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로 긴급대피명령... 뉴스에선 왜 서울만 나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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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기자]
"비 피해 없으세요?"
지난 한 주간 만난 사람들의 인사는 며칠간 쏟아진 폭우로부터 안전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우리 집은 비 피해가 없었지만, 지인들의 일터나 집, 논밭엔 흔적이 남아있었다.
▲ 물에 잠겨 회색빛이 된 방울토마토 전북 익산에 폭우가 내린 9일, 익산시 망성면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재배 중인 방울토마토가 회색빛을 띠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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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로 나가는 길, 보이는 밭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곧게 서있던 작물들이 붕대라도 감은 듯 막대를 박고 끈을 칭칭 감아 작물의 몸을 추켜세워 놓았다. 마을 어르신 한 분이 집으로 찾아오셔서 아이들 먹이라며 커다란 봉지를 들이미신다. 열어보니 폭우 때문에 이르게 거둔 옥수수 몇 십 개가 들어있었다.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렸길래 장맛비에도 잘 버텨주던 농작물이 다 휘청거릴까. 지난 10일, 전북·충남권에 1시간 동안 100mm가 넘는 양의 비가 하늘이 찢어진 듯 퍼부어 내렸다. 기상청이 "200년에 한 번 나타날 수준의 강수 강도였다"라고 설명할 정도로 내린 비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이 200년에 한 번 나타날 강수에 대전 서구 용촌동은 마을 전체가 잠겼다. 폭우로 둑이 무너지면서 마을이 침수돼 27 가구, 36명 넘는 주민들이 한순간에 이재민이 되었다.
지방에는 이렇게 비가 퍼붓는 동안 서울 날씨는 어땠을까. 비 한 방울 보기 힘들었다. 서울 하늘은 눈부시게 맑았다. 이 폭우에 6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됐지만, 뉴스에서는 지방에서 일어난 비 피해 소식을 스쳐 지나가듯 전한 게 전부였다.
18일인 어제, 충남 당진에는 시간당 80mm에 이르는 폭우가 내려 하천 수위가 범람하기 직전까지 차올랐고, 인근 어시장이 모두 침수되었다. 범람할 우려가 높아 하천변 인근 주민에게 긴급 대피명령이 내려졌다. 또 충남 서산시 운산면에서는 산사태로 매몰됐던 80대 할머니 한 명이, 대산읍에서도 침수된 주택에서 주민 2명이 구조되었지만 이 소식을 전한 공중파 영상 뉴스는 KBS 단 한 곳뿐이었다.
▲ 한순간에 섬이 되어버린 마을 지난 10일 새벽 강한 비가 쏟아져 마을 입구 도로가 모두 물에 잠긴 대전 서구 용촌동 정뱅이 마을에서 소방대원들이 주민들을 고무보트에 실어 나르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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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년 전의 일이다. 폭우가 내린 서울 강남역과 사당역 인근에서 배수되지 못한 빗물이 역류하면서 일부 도로가 물에 잠겼다. 성인 발목 높이까지 차오른 빗물은 서울 시민들에게 불편함과 불안감을 가져왔다. 강남역 부근의 이런 물난리는 작년에만 일어난 일이 아닌 것도 안다. 그런데 강남역에서 170km나 떨어져 있는 곳에 사는 내가 그곳의 물난리를 어떻게 알고 있을까.
장마철이 되면 강남역이나 서울 곳곳의 물난리가 특집 보도 돼 듯 방송사마다 다루기 때문이다. 뉴스에서도 SNS에서도 온통 강남역 물난리에 대한 소식을 전하기에 지방에 사는 나 또한 그곳에서 직접 물난리를 경험한 기분이 들 정도다.
