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미역국 끓이던 내가 밑반찬을 만들 줄이야

이준호 2024. 7. 20.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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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두 손으로 직접' 프로젝트 1편, 요리를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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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호 기자]

고등학교 친구에게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별일 없는 사람은 없을 테니 가장 큰 별일 하나씩만 말하기로 했다. 난 가장 큰 별일로 눈이 많이 나빠졌다고 말했다. 친구도 말했다. 

"나, 전기기사 자격증 따서 사업하고 있다."

진짜 별일이었다. 오랫동안 슈퍼마켓을 했던 애가 50대 중반에 전기기사? 들어보니 슈퍼마켓을 하면서 꾸준히 전기기사 자격증 시험 준비를 했다고 한다. 자격증을 따고 나서는 자기 사업으로 전기 설비 일을 하는데 최근에는 도로 지하터널 전등 교체도 했고 황톳길 구간에 미등을 다는 일도 했단다.

요즘 들어 부쩍 주변에 아픈 사람이 많아 우울하던 차에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래, 넌 내게 희망을 줬어. 

내 손으로 해보겠어  
   
 내가 직접 단 LED 전등
ⓒ 이준호
 
전기기사까지는 아니지만 마침 나도 내 손으로 뭔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인생의 태반을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리며 글자를 만지는 데 보냈다. 글자의 세계에서는 모든 일을 평가하고 비판하고 다른 방법을 제시하는 전지전능을 발휘했지만 글자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면 할 줄 아는 게 없는 백면서생이었다. 

하루는 내 자전거를 탄 딸이 브레이크가 잘 안 잡힌다며 자전거점에 가서 수리해야겠다고 했다. 난 별생각 없이 자전거 수리점에 갔다. 놀랍게도 브레이크 선이 연결된 마디마디 암나사(너트)만 조이는 것으로 수리가 끝났다. 수리 비용은 1만 5000원. 허탈했다. 잘 관찰하면 내가 직접 고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무 생각없이 돈 주고 수리를 맡긴 결과였다. 밴드 '롤러코스터' 노래처럼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어느 날 식탁 위 전등이 나갔다. 기회가 왔다. 이번엔 내 손으로 해보마! 이 기회에 LED 등으로 바꾸기로 마음먹고 인터넷 검색해 가며 등을 교체했다. 뿌듯했다. 전구는 갈아봤지만 두꺼비집을 내리고 벽에 달린 전기선에 전등에 달린 선을 연결해 새로 설치해 본 것은 부끄럽지만 처음이었다. 

자신감을 얻은 나는 내 손으로 할 게 더 없나 찾아봤다. '내 손으로 할 게 더 없나'라는 말은 사치였다. 내 손으로 하는 게 없었다. 대체 뭐하며 살아온 거야. 그러다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26년은 엄마가 해준 밥을, 나머지 27년은 아내가 해준 밥을 먹고 살았다는 사실을!

마침 딸이 '내일배움카드'로 배울 게 많다며 알려줬다. 정부에서 교육비를 일부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인데 직장인도 해당됐다. 딸과 함께 알아보다가 내 눈에 확 들어온 프로그램 ' 한식조리 직무능력향상 밑반찬'. 그래, 이거야. 난 주저 없이 등록했다.

밑반찬의 세계에 입문하다     
   
 한식조리 직무능력향상 밑반찬 반 교실
ⓒ 이준호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하는 밑반찬 수업 첫날 난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에 수건을 동여매고 얌전히 앉아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수강생 12명 중 남자는 나와 나보다는 훨씬 젊은 또 다른 남자 이렇게 두 명이었다. 

첫날 만들 음식은 '매콤한 안동찜닭'. 지금까지 내가 한 음식 '포트폴리오'는 밥, 라면, (참치와 김치만 넣은) 찌개, 계란 프라이였다. 이런 이력의 소유자가 하기에는 너무 난도가 높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정신없이 실습이 시작됐다. 

그 옛날 피시통신 시절 선배가 한 말이 생각난다. 독수리 타법으로 "안" "녕" "하" "세" "요"를 치고 있는 동안 수많은 사람의 대화가 휙 지나갔다고. 내가 딱 그 경우였다. 양파 채썰기를 하는 동안 다른 수강생은 이미 양념장을 다 만들고 불을 지피고 있었다. 이 버섯이 표고버섯인가 느타리버섯인가 잠시 궁리하는 사이 사람들은 불린 당면까지 넣고 찜닭을 완성했다. 
  
 요리의 기초는 칼질이 아닐까. 채썰기, 깍둑썰기, 반달썰기, 어슷썰기를 익혀야 속도를 낼 수 있는 것 같다. 우엉당면조림에 들어가는 우엉은 국수처럼 가늘게 채썰기를 해야 하는데 손을 베일까 무서워 뭉뚱그려 썰었다. 그랬더니 제대로 볶지를 못해 우엉이 질겨 망했다.
ⓒ 이준호
 
딱 봐도 음식 만들기와는 무관한 인생을 살아온 티가 역력하게 나는 내 동작을 보고 사람들은 금방 알아차렸다. 쟤 좀 도와줘야겠다. 내 짝꿍과 다른 수강생들 무엇보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매콤한 안동찜닭을 완성했다. 안동찜닭 외에 잔멸치 견과류 볶음과 약고추장 주먹밥도 만들었다. 놀랍게도 첫날에!

어떻게 만들었는지 나도 모르겠지만 만든 음식을 집에 가져왔더니 아내와 아이들이 맛보고는 탄성을 질렀다. 어쩜 이렇게 맛있냐고. 아, 요리한다는 게 이런 맛이구나. 내가 만든 요리를 가족들이 좋아하는 것. 

오래전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 매운탕을 끓여보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요리책을 보고 하나하나 따라 하는데 '지느러미를 제거하라'는 말에 순간 지느러미를 생선을 감싸고 있는 비늘이라 생각하고 비늘을 죄다 뜯어버렸다. 아내가 말했다. "매운탕인데 생선이 안 보여." 당연했다. 비늘을 뜯어버려 생선이 산산이 흩어졌으니까. 
  
 오래 전에 내가 만든 매운탕에는 비늘을 껍질째 벗기는 바람에 생선이 사라지는 비극이 벌어졌다. 사진의 매운탕은 무료 이미지에서 받은 것으로 내가 만든 매운탕과는 거리가 멀다.
ⓒ pixabay
 
작년에 아내가 장모님 병간호를 위해 2주간 집을 비운 적이 있었다. 난 이 기회에 직접 음식을 해보겠다고 생각하고 미역국을 끓였다. 그런데 간장과 소금을 넣어도  뭔가 빠진 맛이었다. 그래서... 참치와 김치만으로 찌개를 해먹은 경험을 살려 김치를 부었더니 김치 미역국이 되었다. 그동안 나를 응원해주던 아들이었지만 그 미역국을 맛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아빠, 다음부터는 내가 할게."

어느덧 밑반찬 수업 10회 중 7회를 들었다. 이제 생선 없는 매운탕과 김치 부은 미역국을 만들던 남자는 없다. 아직도 수업 내내 잔뜩 긴장하지만 서서히 감을 잡고 있다. 매 수업 내 두 손으로 만드는 요리의 세계가 확장되는 기쁨을 느끼고 있다. 

이 수업이 다 끝나면 '내 두 손으로 프로젝트' 2탄을 해봐야겠다. 자전거수리를 배워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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