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없는 삶, 이렇게 가능합니다
[월간 옥이네]
전기 없이 산다는 건 어떤 걸까? 날이 더워지는 여름이면 에어컨부터 찾고, 겨울엔 보일러, 난로, 전기장판 같은 난방기구를 찾는 게 일상이다. 우리는 이를 풍요로움으로, 번영한 현대사회의 당연한 모습으로 여긴다. 여가 시간을 보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 텔레비전, 등이 몸의 일부와 같은 요즘, 전기 없는 삶이란 쉽게 가늠이 되지 않는다. 온통 전기로 굴러가는 세상이지만 전기를 덜 쓰고 살아볼 순 없는 걸까?
생태적 삶을 지향하며 전기 없는 삶을 실천하고 있는 이가 충북 옥천에 있다고 해 만나봤다. '전래놀이'로 옥천 안팎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아자학교 고갑준 대표다. 국내 최초 비전력 놀이공원의 문을 열기도 한 그를 만나 그의 전기 없는 일상을 살펴봤다. - 기자 말
▲ 아자학교 대표 '아자쌤' 고갑준씨. |
ⓒ 월간 옥이네 |
아자학교 대표 고갑준씨와 학교 중앙에 있는 다실에 나란히 앉았다. "열흘 전 중고로 사 왔다"는 에어컨이 눈에 띈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독특한 향이 나는 목련차를 준비하며 그가 말한다.
"원래는 에어컨을 둘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방문하시는 분들이 너무 더워서 힘들다고 말씀하셔서 공용공간에만 설치했죠. 제가 생활하는 공간엔 아직도 달지 않았어요. 이 목련차도 옛날 같으면 불로 때서 물을 끓였을 텐데 지금은 전기로 편하게 할 수 있죠. 우리는 전기 없이 살기 힘든 세상을 살고 있는 듯해요."
아자학교 개소 후 20여년 간 에어컨을 두지 않을 만큼 전기 사용을 최대한 피하는 삶을 살고 있는 고갑준씨. 그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과거로 돌아간다.
충청남도 연기군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자신이 10살 때 동네에 전기가 들어왔다고 했다. 그 이후론 아궁이에 불 땔 필요도 없고, 호롱불도 필요 없는 세상이 됐다. 하지만 그의 삶은 그가 10살이었을 무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루 열기가 오르기 전 일찍 일어나 일을 하고, 해가 땅을 달구면 직사광선을 피해 그늘로 들어간다. 부채 바람으로 땀을 식히고 찬물로 몸을 씻는다. 겨울엔 옷을 두껍게 껴입고, 난방은 옛날 방식 그대로 아궁이에 불을 땐다.
"에어컨을 쓰지 않으면 덥긴 하죠. 하지만 이게 자연스러운 거예요. 우리 삶에 에어컨이 들어온 지 이제 겨우 30~40년 됐어요. 옛날에 우리가 전기 없이 살던 방식, 제가 10살때 살던 방식 그대로 살면 돼요. 더위를 버티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고 거기에 맞춰 사는거죠."
▲ 아자학교의 모습. |
ⓒ 월간 옥이네 |
50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에게 당연하게 여겨지던 생활양식은 '전기 보급' 이후 불편한 과거가 됐다. 그에 따라 놀이문화도 급격하게 변했다. 마을 곳곳에 모여 즐기던 비석 치기, 자치기, 딱지치기, 공기놀이 같은 전래놀이의 자리를 스마트폰이 차지했다. 편해진 만큼 에너지에 의존하게 됐고, 세상도 빠르게 변해 갔다. 급속도로 발전한 우리나라 경제와 환경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굴뚝으로 일어선 나라예요. 1980년대에 저는 공장에서 일했는데, 그때 진짜 숨을 못 쉴 정도로 공기가 좋지 않았죠. 그런데 아무도 매연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어요. 환경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던 시대였던 거죠."
그때 보고 느낀 것이 "이대로 가면 다 망한다"는 것이었다. 어디 공장 굴뚝뿐이었을까? 고개를 돌려보니 우리는 어디서 무얼 하든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 그로 인해 훨씬 편리한 삶을 영위하게 된 건 분명하지만 그 결과로 따라오는 생태 파괴는 그에게 큰 걱정거리가 됐다. "전기 없이 사는 방법은 없을까?" 그렇게 떠오른 고민을 그는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전래놀이를 연구하는 그가 비전력 놀이기구를 개발하게 된 배경이다.
"전기를 쓰지 않거나 줄이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환경 문제에 관해선 답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삶이 가능하냐는 질문도 많이 들었어요. 놀이라고 하면 롯데월드 같은 유원지를 많이 떠올리잖아요? 그래서 전기 없이도 충분히 재미있는 놀이기구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만든 게 비전력 놀이공원, 아자랜드죠."
▲ 아자학교의 모습. |
ⓒ 월간 옥이네 |
'편리'에 중독된 사회
최근 고갑준씨는 아자학교 손님이 느는 여름방학을 대비해 학교 공간을 정비하고 있다. 매일 아침 그의 일과는 보도블록 사이로 자란 풀을 제거하기 위해 블록을 뒤집는 일이다. 제초제를 뿌리면 1시간이면 끝날 일이지만, 차마 그럴 수 없다. 일일이 블록을 뒤집고 풀을 뽑은 후 다시 자리에 맞춰 내려놓기를 반복한지 벌써 나흘째다.
