필요했던 와중에 들른 수퍼에서 금고에 1만원권 지폐들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단 것이다. 이를 훔치려던 중 잠들어 있던 주인 B씨에 의해 발각되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다만 경찰은 A씨가 범행을 저지르기 이틀 전에 해당 수퍼에 찾아오고 마스크나 장갑 등을 미리 준비했던 점에 비춰 계획범죄 여부도 확인하고 있다.
A씨는 범행 직후 지인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은 뒤 곧바로 본가인 경남 마산으로 도주했다. A씨는 “훔친 돈 3~4만원은 피가 묻어서 버렸고 범행에 사용한 흉기는 대전쯤에서 버렸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피 묻은 옷가지는 진주에서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한다.
경찰은 오는 24일 A씨에 대한 구속 기한이 만료되는 만큼 조만간 그를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 아울러 제보자에겐 신고 보상금 500만원 지급을 검토하고 제보자가 원한다면 스마트워치 지급 등 신변 보호 조처도 제공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A씨의 지난 16년간 행적과 여죄 여부도 확인 중에 있다”고 말했다.
손성배 기자 son.sung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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