미국 사는 지인도, 다른 지역의 비 피해 소식은 몰라도 강남 물난리 소식은 알고 있을 정도였다.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시청자 모두가 서울에만 사는 듯 뉴스가 서울에 초점에 맞춰져 있다는 걸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과거 서울과 지방의 폭우 피해에 대해 보도된 양의 차이는 엄청났다. 한 언론이 비교한 바에 따르면 2022년 8월 수도권에 폭우가 내렸을 때 전국지 기준 보도 기사 수가 6758개, 2024년 7월 충청권에 폭우가 내렸을 때 전국지 기준 보도 기사 수가 1916개였다.
폭우로 인한 똑같은 재난이고, 똑같이 겪은 아픔이다. 하지만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소식은 내 집 앞에 일어난 일처럼 전 국민이 접하는 반면, 지방의 소식은 짤따랗게 잘린 나무토막처럼 전해지는 것 같다.
이런 걸 서울에 살 때는 잘 몰랐다. 내가 사는 곳이 서울이니 모든 게 익숙했을 테고, 어쩌면 그래서 당연한 듯 지냈는지도 모르겠다. 지방에 내려와 지내보니 전 국민이 서울에 살고 있지는 않음을 체감한다. 마을 어르신들이 수술을 하려면 서울의 큰 병원을 찾는 건 당연한 일이 되었다. 어린이 병원이 취약한 지방은 아이들 응급상황이 생기면 더 큰 도시를 찾아가야 한다.
▲ 물폭탄 쏟아진 경기북부 18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에서 소방대원들이 침수된 공장에 고립된 근로자를 구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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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서울에서 손님이 왔다. 충남 우리 집에 머문 후 대중교통을 이용해 평창으로 갈 예정이었는데, 평창으로 바로 가는 고속버스나 기차는 한 대도 없었다. 손님은 서울로 다시 올라가 동서울터미널에서 평창으로 이동해야 했다. 지방과 지방 사이의 연결 고리는 턱없이 부족했다. 대부분의 길은 서울에서 가는 게 가장 빨랐다.
가락농수산물시장만 봐도 그렇다. 전국 곳곳에서 올라온 농수산물은 소비자를 만나기 전 서울에 위치한 이 시장으로 모였다가 중간 유통과정을 거친 후 다시 지방으로 흩어진다. 지인인 화물기사의 말에 의하면, 필요에 따라 가락농수산물시장으로 올라온 과일을 대구나 부산 등 먼 거리까지 운송하는 일들도 있다고 한다.
왜 지방에서 생산한 먹거리가 굳이 서울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퍼져야 할까. 이 방법이 최선인 걸까. 어쩌면 모든 길은 서울에서 가는 게 가장 빠르기에 이런 방식이 선택된 건 아닐까 싶다.
병원, 대중교통, 먹거리. 사소하거나 일상에서 익숙했던 일들에서도 모든 게 서울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게 보인다. 이미 지역 균형은 무너진 지 오래인 것 같다. 정치권에서는 국토균형발전을 이야기하지만, 지난 2월 한 정치인은 "목련 피는 봄이 오면 김포는 서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김포의 서울 편입을 주장하기도 했다. 어쩌면 모두가 서울 시민이기를 강요당하는 요즘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책적으로는 전국이 균등하게 발전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인구 집중을 비롯한 경제, 교육, 문화 등 거의 모든 것들에서 지방은 결국 열외가 되는 느낌이다.
자녀들이 자랄수록 때마다 경험해야 할, 경험시켜주고 싶은 것들이 점점 생겨난다. 하지만 자녀들과 관람하고 싶은 전시나 공연, 놀이시설만 해도 결국 수도권으로 진입해야 해결되는 일들이 허다하다. 공연 관람을 위해 서울을 간다 해도 오가는 시간만 왕복 5시간 정도가 걸린다.
우리 마을에 또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를 검색하니 서울에도 비가 온단다. 과연 이번 비는 어느 지역을 얼마나 할퀴고 지나갈지, 그리고 뉴스는 어느 지역의 상처를 얼마나 보도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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