"환경을 생각한다는 건 불편함을 감수한다는 거예요. 우리는 편리에 중독된 걸지도 몰라요. 군청에 가보면 주차장이 가득 찼잖아요? 멀리서 오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읍내에서 걸어갈 수 있는 분들이 많을 텐데 모두 승용차로 오시죠. 조금 걸어오는 불편만 감수한다면 그만큼 에너지를 덜 쓸 수 있는데 말이에요."
우리 생활에서 '에너지 없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란 질문이 이어진다. 이동 수단부터 요리, 빨래, 냉난방 등 돌아보면 우리 일상에서 에너지 없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무엇을 하든 에너지에 의존하는 우리가 과연 이걸 줄일 수 있는 걸까?
▲ 아자랜드에 있는 '전기 없는 놀이기구'. |
ⓒ 월간 옥이네 / 아자학교 고갑준 제공 |
"전 공동체에 답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공동체성을 키워주는 게 전래놀이고요."
그가 전래놀이를 통해 강조하는 것이 바로 공동체성이다. 사람의 힘을 이용하는 비전력 놀이기구는 혼자가 아닌 다수의 사람이 함께해야 작동하는 것들이다. 탑승자 중 한 명이라도 마음이 맞지 않는다면 놀이기구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전래놀이, 함께하는 놀이가 사라진 지금 아자학교가 전파하는 놀이의 지향은 분명하다. '함께'하는 기쁨과 보람을 알아가는 것. 바로 여기서 시작되는 공동체의 회복이 공유경제, 더 나아가 에너지 절약 등으로도 이어질 거라는 게 고갑준 대표의 말이다.
"과거 우리는 놀이를 통해 공동체성을 배웠어요. 우리가 기억하는 놀이들을 떠올려 보세요. 혼자 노는 게 아니라 같이 어울려 놀았죠.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 살기가 쉬운데, 이런 때일수록 전래놀이를 통해 공동체를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공동체가 살아난다면, 그래서 같이 공유하고 나누는 정신이 우리 삶의 바탕이 된다면 에너지 소비도 줄일 수 있다고 봐요."
▲ 아자학교의 지붕. 태양열 패널이 보인다. |
ⓒ 월간 옥이네 |
아자학교를 둘러보면 건물마다 올려진 태양광 패널, 태양열 집열기를 볼 수 있다. 아자학교엔 고갑준 대표가 생활하는 건물을 포함해 총 4개 동이 있는데 이 건물 모두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불을 밝히고 물을 데운다. 실내조명은 1W 전구로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형광등에 비하면 어둡기 그지없지만 불 켜면 '손금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밝아 생활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
"시설로 따지면 태양광, 태양열, 풍력 다 있어요. 배터리에 충전 해놨다가 밤에 조명으로 쓰죠. 조명은 1W 전구를 써요. 낮엔 별로 표시가 나지 않는데 밤에는 이만큼만 켜도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환해요."
화장실 환풍기 자리엔 작은, 어디서 본 듯한 사각형 물체가 달려있다. 컴퓨터 CPU 냉각기(쿨러)다. 전력 소비를 줄이고 환기하기에 충분한 대용품으로 찾은 것인데, 기존 환풍기보다 작지만 이것으로도 충분하다고.
"굳이 엄청 환하게 하지 않아도, 강하게 환풍기를 돌리지 않아도 돼요. 적당한 만큼만 쓰면 되죠. 불편함 조금만 감수하면 됩니다. 에너지 소비를 줄인다는 건 불편하게 산다는 거예요. 하지만 익숙해지면 다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죠."
▲ 아자학교 대표 '아자쌤' 고갑준씨. |
ⓒ 월간 옥이네 |
그의 생태적 삶은 '채식' 생활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옥천에 정착한 2001년부터 채식을 시작한 24년 차 '비건'이다. "과거처럼 소가 사람 일을 대신"해야 하는 게 아닌 세상에서 단순히 "고기를 먹기 위해" 수많은 수의 가축이 비인도적인 환경에서 사육된다는 점,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파괴와 탄소배출 등으로 채식을 결심했다.
여기에 그는 "웬만하면 옷도 사지 않으려 한다"고. 환경을 위해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쓰고, 다시 써야 한다'는 그의 생활 속 실천이다.
"옷장을 한 번 열어보세요. 아마 평생 입을 만큼 옷이 있을 거예요. 보통 유행이 지나서 버리지, 해져서 버리는 경우도 없을 거고요. 청바지 하나, 티셔츠 한 벌 만드는 데 나오는 탄소 발자국을 생각하면 옷도 마음대로 사 입을 수 없었죠. 우리가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무궁무진해요. 사지만 않을게 아니라 이젠 입지 않는 옷을 찾아가 나눠줘야 할 때죠."
월간 옥이네 통권 85호(2024년 7월호)
글·사진 임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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