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좋으라고 재판 늦추나 [‘할말 안할말’…장지호의 ‘도발’]

2024. 7. 2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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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꼽기가 힘들 정도로 재판 지연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나 사회적 관심이 큰 정치인 재판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2018년 6월 지방선거와 관련된 ‘문재인정부 청와대의 하명수사 의혹 사건’의 1심 선고 결과가 2023년 11월 송철호 전 울산시장, 황운하 국회의원 각 3년 징역형으로 나왔다. 울산시장에 당선된 송 전 시장은 임기를 다 채운 뒤 이미 퇴임했고, 황 의원도 임기를 다 채우고 22대 국회에서 다시 여의도에 입성했다.

정의기억연대 후원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고 항소심에서도 징역형을 선고받은 윤미향 전 의원은 대법원 상고를 기다리면서 4년 임기를 다 채웠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아들에게 허위 인턴 증명서를 발급해준 혐의로 기소된 최강욱 전 의원은 대법원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돼 국회의원 임기를 80% 이상 채운 시점에 의원직을 상실했다. 2020년 1월 기소된 이후 3년 8개월 만이다.

조국 대표의 경우 1심 선고까지 3년이 넘게 걸린 후 의원 신분이 됐으니, 22대 의원 임기를 충분히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재판 지연 수혜자의 끝판왕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공직선거법 위반,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백현동 용도 변경 특혜, 성남FC 후원금 등과 관련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지만 선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사건을 담당하던 판사가 ‘조선시대 사또’를 언급하면서 중간에 사임했다. 이런 시간표대로라면 다음 대통령 선거 전에는 어떤 결론도 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비단 정치인 재판만이 아니다. 대법원과 각급 법원의 국정감사 자리에서 재판 지연 문제는 여러 차례 지적됐다. 일반 국민은 원고든, 피고든 재판 지연으로 생업에 고통을 겪고 있다.

재판 지연 원인은 복합적일 것이다. 법조일원화에 따른 법관의 고령화, 잦은 인사 이동과 사무 변경, 빈번한 기일 변경과 연기 등이 꼽히지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10년째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법관 숫자다.

변호사 증가에 따른 적극적인 분쟁의 증가로 사건 접수는 늘고, 변화된 시대에 따라 사건 내용은 복잡해져 법관의 업무량은 많아졌는데 담당 법관 수는 제자리다. 판사 1인당 맡은 사건 수가 2010년 대비 2020년에 7.4% 증가했다니 사건 처리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할 가장 빠르고 쉬운 길은 판사 수를 적정 수준으로 늘리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21대 국회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이 적극적으로 입법을 요청한 판사정원법 개정안(이른바 법관증원법)이 폐기됐다. 재판 지연으로 재미를 본 의원들이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22대 국회에서도 통과된다는 보장이 없다.

강민구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퇴임하면서 AI 기반의 분쟁 해결 시스템을 도입해 법원 효율성을 높이고 법률 시스템 전반의 혁신을 촉진할 것을 주문했다. 오죽하면 AI까지 등장했겠는가.

야근을 밥 먹듯 하던 故 강상욱 판사가 사무실의 컴퓨터가 켜진 채 숨졌을 때, 업무 수행 중의 사망으로 인정돼 순직 판정을 받았다. 지금도 수만 쪽 기록을 꼼꼼하게 검토해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하려는 판사들이 생명의 위협을 넘나드는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판사의 희생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하루빨리 그 수를 늘려 재판이 상식적인 일정대로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몇 명 정치인만을 제외하고 모든 국민이 바란다.

[장지호 사이버한국외국어대 총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8호 (2024.07.10~2024.07.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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