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란 바로 이런 것" 101번째 소설 낸 日거장의 비결 [도진기 작가 기고]

이영희 2024. 7. 21.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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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장판사 출신 추리소설가인 도진기 작가가 일본 미스터리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의 101번째 신작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 한국어판 출간을 계기로 그와 서면 인터뷰를 했다. 언론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 히가시노 게이고는 ‘미스터리 작가’라는 도 작가와의 유대감으로 이번 인터뷰에 응했다고 출판사 측이 밝혔다. 작가의 요청에 의해 얼굴 사진은 싣지 않는다.

일본 드라마 '신침자'의 한 장면. '신참자'는 가가 형사를 주인공으로 한 히가시노 게이고 미스터리 시리즈의 인기작이다. 배우 아베 히로시가 가가 형사 역할을 맡았다. 사진 TBS


한여름 호화 별장지에서 연속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날의 참극’을 둘러싼 진상을 파악하고자 한데 모이고, 그곳에 ‘가가 교이치로’ 형사가 나타난다. 이 고전적인 정취가 가득한 군상극은,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라는 대작가의 손에서 장르문학의 황금시대를 연상케 하는 정교하고 치밀한 본격 미스터리로 완성됐다.

최신작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북다)의 국내 출간 기념으로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와 서면으로 만났다. 1986년 『졸업』으로 시리즈가 시작된 이래, 한·일 양국의 독자들에게 오랜 세월 큰 사랑을 받은 ‘가가 형사 시리즈’의 12번째 작품이기도 한 신작으로 작가와 이야기할 수 있어 팬으로서 무척이나 기꺼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101번째 소설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한국어판. 사진 북다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는 ‘본격’과 ‘사회파’ 미스터리 장르가 절묘하게 결합한 작품이다. 구상한 계기와 특별히 공들인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지 묻자 작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가가 형사 시리즈 중에서도 『둘 중 누군가가 그녀를 죽였다』와 『내가 그를 죽였다』는 본격 요소가 특히 짙다는 평입니다. 그 계보의 작품을 언젠가 쓰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회파를 의식한 건 아니지만, 리얼리티를 추구하다 보면 현대성이나 사회성이 작품에 반영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등장인물들을 장기 말이 아니라 피가 흐르는 인간으로 묘사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소설을 읽으며 눈앞에서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고 느꼈는데, “피가 흐르는 인간”을 묘사하기 위해 애썼다는 작가의 말을 들으니 역시 노력의 결과이구나 싶어 새로운 감동이 있었다.


"'미스터리란 바로 이런 것' 보여주는 작품"


신작을 직접 정의한다면 어떤 작품으로 소개하고 싶냐는 물음에도 작가는 명쾌하게 답했다. “미스터리란 어떤 소설인가? 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이런 소설이다, 라고 대답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과연, 미스터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들뜰 수밖에 없는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 히트작들. 사진 각 출판사·교보문고


‘포와로’나 ‘엘러리 퀸’ 같은 탐정이 등장해 마지막에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고전 본격 미스터리’는 추리소설을 읽는 이들의 출발점이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등 근래 ‘사회파’, ‘힐링’ 장르 쪽에서 활약한 작가가 이번 작품을 통해 고향으로 귀환한 느낌이라 반가웠다. ‘본격 미스터리’라는 장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작가 또한 변치 않는 애정을 드러내 주었다. “도진기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미스터리의 고향’이라 생각합니다. 때때로 떠올리며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돌아갔을 때는 활짝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곳이죠.”

‘가가 형사 시리즈’에서 특히 흥미롭게 느낀 것은 주인공 가가 형사의 캐릭터였다. 미스터리 탐정은 괴팍한 경우가 많은데, 가가는 겸손하고 예의 바른 시민이다. 그것이 오히려 특이하고 어떤 전형을 깬 것으로 느껴졌다. 이 인물의 탄생 비화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처음에는 학생이라 시리즈 캐릭터로 삼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검도 실력이 뛰어나고 다도(茶道)를 즐기는 설정이라 젊은 사무라이 같은 인물로 조형했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그의 활약을 선보이고 싶습니다”라고 답했으니, 시리즈의 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희소식이다.


'100권 출간'의 비결은 '호기심'


이번 소설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101번째 책이다. 한 사람이 일생 동안 100여 권의 책을 끊임없이 썼다면 그 동력은 분명 특별할 터이다. 100권이 넘는 책을 쓰는 동안 소설가로서 자신을 다잡고 집필에 집중할 수 있었던 노하우를 묻자,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2018년 제작된 영화 '기도의 막이 내릴 때'의 한 장면. '기도의 막이 내릴 때'는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가가 형사 시리즈'의 한 작품이다. 아베 히로시(오른쪽)가 가가 형사 역할을 맡았다. 사진 '기도의 막이 내릴 때' 제작위원회


“저는 미스터리 붐이 한창일 때 데뷔했는데, 1년에 대여섯 편씩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들이 많았습니다. 그중에는 아카가와 지로(赤川次郎) 씨나 니시무라 교타로(西村京太郎) 작가처럼 열 편 이상을 집필하는 분도 계셨죠. 그래서 1년에 세 작품 이상을 쓰는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27살이었습니다. 샐러리맨의 정년퇴직 연령은 60살이니까, 그때까지 계속 쓰면 작품이 100개가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물론 여러 번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죠.”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서는 “새로운 대표작을 쓰는 것입니다”라고 간결한 한 문장으로 포부를 밝힌 작가는 1985년 데뷔 이후 4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여전히 담백한 감성으로 젊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비법에 대한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호기심을 잃지 않고 젊은이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꾸준할 것, 도전할 것, 호기심을 가질 것, 귀를 기울일 것. 자칫 흔한 조언으로 들릴 수 있지만, 오랜 세월 직접 실천하며 그 가치를 입증해 온 작가의 말이기에, 그 세월만큼이나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필자는 『백야행』과 『유성의 인연』을 보고 감탄해, 그걸 계기로 미스터리에 관심을 가져 글을 쓰게 됐다. 그러니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도 히가시노 게이고 덕분인 셈이다. 전인미답의 길을 여는 그의 행보가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기원한다.

판사 출신으로 추리소설을 쓰는 도진기 변호사. 김현동 기자

▶도진기 작가=1967년생. 서울북부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재직하다 2017년 퇴임, 현재 변호사 겸 추리소설 작가로 활동 중이다. 2010년 ‘선택’으로 한국추리작가협회 미스터리 신인상을 받으며 데뷔, 2014년 『유다의 별』로 한국 추리문학 대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연작 ‘고진 시리즈’를 비롯해 『순서의 문제』, 『가족의 탄생』, 단편집 『악마의 증명』 등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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