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 밝으나 대세에 어두워'... 고종 비판
[김삼웅 기자]
▲ 대한제국 고종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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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은 고종과 군신관계이지만 일반적인 상하의 관계와는 크게 달랐다. 그의 상소에 의해 대원군이 퇴임하는 1등 공신이고, 그럼에도 두 차례나 절해고도에 유배를 보냈으며, 자신의 정책에 사사건건 비판·반대했으나 여러 차례 관직을 제수하고 불렀다. 그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여론의 무마용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면암은 보통의 유생 선비들과는 격과 결이 크게 달랐다. 감투라면 소갈 데 말갈 데 가리지 않고 덥석 거리는 관리의 생태가 아니었다. 선비의 선비다움은 진퇴의 모습에서 가른다. 곧 관직에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알고 행동하는 결기다.
선유대원의 칙서를 거듭 사절한 면암은 고향 포천에서 머물고 있었다. 1898년 10월 조정에서는 의정부 찬정에 임명하였다. 오늘로 치면 국무위원급의 고위직이다. 정원이 5명이었다. 면암은 이마져 단호히 거부하면서, 그 이유를 상소문에서 밝혔다. 고종에 대해 이만큼 비판적인 공문서도 찾기가 쉽지 않다.
성상께서는 자질이 순박하고 인자하며 백성을 사랑하고 옛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마음이 외물(外物)에 달리고 성품이 욕심에 습관이 되며, 유약함은 넉넉하나 강단이 부족하며, 작은 일에 밝으나 대세에 어두우며, 아첨을 좋아하고 정직을 좋아하지 않으며, 안일은 알고 노고는 알지 못해서, 30여 년 동안 하늘이 위에서 꾸지람을 내렸으나 깨닫지 못하고 백성이 아래에서 원망하되 돌보지 않아 오늘의 화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만일 성주의 한결같은 마음을 바로잡는 것으로써 병을 고치는 처방으로 삼아, 허물 고치기를 아낌없이 하고 간언 듣기를 물 흐르듯이 하되, 강건한 용기를 기르고 금석이라도 꿰뚫을 정성을 기울인다면 하늘이 돌보고 신이 도울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현재 강한 적들이 틈을 노리고 도망간 역적들이 반란을 도모하고 있는데, 조정에는 의지할 만한 신하가 없고 백성은 터질 형세가 많으니, 임금의 자리는 고립된 데다가 하늘의 뜻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니, 비록 지혜로운 사람이 있더라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면암집>)
당시 조선사회의 지식분자 특히 유림 측은 의암 유인석이 1895년 6월 충북 제천에서 대규모 집회를 갖고 결의한 '처변삼사(處變三事)'가 선택의 방법론으로 제시되었다.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소탕하는 거의(擧義)
고국을 떠나 국외로 가서 대의를 지키는 수의(守義)
의리를 간직한 채 치명하는 자정(自靖)
풀어 말하면, 국난을 맞아 선비들은 ① 의병을 일으키거나 ② 해외로 나가 독립운동을 하거나 ③ 그럴 처지가 못되면 궂은 꼴 보지말고 자진하라는 선택지다.
이와 관련 유인석은 처변삼사가 유교의 의리에 합치되는 이치라고 거듭 설명했다.
이 세 가지가 비록 서로 다르지만(모두가) 사도(斯道)를 위한 뿐이며 그 신체를 깨끗이 하는 데 귀일될 뿐이다. 대저 사도는 지대하고 신체는 지중하니, 사도가 장차 다 하려 함께 신체가 사도와 더불어 함께 마치지 아니할 수 없는 고로 자정수지(自靖守志)는 정당하다.
사도가 장차 상실되려는 것을 참을 수 없으니, 신체가 사도와 더불어 존속하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고로 거지수구(去之守舊)는 정당하다. 사도는 동포가 함께 하는 것이니, 신체가 사도와 더불어 함께 보호되지 않을 수 없는 고로 거의소청(擧義掃淸)도 정당하다. (주석 1)
유인석은 거의나 자정을 택하지 않고 거수를 결심하면서 그 이유를 다시 밝혔다.
자정하는 일은 사도를 위해 순절하는 것이므로 마침이 선에 염정정쟁하며 마음에 지극히 편안하지만 모두가 이것을 따른다면 사문의 여맥이 천지간에 그림자조차 끊어지리니 원통함이 막심하다. 거의하는 일은 위로 나라의 원수를 갚고 아래로 인류를 보호하며 중간에 오도를 부지하는 것이라 마음에 최고로 통쾌하지만 곧 역량이 없으면 공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주서 2)
면암은 유인석이 거의나 자정 대신 거수를 택한 것에 대해, 전우(田愚)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의 좁은 소견으로는 자수(自守)하는 상도(常道)와 시대를 구제하는 권도가 병행하여 서로 어그러지지 않는다고 이를 수 있어 모든 사람들이 눈을 씻고 바라는 기상을 알 수 있을 것이요. 그렇게 되면 이것이 어찌 환란을 나누어 상도로 돌아가는 하나의 큰 기본이 되지 않을 줄을 알겠는가.(<면암집>)
주석
1> 유인석, <소의신편(昭義新編)> 권고, <잡록>
2> 앞과 같음.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면암 최익현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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