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오페라발레, 별들이 선보이는 짜릿한 이 작품…15분간 폭풍우 몰아친다
슈베르트 교향곡 9번 4악장이 흘러나오고 다섯 명의 무용수들이 무대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빠른 스텝과 턴, 점프가 물 흐르듯 이어졌다. 박자를 칼같이 정확하게 타면서도 우아함을 표현해야 하는, 무용수들 사이에서도 '최고 난이도'라고 일컬어지는 그 작품. 미국의 전설적 안무가, 윌리엄 포사이스의 '정교함의 짜릿한 전율' (The Vertiginous Thrill of Exactitude)이다.
2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개막한 파리오페라발레(POB)의 '에투알(etoile) 갈라 2024' 공연 피날레에서 최고 등급 무용수인 에투알 4인과 제1무용수 1인은 작품명 그대로 '정교함'을 뽐내며 관객에게 짜릿함을 선사했다. 무용계 최고 권위의 상인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를 받고 세계 최고(最古)의 파리오페라발레단의 꼭대기에 오른 박세은조차 "에투알에게도 어려운 춤"이라고 했던 바로 그 작품이다.
박세은은 지난해 출산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뛰어난 기량을 뽐냈다. 빠른 스텝이 촘촘하게 이어지는 가운데 수없이 많은 피루엣(회전)과 점프가 있었지만 뭉뚱그리는 동작 없이 교과서처럼 표현해냈다. 동료 에투알인 폴 마르크와의 춤은 역동적이면서도 우아했다. 15분간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안무를 소화해 낸 POB의 무용수들은 거친 숨을 내쉬며 객석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마농의 이야기' 1막 침실 파드되(2인무)에서 박세은은 18세 소녀로 변신했다. 아버지에게 결혼 허락을 구하는 편지를 쓰는 데그리외에게 다가가 펜을 던지며 장난을 칠 때는 개구쟁이 소녀의 얼굴을 하다가도, 격정적으로 데그리외를 껴안을 때는 가련한 처녀의 모습으로 변했다. 동료 에투알 폴 마르크와의 호흡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 박세은에 따르면 폴 마르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느끼는" 파트너다.
2023년 승급한 '신입 에투알' 한나 오닐의 '카르멘'도 큰 박수를 받았다.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을 바탕으로 만든 발레 '카르멘'은 프랑스 안무가 롤랑 프티의 대표작. 롤랑 프티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든 케네스 맥밀런과 함께 드라마 발레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프티의 '카르멘'은 1949년 초연 당시 파격적인 의상과 안무, 헤어스타일로 엄청난 이슈를 만들어냈다.
오닐은 '카르멘' 침실 파드되에서 요염하면서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성 만점의 카르멘을 연기해냈다. 장난스럽게 돈 호세를 유혹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서며 팜므파탈 연기를 제대로 소화했다. 특히 탄탄한 밸런스와 하체 테크닉이 빛났다. 한나 오닐은 박세은처럼 POB에서 몇 안 되는 외국인 무용수 중 한 명이다. 학교도 POB 부설 파리오페라발레학교가 아닌 호주 발레 학교를 나왔다. POB는 외국인 단원을 거의 받지 않는 보수적인 분위기로 유명하다.
기욤 디옵과 록산느 스토야노프의 '들리브 모음곡' 파드되는 아쉬움이 남는다. 디옵은 턴과 점프 착지가 불안했고 몸이 무거워 보였다. 스토야노프의 움직임도 다소 딱딱했다. '세 개의 그노시엔느'에서 디옵은 컨디션을 다소 회복한 듯한 모습이었지만, 지난해 '지젤' 내한 공연에서 보여준 기량에는 미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POB 갈라는 21일은 개막 공연과 동일한 프로그램으로, 23·24일은 9개의 새로운 레퍼토리로 공연을 이어간다. 23일부터 박세은은 '빈사의 백조'와 '백조의 호수' 3막 흑조 3인무에 나선다. 개막 공연에서 큰 환호를 받은 오닐은 '몸짓' 중 '푸른색의 정신' 파드되를 선보인다. 프랑스 안무가 캐롤린 칼슨이 안무한 작품으로, 1997년 초연 당시 현대 무용과 클래식 발레를 섞은 듯한 독특한 안무 스타일로 주목을 받았다.
발랑틴 콜라상트는 '돈키호테'의 '키트리'로 분한다. 발랑틴은 2018년 이 작품으로 에투알이 됐다. 7년차 에투알인 레오노르 볼락이 선보이는 미국 발레의 아버지, 조지 발란신의 '차이코프스키 파드되'도 기대를 모은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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