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 휘젓는 큰 손…손정의·올트먼 '탈 엔비디아' 선언 왜
거물들의 손이 인공지능(AI) 반도체 업계를 휘젓고 있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손 마사요시(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등 AI 빅샷들이 ‘탈(脫) 엔비디아’ 프로젝트를 착착 진행하면서다.
챗GPT 개발사인 오픈AI가 새로운 AI 반도체 개발을 위해 사내 전담 팀을 만들고, 미국 반도체 회사 브로드컴과 협력을 논의 중이라고 18일(현지시간) IT전문 매체 디인포메이션이 보도했다. ‘내부 팀 설계 + 브로드컴 협력’은 구글이 자체 AI 가속기 텐서처리장치(TPU)를 개발한 방식이다.
지난해 가을 오픈AI는 구글 TPU 팀 핵심 멤버였던 리처드 호를 하드웨어 수장으로 영입한 바 있다. 구글은 2015년부터 만든 TPU를 외부 판매하지는 않지만 사내 AI 개발과 구글클라우드 일부에 사용하며, ‘엔비디아 독점’에 어느 정도 대안을 지닌 회사로 꼽힌다. 구글 TPU 출신들이 사방에서 이직·투자 제안을 받는 배경이다. 작년 말 삼성전자에 영입된 우동혁 AGI컴퓨팅랩 담당 부사장이 구글 TPU팀 출신이고, 삼성 파운드리 4나노(SF4X) 공정 고객사인 AI 반도체 회사 그로크(Groq) 창업자도 TPU 초기 멤버다.
브로드컴은 네트워크용 통신 칩의 세계 최강자로, 구글의 오랜 TPU 협력사다. 구글의 TPU 설계를 브로드컴이 보완해 TSMC가 바로 생산할 수 있게 하는 식으로 일해왔으며, 특히 인프라 규모 확장에 필요한 네트워크 기술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구글과 브로드컴이 비용 문제로 TPU 제작에서 결별할 수 있다는 전망이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이 와중에 오픈AI가 구글 TPU 출신들을 영입하고 브로드컴과 협력을 논하는 것이다.
샘 올트먼은 비싸고 공급도 부족한 엔비디아 AI 가속기의 대안을 찾기 위해, 투자자를 모아 AI 반도체 설계·제조를 위한 별도 회사를 세우려 했었다. 올초까지 인텔·삼성전자 등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에 골고루 접촉했고, TSMC에는 전용 AI 반도체 팹을 30개 짓자는 구체적 제안까지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지난달 TSMC 연례 주주총회 후 이 회사 웨이저자 CEO는 올트먼의 구상에 대해 “(그의 구상은) 믿기에는 너무 공격적”이라고 발언했다. 지나치게 담대한 구상에 투자자·협력사가 선뜻 나서지 않자, 오픈AI 내부 팀과 브로드컴 협력 등,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그러나 디인포메이션은 올트먼이 외부 투자를 받아 AI 데이터센터와 서버 개발·구축 비용을 충당하고, 오픈AI가 칩 주문량을 약속해 TSMC에서 생산하는 방안은 여전히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또 다른 ‘AI 큰 손’도 움직였다. 지난주 소프트뱅크는 영국 AI 반도체 회사 그래프코어를 비공개 가격에 인수했다고 밝혔다. 2016년 창업한 그래프코어는 한때 세레브라스, 그로크 등과 함께 ‘엔비디아 대항마’로 주목받았으나, 규모 있는 기업용 시장에 진출하지 못했고 영국 정부의 슈퍼컴퓨터 사업도 엔비디아가 따내면서 사세가 기울었다. 이번 인수는 인력 흡수 위주로 헐값에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다.
앞서 지난달 손정의 회장은 일본 도쿄에서 열린 소프트뱅크 연례 주주총회에서 “인간 지능의 1만 배에 달하는 초인공지능(ASI)을 10년 뒤에 실현할 것이며, 지금까지의 사업은 전부 준비운동”이라고 말한 바 있다. 소프트뱅크는 지난 2016년 영국 반도체 지적재산권(IP) 기업 암(ARM)도 인수했는데, 손 회장은 ARM에 대해 “AI 시대를 열어갈 소프트뱅크의 핵심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그래프코어·ARM이 낼 시너지도 주목되지만, 기술 업계에서는 ARM이 GPU·NPU 같은 AI 가속기용 IP를 제공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미지수라고 본다.
거물들의 AI 반도체 프로젝트가 메모리 시장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올트먼은 지난 1월 방한해 삼성전자·SK하이닉스 경영진을 만났고, 지난달 미국에서 최태원 SK 회장을 다시 만났다. AI 반도체에 사용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는 SK하이닉스·삼성전자·마이크론이 생산하는데, 오픈AI 등의 자체 AI 반도체 개발이 실현될 경우 HBM 수요도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이들의 AI 칩 독립에는 수년이 걸릴 수 있고, 엔비디아 GPU의 지배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게 외신들의 공통적인 분석이다. 테크인사이트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지난해 데이터센터용 AI 가속기 점유율은 98%에 달한다.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뱃속 아이는 소리 못 듣는다…“태교는 사기” 갓종관 일침 | 중앙일보
- "한국인 거절한다" 일본 식당 발칵…트위터서 1300만이 봤다 | 중앙일보
- "친가는 핏줄 의심한다"…외할머니가 용돈 더 주는 이유 | 중앙일보
- 영상 찍다가 '미끌'…30만 인플루언서, 협곡 아래로 떨어져 사망 | 중앙일보
- "성심당 같다" 천안 시민도 엄지 척…매출 251억 찍은 그 빵집 | 중앙일보
- "이 학교 나오면 의대 직행"…日에 이런 고등학교가 뜨는 까닭 [줌인도쿄] | 중앙일보
- 김시우 238야드 디 오픈 17번 홀에서 홀인원 | 중앙일보
- "연진이 죄수복" 중국만 조롱했나…한국 단복 반전 평가 나왔다 | 중앙일보
- 필리핀 여친 임신에 잠적…"유부남 아냐" 한국 남성이 한 해명 | 중앙일보
- 견인 경쟁에 신고자도 치고 갔다…죽음까지 부른 레커차 논란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