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중환자 위주·전문의 중심으로 '빅5' 뜯어고친다…의료계는 "적자 감당 못해" 지적
중증·응급·희귀질환 집중하는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
"연간 인건비 최대 1조3000억원 이상 증가" 등 우려도 제기
전공의 절반가량의 사직이 이뤄진 가운데 정부는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시범사업을 9월부터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구조 전환을 통해 상급종합병원이 중증·응급·희귀질환에 집중하는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만들겠단 복안이다. 다만 일각에선 갑작스러운 구조 전환으로 인건비 증가와 매출 감소 등에 따른 병원 경영 악화와 환자 피해 등의 우려도 제기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9일 전날까지 전공의를 채용한 151개 병원 가운데 110개 병원에서 전체 전공의 1만3531명(2024년 3월 기준)의 56.5%인 7648명이 사직 처리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어 오는 22일 시작되는 하반기 전공의 모집과 함께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시범 사업이 9월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정부는 오는 9월부터 3년간 시범사업을 거쳐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을 제도화한다는 계획이다. ▲진료 ▲진료협력 ▲인프라 ▲인력 ▲전공의 수련 5개 분야에 걸쳐 상급종합병원 구조를 전환한다. 사업은 상급종합병원이 중증·응급환자 진료에 집중하도록 '전문의 중심' 병원 조성과 함께 일반병상은 최대 15%까지 줄이고 중환자 비율은 50% 이상으로 늘리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다.
우선 중증·응급·희귀질환에 집중하는 진료체계를 확립한다. 상급종합병원이 중등증 이하 진료 감축을 통해 중증·응급·희귀질환, 심뇌혈관질환, 외상, 고위험분만, 중증 소아 등 필수의료에 집중해 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의료전달체계도 강화한다. 형식적 진료의뢰 제도를 개편해 상세한 의사 소견과 진료기록이 첨부된 전문적 진료의뢰가 이뤄지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중등증 이하 환자는 진료협력 병원으로 회송하고, 필요시 상급종합병원을 대기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강화된 진료 협력체계를 구축한다.
의료 질 제고를 위해 일반 병상은 축소하고 중환자 병상은 확대한다. 시범사업 참여 상급종합병원은 지역 병상 수급 현황과 현행 병상 수, 중증환자 진료실적 등을 고려해 병원별로 시범사업 기간 내(3년) 일반병상의 5%~15%를 감축하도록 할 계획이다. 경증 환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다인실을 2~3인실 또는 중환자실로 전환해 병원의 중환자 진료 역량을 높인다. 의료개혁특위에 따르면 국내 상급종합병원의 일반 병상 대비 중환자 병상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국내 최고 병원 중 하나인 서울대병원도 11.8% 수준이다. 반면 미국 존스홉킨스병원의 중환자 병상 비중은 17%에 달한다.
인력 구조도 전공의의 과중한 근로에 의존하지 않고 전문의 등 숙련된 인력 중심으로 바꾼다. 중증 환자 치료역량 제고를 위해 의사와 간호사에 대한 교육·훈련을 강화하고 전문의와 진료 지원 간호사 팀 진료 등 업무를 재설계하여 전문의 등 숙련된 인력 중심으로 운영하면서 전공의 진료비중은 단계적으로 축소한다.
전공의의 빈자리는 전문의와 진료지원(PA·Physician Assistant)간호사 등으로 메우게 된다. 전공의 10명분을 전문의 3명 정도와 PA간호사로 대체하면 전공의 없이도 진료가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이를 위해 PA간호사의 업무도 공식화한다. 앞서 정부는 지난 3월 이같은 내용을 담은 '간호사 위임 불가능 업무 및 간호사의 진료지원 업무범위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바 있다. 현장에서 업무 범위 등을 놓고 혼선이 일고 불법 진료 등에도 노출된다는 우려가 나오자 이를 보완하기로 한 것이다.
