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학교 나오면 의대 직행"…日에 이런 고등학교가 뜨는 까닭 [줌인도쿄]

오누키 도모코 2024. 7. 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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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연계(高大連携)'란 단어, 들어보셨나요? 요즘 일본 교육계의 핫한 키워드인데요. 글자 그대로, 고등학교와 대학을 연계한다는 뜻입니다.

고대연계는 상당수 학생이 해당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행태도 있고, 대학 교수들이 연계된 학교에 가서 ‘출장 수업’을 하거나, 고등학교 학생들이 대학에 방문해 교육 받고 실습하기도 합니다. 고등학교 입장에선 학생에게 더 다양한 교육·진학 기회를 줄 수 있고, 대학 입장에선 미래 신입생에 미리 맞춤형 교육을 할 수도 있죠. 저출산으로 학생 수가 줄자 학교들이 신입생을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데, 고대연계도 그런 차원입니다.


의대와 제휴, 요즘 뜨는 이 학교


호센학원 교문 옆엔 졸업생의 대학 진학 실적을 공개하는 간판이 붙어 있다. 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그런데 올들어 고대연계로 주목을 받는 학교가 있습니다. 도쿄에 있는 사립학교 호센(宝仙)학원입니다.

호센학원은 지난 3월 의대로 유명한 준텐도(順天堂)와 협정을 맺었습니다. 협정 덕에 현재 고교 3학년생 중 자격 요건을 갖춘 학생은 준텐도 의학부로 직행할 수 있는 제도가 생겼죠. 내년엔 준텐도를 포함한 일본 국내의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코스를 신설할 예정이에요. 일본도 한국처럼 의대 인기가 높아 학부모의 관심이 쏟아졌죠.

준텐도는 1838년 개교해 의료계 대학으론 일본에서 가장 역사가 긴 명문 사립대입니다. 지난해 입학 경쟁률은 15대1에 달했습니다. 준텐도가 인기가 높은 이유 중 하나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학비에요. 일본의 의대 지망생은 대개 사립보다 국립을 선호합니다. 국립대 의학부의 학비는 약 350만엔(약 3080만원)인 데 비해 사립은 평균 약 3200만엔(약 2억8100만원)이거든요. 어마어마한 차이죠?

준텐도대 의학부 팜플렛.사진 준텐도대 홈페이지


그런데 수도권엔 국립 의대가 도쿄대 등 3곳밖에 없어요. 도쿄에 메인 캠퍼스가 있는 준텐도는 사립이긴 해도 일본 사립 의대 중 두번째로 학비가 저렴하죠. 역사도 깊은 명문이라 지망하는 학생이 많아요. 수험생 사이에선 입학하기 어려운 사립 의대 4곳을 의미하는 '사천왕' 중 한 곳으로 꼽히죠.


'오피니언 입시' 치르는 학교


호센학원도 사실 협정 전부터 이목을 끌던 곳입니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고교와 대학까지 모두 있는 종합학교인데요. 중학교에 들어가면 그대로 고등학교까지 진학 가능한 '이수인터(理数インター)'코스를 운영하죠.

특히 입시가 특이합니다. 다양한 적성과 소질의 신입생을 모집하겠다는 취지에서 필기 전형 외에 자신의 의견을 프리젠테이션으로 보여주는 ‘오피니언 입시’ 등 총 13종류에 달하는 전형을 운영해요. 일본 중학교 중 입학 전형 수가 가장 많아요.

아울러 중고교를 통합한 특색있는 6년 교육과정 덕인지, 호센학원 졸업생 중 도쿄대 등 명문대 합격자 수도 매년 늘어나는 추세랍니다. 교육계에선 명문 의대인 준텐도가 호센학원과 손 잡은 이유도 이 때문으로 봅니다. 준텐도는 지난 4월 약학부을 신설한 등 종합대학으로 발전하려고 하는데, 준텐도의 교육관과 인재상에 맞는 역량 있는 신입생을 확보하기 위해 협력하려 한다는 거죠.

실제로 준텐도는 호센학원을 비롯한 총 36개 고등학교와 연계를 하면서 많은 학생에게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데, 호센학원이 유일하게 ‘계속교(系属校)’ 협정을 맺은 겁니다.

1875년 당시의 준텐도의 옛 모습. 사진 준텐도대 홈페이지


어떤 학교일까 하는 궁금함에 호센학원을 직접 방문했습니다. 지난 13일 열린 학교 설명회에선 총 270건의 예약이 있었고, 가족 단위로 참석한 모습도 많이 보였습니다. 매달 설명회가 진행되는데, 참가자가 작년에 비해 두배 이상 늘었다고 해요. 학부모들은 역시 준텐도와의 관계, 의대 진학 코스에 관심이 높더군요. 설명회에서 후지 하루히데(富士晴英) 교장은 “우리 학교에서의 배움을 통해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미래엔 훌륭한 의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3일 호센학원에서 열린 학교 설명회.후지 하루히데 교장이 준텐도와 손을 잡은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후지 교장을 인터뷰했습니다. 교장 선생님에 따르면 준텐도와 호센학원의 협정은 준텐도가 먼저 요청했고, 호센학원도 의학부와의 연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성사됐습니다. “학생들에게 (준텐도 진학이란) 기회를 줄 수 있는 동시에 우리 학교를 더 성장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판단했다고 교장 선생님이 설명하더군요.

의대 진학 연계 협정 뒤 학부모의 관심이 높아졌지만 오해도 많이 샀다고 합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준텐도 의학부로의 '내부 직행 전형'이 생겼다고 해서 모든 졸업생이 진학 가능한 건 아니에요. 매년 1월 치르는 대학입학공통 테스트(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일정 점수 이상을 얻어야 지원 자격이 주워집니다. 또 협정은 당분간 준텐도에 직행하는 학생은 소수에 그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난 8일 후지 하루히데 호센학원 교장이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물론 다른 학교 학생보다는 더 낮은 점수로도 진학할 수 있고, 앞으로 내부 직행 전형이 확대될 예정이라고 합니다.하지만 다른 학교에선 내신만으로 진학이 가능하거나, 수십명씩 해당 대학에 입학하는 학교도 있거든요. 그래서 학부모 중에선 기대만 못하다며 실망감을 나타내기도 한답니다.

후지 교장은 이런 반응을 솔직히 밝히면서 말했습니다. “단순히 공부를 잘하는 학생을 모아서 의학부 진학 실적을 자랑하려는 건 아닙니다. 의사가 반드시 되겠다는 뜻을 품고 공부하는 학생들과 좋은 학교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준텐도라는 명문 의대의 ‘브랜드’를 빌려 학교를 발전시키기보다는, 높은 꿈을 세운 학생들과 꿈을 함께 키우고 도전하고 싶다는 취지였습니다.

여담입니다만, 호센학원 졸업생 중 한국인 학생이 있었다고 해요. 입학할 때엔 일본어를 전혀 못 했지만 3년 만에 준텐도 의학부에 합격했다고 해요. “이런 아이들은 일한(日韓)의 가교가 됩니다. 평화를 이루는 데엔 교육이 기회입니다.” 취재하다보니 요즘 일본에선 호센학원을 비롯한 많은 학교가 한국 학생을 적극 받겠다는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독자 여러분도 관심 있다면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요?

도쿄-오누키 도모코 onuki.tomok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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