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1억 들여 정동진 백사장 복원해놓고, 그 위에 주차장을?
[진재중 기자]
▲ 연안정비사업 주차장 설치 전 모래가 복원된 정동진 해변. (2023/8/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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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진 모래해변 위에 설치된 주차장(2024/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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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백사장 위에 콘크리트 주차장이 건설된 것을 보고 해안전문가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공사를 마친 현장은 주차안내 현수막만 걸린 채 영혼없이 서 있다. <모래시계>로 유명한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정동진 해변 이야기다.
지난 18일, 드넓게 펼쳐진 백사장 위에 하얀 콘크리트 구조물이 해수욕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양수산부(아래 해수부)에서 연안정비사업이 잘 되어 아름다운 해변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홍보하는 바로 그 곳이다.
정동진 해변은 매년 겨울철 너울성 고파랑으로 인한 백사장 침식과 레일바이크 철로 유실 피해를 입어 임시복구를 반복했던 곳이다.
▲ 높은 파도로 해변이 침식돼 레일바이크 철로 등이 반복적으로 유실된 지역. (2020/1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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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안침식지역 겨울철 고파랑 내습으로 인해 백사장 유실이 반복되던 해변. (2020/1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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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정동진역을 기점으로 북쪽 해변은 침식이 되었지만 남쪽 해변은 백사장 폭이 늘어나 침식되기 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 해안침식을 막기 위해 잠제(수중방파제)를 설치했다. (2022/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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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진 수중방파제(잠제)공사현장(2023/8/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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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진 해변 연안정비사업을 준공한 해변, 정동진역을 기점으로 북쪽은 침식, 남쪽은 퇴적된 것을 볼 수가 있다. (2024/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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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안가 주차장 74대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다. (2024/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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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만 전문가 "중앙정부-지자체 따로 따로 예산 낭비"
정동진은 관광객들이 차량을 주차할 때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해변이다. 정동진에는 역 주차장과 공영 주차장이 잘 조성되어 있다. 관광 성수기임에도 18일 찾은 공원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더구나 새로 조성된 주차장과 공원 주차장은 100여m 거리에 있다. 공원 주차장에서 아치형 다리를 건너기만 하면 바로 해변이 나온다.
주민들은 지자체 공무원들의 안일함과 편의를 위해 주차장과 시설물 설치를 요구하는 일부 상인들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동진 1리 어촌계장 정상록(80)씨는 "주민들이 해안침식을 막아 달라고 외치며 난리를 치던 게 엊그제인데 모래가 복원되고 나니까 그곳에 주차장 건설을 요구하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한숨을 쉬었다.
▲ 정동진 공원주차장 공원주차장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백사장에 갈 수 있다. (2024/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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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진 해상 전망대 공사. (2023/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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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부에서는 해안침식을 막기 위한 연안정비사업을, 자치단체에서는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시설물을 설치하는 엇박자 행정이 예산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항만 전문가 B씨는 "이곳에 주차장을 만들 계획이었으면 사업 초기에 계획을 세워 이중으로 예산이 낭비되는 것을 막았어야 한다"라며 "중앙정부에서 연안침식 방지를 위한 예산을 들이고 자치단체에서 관광객 편의를 위해 주차장을 건설한다는 것은 중앙정부 따로 지자체 따로 중복 예산을 집행, 예산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정동진 해변 길게 펼진 백사장과 확 트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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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진 해변 모래 고운 모래와 비취빛 해변은 정동진이 자랑하는 자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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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모래시계> 방영 이후 매년 오고 있다는 관광객 임형일(72)씨는 "<모래시계>로 유명세를 떨쳤던 과거의 정동진이 아니다"라면서 "과거에는 소나무 한 그루에서 소중한 추억을 담고 바다 모래 위에서 꿈을 담아 갔는데 지금은 각종 조형물, 시설물들이 정동진의 이미지를 흐리게 하고 있어 안타깝다"라고 인공 시설물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 다른 관광객 김민기(64)씨는 "왜 바다 조망을 망치나. 바다는 강릉시민의 것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사람들이 같이 공유해야 할 자산"이라며 "저런 시설을 하는 것은 소중한 우리 국토를 망가트리는 행위다"라고 지적했다.
<모래시계>로 유명세를 떨친 정동진은 바닷모래가 자원이다. 배 몇 대를 정박하기 위해 조약돌을 묻어버린 심곡항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길게 펼쳐진 백사장과 확트인 바다가 한눈에 조망되는 해변 위에 건축물을 세우는 등 인공 행위를 하는 것은 정동진의 자산을 시멘트 속에 묻어 버리는 것이다.
모처럼 연안정비사업이 잘 되었다고 평가받고 있는 정동진 해변이 강릉시의 주차장 건설로 퇴색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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