가이드라인은 간호사의 자격(전문간호사·전담간호사·일반간호사)을 구분해 세부 행위마다 수행 가능 여부를 다르게 구분한 것을 골자로 한다. 초음파 검사와 응급상황 심폐소생술, 응급 약물 투여 등은 모든 간호사가 할 수 있도록 하고, 수술 부위 봉합 등은 전담·전문간호사만 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다만 이런 구조 전환이 이뤄질 시 나타날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우선 정부의 복안대로 상급종합병원의 구조가 전환되려면 연간 인건비가 50% 이상 증가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급종합병원이 전공의 비중을 줄이기 위해 고용해야 하는 전문의 수에 따라 연간 인건비로 최대 1조3000억원 이상 추가 지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지난달 20일 건강보험통계연보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등 정부 자료를 토대로 진행한 연구 결과 발표를 통해 이러한 우려를 제기했다. 연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공의는 총 1만2774명으로 인턴 3137명, 레지던트 9637명이다. 전공의는 전체 의사 인력 11만2331명의 11.4%를 차지한다. 특히 전공의의 68.0%인 8687명은 상급종합병원에서 근무한다. 상급종합병원 의사 2만2683명 중 38.3%가 전공의다. 지난 2022년 당시 상급종합병원은 45곳이었다.
정 교수는 전문의 중심병원 전환을 위해 필요한 임금 수준은 최대 1조3674억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의 중심 상급종합병원의 전공의 비중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10~20% 정도가 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그가 활용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022년 발표한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상급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전체 의사는 2만236명이며 전문의는 1만1717명이다. 전공의는 7648명으로 전체 의사의 37.8%를 차지한다. 이 비중을 10%로 줄이면 전공의는 2023명으로 5625명 감축된다는 것이 그의 계산이다.
그는 감축되는 전공의 5625명이 하던 업무를 전문의로 대체할 경우 추가로 투입해야 하는 인건비를 추계하기도 했다. 추계에 따르면 전공의 1명을 전문의 1명으로 대체하면 상급종합병원들은 연간 총 4813억원을 인건비로 추가 지출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전공의 1명이 하던 업무를 전문의 2명에게 나눠주는 게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이 경우 상급종합병원은 전문의 1만1250명을 더 채용해야 하고 연간 추가로 지출해야 하는 인건비는 총 1조3674억원으로 증가한다. 전공의 비중을 20%로 줄이려면 전공의 수는 4047명으로 줄여야 한다. 감축된 전공의 3601명이 하던 업무를 맡을 전문의를 고용해야 하며 이에 따른 추가 인건비는 최대 7298억원이었다.
상급종합병원들이 전문의 중심 병원에 따른 적자를 감당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서울대 의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하은진 서울대 의대 신경외과 교수는 "심평원의 연구용역을 보면 상급종합병원의 경증 외래·입원 수익이 4조3000억원에 이른다"며 "이는 전체 병원 수익의 33%인데, 이를 모두 1·2차 병원에 보내면 적자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건강보험 재정 문제와 현행 환자분류체계의 적합성 등의 우려도 제기된다. 우선 정 교수는 전문의 중심 병원을 제도화하더라도 건강보험이 버티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의료비용이 증가하면 건강보험료율도 높아지기에 30년 뒤엔 국민들이 월급의 15%를 건강보험료로 내야 할 수도 있단 지적이다.
현행 환자분류체계 하에선 중증 의료에 대한 구분이 적합하지 못하단 지적도 나왔다. 대한뇌졸중학회는 최근 현행 뇌졸중의 환자분류체계를 바꾸지 않는다면 뇌졸중 환자 대부분이 구조 전환된 상급종합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한 바 있다. 현행 환자분류체계에 따르면 중증·응급질환인 뇌졸중 환자의 대부분이 일반진료질병군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도 "혈전 같은 경우 다리 쪽에 있으면 응급으로 구분되지 않지만 언제 머리 쪽으로 가 사망에 이르게 될지 모른다"며 "1·2차 병원에서 진료의뢰를 하거나 전원시키는 것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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