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글 첨삭', 빽빽하기도 하여라

권진현 2024. 7. 2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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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극한직업 '연설비서관'의 삶... 책 <대통령의 글쓰기> 를 읽고 느낀 것들

[권진현 기자]

직업과 관련된 책을 즐겨 읽는다. 독서를 통해 스튜어디스, 의사, 간호사,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날 수 있었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는 <대통령의 글쓰기>(강원국 씀)가 기억에 남는다. 대통령의 연설문을 작성하는 연설비서관의 삶은 단조롭고 정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단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극한의 스펙터클한 삶을 살고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문 첨삭 기록. 책에서 발췌
ⓒ 대통령의 글쓰기
 
글쓰기 고수인 저자 강원국은 정작 자신을 '글쓰기에 젬병'이었다고 소개한다. 우연한 기회로 연설비서관이 됐지만, 대통령의 연설문을 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대통령의 빡빡한 일정에는 언제나 연설이 포함돼 있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글을 썼던 저자에게서 치열한 노동자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쓴다. 취미로 쓰는 사람도 있고 전업작가도 있다. 스스로를 '작가'라 일컫는 사람이 늘어나고 신간도서의 발행 또한 넘쳐나지만, 소득과 직업안정성 측면에서 작가들의 삶은 대개 녹록지 않다. 그래도 국가의 부름을 받아 대통령의 연설문을 썼던 저자의 경우 보통의 작가들 보다는 더 좋은 환경에서 근무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은 정확히 빗나갔다. 요즘말로 작가가 모신 두 대통령(김대중, 노무현)의 피지컬이 너무나 강력했던 것. 그들은 국민과의 소통에 진심이었다. 연설문 하나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다. 끝이 없는 독서와 토론, 사유로 무장된 대통령의 마음에 합한 글을 쓰는 것은 애초에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연설관으로 일을 하는 내내 퇴고 지시를 받지 않은 글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대통령들은 글쓰기에 있어서 높은 수준을 요구할 뿐 아니라 '자신의 스타일' 또한 강하게 고집했다고 한다. 같은 내용이라도 선호하는 스타일과 표현, 단어의 선택이 달랐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정확하게 예측함과 동시에 대통령이 가장 선호하는 형태의 글을 써내야만 했다. 이를 위해서 언제나 대통령의 언어로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일종의 빙의된(?) 삶이 필수였다. 

글쓰기에 대한 무게감 또한 컸으리라. 대통령의 연설은 다른 어떤 글보다 영향력이 크다. 그런 글의 초고를 작성하고 수정 요청을 받는 업무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할 것 같다. 매 순간 마감의 압박과 무시무시한 '대통령의 컨펌'을 버틴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글쓰기에 대한 실제적인 조언
 
 대통령의 글쓰기
ⓒ 메디치미디어
 
<대통령의 글쓰기>에는 글쓰기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노하우도 담겨있다. 개인적으로 글을 쓰면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는 '하나의 주제로 글쓰기'이다.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기 일쑤다. 내용이 빈약해서 끝까지 쓰지 못하고 포기할 때도 많다. 

저자는 글쓰기가 일관적이지 않은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잘 쓰고 싶어서'다. 몸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글을 써야 하는데 내용이 아닌 표현에 힘을 쏟는 경우이다. 둘째, '할 이야기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다. 꼭 하고 싶은 이야기, 잘 알고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은커녕 스스로도 공감하기 어려운 글을 쓸 확률이 높다. 

또한 초고 작성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지 말라고 조언한다. 어차피 퇴고를 할 것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일단 쓰는 게 중요하다고. 나의 경우 초고 작성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인데,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이터와 자료의 중요성도 빼놓을 수 없다. 소설가 김훈은 <글쓰기의 최소 원칙>에서 "정보와 사실이 많고, 그것이 정확해야 되며, 그 배열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라고 했다. 단순히 머릿속의 생각을 나열하는 것이 아닌 데이터가 뒷받침되는 글은 설득력과 힘이 있다.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글의 방향을 수정하거나 새로운 영감을 얻기도 한다.

단문 쓰기는 글쓰기의 기본이다. 과감하게 지우고 버리며 짧게 쓰는 연습이 필요하다. 하고 싶은 말을 이어나가다 보면 문장이 늘어진다. 하나의 주어와 술어로 구성된 문장은 간결하고 읽기도 쉽다. 불필요한 장문은 없는지 고쳐나가는 과정은 퇴고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욕심과 성급함은 글의 완성도를 떨어뜨린다. 오래 사유할수록 숙성된 글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시간을 갖고 천천히 퇴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글을 공유하며 의견을 듣는 것도 도움이 된다. 

성공적인 직장생활의 비결

두 대통령을 모신 작가의 책을 읽으며 문득 궁금해졌다. 

'도대체 이 사람은 극한의 노동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연설비서관은 대통령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다. 만약 함께 일을 하는 팀장이 업무적으로 무능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버티기 힘들 것이다. 저자가 연설비서관으로서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상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었다.

두 대통령 모두 글쓰기에 있어서 완벽을 추구했다. 하지만 이는 국민들에 대한 사랑, 국민들과 더 많이 소통하고 공감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인함이었다. 이런 분들과 함께하며 저자는 힘들기도 했지만 누구보다 큰 보람을 느끼지 않았을까. 

실무자로서 직장 상사에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보통 간부급 임원은 실무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가 모신 대통령들은 달랐다. 그들의 박학다식함, 글쓰기에 대한 열정, 국민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열심은 언제나 최고의 연설문으로 이어졌다. 누구보다 탁월한 상사들과 함께했던 연설비서관은 이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다. 

저자는 글쓰기를 억지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힘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는 쓰는 삶을 사랑했다. 그가 쓴 책들을 읽어보면 그 마음이 느껴진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말과 글이 중요하다는 그의 말에 많은 공감이 되었다. 억압과 독재가 아닌 자유와 소통을 꿈꾸며 연설문을 집필했을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이 책은 다양한 즐거움을 준다. 읽는 내내 집필 노동자의 치열한 삶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연설비서관으로서 두 대통령을 향한 애틋함과 그리움이 책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글쓰기를 위한 실제적인 조언도 많다. 이 모든 것들이 딱딱하지 않고 쉽고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다.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말과 글이 아닌 영상이 범람하는 시대, 돈이 되지 않는 독서와 글쓰기가 외면받는 시대에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누구보다 글쓰기에 진심이었던 두 대통령을 보면서, 그들의 열정과 그 열정의 근원을 닮아가고 싶은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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