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아내와 함께 산 ‘에른스트’ ‘달리’ [유경희의 ‘연금술의 미술관’]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시대의 경이로운 예술은 바로 20세기 전반기의 다다와 초현실주의다.
초현실주의는 세계를 전쟁이라는 끔찍한 학살로 내몬 기존 체제에 반기를 든 운동으로써 이성과 합리주의의 이면에 도사린 광기와 부조리를 목도하고 인간 무의식에 천착했던 양식이다. 초현실주의가 그토록 나를 자극하고 고무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무엇보다 초현실주의자들의 사랑 때문이다. 그들의 사랑은 초현실주의 강령 혹은 모토와 정확히 일치했다. 시쳇말로 거침없이 충동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사랑했다.
초현실주의의 대표적인 시인 폴 엘뤼아르는 자신의 아내 갈라를 절친인 막스 에른스트와 공유했다. 에른스트가 무심코 아내에게 “나는 갈라만큼 당신을 사랑한 적이 없어”라는 말을 던진 후 부부는 갈라섰고, 엘뤼아르·갈라·에른스트의 기이한 삼자동거가 시작됐다. 갈라는 두 남성과 공공연히 섹스를 했다. 엘뤼아르는 갈라보다 에른스트를 더 사랑한다는 말로 자신의 상황을 무마했고 용인했다. 진정 엘뤼아르는 양쪽 다 사랑했지만, 그러기에 이 삼각관계는 늘 긴장 상태에 있었다. 아마 그런 긴장 상태가 예술 창조의 동력이 됐을 터. 이후 엘뤼아르는 갈라를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에게 소개시켜줬고 둘만의 시간을 가져보라고 권유했다. 엘뤼아르는 갈라가 떠난 지 반년 만에 자기 아내를 달리에게 빼앗겼음을 인정하고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했다. 그 후 엘뤼아르는 모델이자 연극 배우였던 누쉬와 결혼했는데, 그녀를 피카소와 공유했다. 피카소를 굉장히 좋아했던 엘뤼아르는 그녀를 자연스럽게 피카소에게 소개했고, 피카소에게 누쉬의 애인이 될 것을 수차례 권하기도 했다.
엘뤼아르 부부는 피카소와 함께 바캉스나 여행을 떠나기도 했는데, 한번은 엘뤼아르가 호텔에서 매춘부와 즐기는 동안 피카소와 누쉬는 밖에서 그를 기다린 적도 있다. 엘뤼아르의 자유분방한 행동의 무의식에는 무엇이 깔려 있을까?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메커니즘? 그러니까 권력을 가진 남자가 탐하는 여자에 대한 성적 판타지를 갖고 있었던 것일까? 실제로 엘뤼아르는 피카소 같은 천재 화가이자 유명인이 자신의 아내와 성적인 유대관계를 맺는 것을 영예롭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엘뤼아르는 죽을 때까지 첫 여자인 갈라를 잊지 못했다. 매번 편지에 ‘영원히 당신의 것인 폴 엘뤼아르’라고 쓰며 여전히 그녀를 가장 최상의 성애 대상으로 간주했다. 종종 두 남자에게 점령당한 갈라를 상상하면서.
영국인으로 1928년 파리 초현실주의 그룹에 합류한 롤런드 펜로즈(1900~1984년)의 연애사도 주목할 만하다. 부친이 보내주는 충분한 돈으로 생활했던 그는 대담하고 까다로운 초현실주의 시인인 발랑틴 부에와 사랑에 빠졌고 결혼했지만, 통상적인 성교가 불능했던 발랑틴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부부 사이는 오래도록 감정적으로 틀어졌고 결국 이혼한다.
이혼 후 펜로즈는 막스 에른스트의 파티에 참석했다 금발에 파란 눈의 모델이자 사진 작가인 미국인 리 밀러(1907~1977년)를 만난다. 밀러는 미국 초현실주의 사진가 만 레이의 연인이었다. 그녀는 아직 유부녀였지만 펜로즈와 연애를 시작했다. 40년 동안 이어질 관계의 시작이었는데, 그 기간 내내 그들은 언제나 서로에게 충실했다. 그러나 그 충실함은 일반적인 사람의 충실함과는 달랐다. 각자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자유롭게 연애를 하지만, 결코 비밀로 하지 않는다는 것! 펜로즈와 밀러는 남녀 사이 기묘한 관계의 기류가 형성되는 파티와 모임에 참석해 썸을 타며 즐기곤 했지만, 서로를 향한 깊은 사랑은 결코 퇴색되지 않았다.
1939년 이집트 남편과 이혼한 밀러는 펜로즈와 결혼한다. 이 진정한 연인들은 함께 런던 외곽 햄스테드에서 살게 됐지만, 독일의 런던 공습으로 펜로즈는 공습 감시원이 됐고, 리는 종군 사진기자로 일하게 된다. 전쟁 기간 동안 리 밀러는 미국 사진기자와 연애를 했다. 물론 펜로즈의 찬성 아래 이뤄진 일이었고, 햄스테드 저택에서 셋이 함께 지내기도 했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리 밀러는 ‘보그’지 소속 종군 사진기자로 유럽 대륙 여기저기로 파견돼 수많은 사진을 남겼다. 그녀는 히틀러의 뮌헨 아파트 욕실에서 군화를 벗어놓고 목욕 중인 자신의 모습을 남겼는데, 얼마나 기발한 감각을 지닌 예술가인지 가늠하게 한다.
이처럼 전쟁과 혼돈과 비참의 시대, 초현실주의의 창시자 앙드레 브르통도, 그들의 친구였던 피카소도 파트너를 바꾸어가며 러시안 룰렛 게임 같은 짜릿한 사랑을 했다. 어떻게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었을까? 주지하듯 그들은 다다의 정신을 물려받은 초현실주의 모토를 현실화한 사람들이다. 이제 초현실주의자들은 기존의 구속과 제약, 관습과 권위를 파괴하고, 어떤 정치적 이상도 없이 오로지 자유를 실현하기로 다짐한다. 그 자유라는 것은 아버지 없는 삶, 더 이상 아버지를 본보기로 하지 않는 삶, 아버지의 경력과 성공을 답습하지 않는 삶 즉 자유분방하고 방탕하고 저항하는 삶이었다.
더불어 초현실주의자들이 전쟁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은 그들의 절박한 사랑에 대한 심리적 사유가 된다. 죽음 앞에서는 생존만이 중요하다. 전쟁 중의 생존은 풍전등화요, 일촉즉발이다. 이 시기에 사랑과 섹스는 스스로의 생존을 보장하고 연장하는, 가장 생물학적인 동시에 정신적인 수단이었을 것이다. 삶 충동과 죽음 충동이 동전의 양면처럼 극명하게 드러났던 시대의 사랑이었다는 말이다. 불안과 두려움과 공포 앞에서 정연하고 정숙하고 도덕적이고 타인을 고려하는 사랑은 불가능하다. 아마도 그들은 유일하게 살아 있음을 생생하게 증명하는 일로써 사랑과 섹스를 창조했으리라. 메멘토 모리하고 카르페디엠하라!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8호 (2024.07.10~2024.07.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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