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안 살래" 소리 절로 나온다…58채 '이상한 집'의 유혹

2024. 7. 2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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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주거 문화 풍경


조남호(솔토지빈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한 '살구나무 윗집 & 아랫집'(2009~2010). 경기도 용인시. [사진 박영재, 국립현대미술관]
경기도 용인시에는 ‘살구나무 윗집 & 아랫집’이 있다. 언덕 비탈에서 더 높은 곳에 위치한 윗집의 지하 작업실 앞에 마당이 있는데 아랫집의 뒷편과 1m 높이 계단으로 이어진다. 두 집은 같은 재질의 벽돌 벽과 박공지붕을 지니고 있지만 형태는 다르다. 마치 닮고도 다르게 생긴 형제자매와도 같은 두 집이 ‘따로 또 같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친족 못지 않게 절친한 두 건축학자 가족이 살아왔다. 이들은 건축가 조남호와 긴 논의 과정을 거쳐서 2010년 경에 이 독특한 집들을 완성했다. 핵가족들이 아파트에 다닥다닥 붙어 살면서도 서로 소원하게 지내는 것과 대조되는 독특한 삶과 건축의 풍경이다.

이 집들의 모형, 설계도, 내외부 사진들, 관련 기록과 책 등이 19일 시작한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연결하는 집: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전에 나와 있다. 새로운 사회적 공동체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집들을 다룬 ‘관계 맺는 집’ 섹션에서다. 이 섹션에는 1인 가구들이 각자의 공간과 공용 공간을 갖고 ‘느슨한 심리적 연대’를 형성하는 공동주택들도 소개된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 서대문구에 최근 4년에 걸쳐 지어진 ‘써드플레이스 홍은 1-8’로서 MZ세대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박창현 건축가가 설계했다.

박창현 건축가가 설계한 '써드플레이스 홍은 1-8' (2020-2024). 서울 서대문구. [사진 최진보,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총 6개의 섹션에서 30팀의 건축가들이 2000년 이후에 설계한 58채의 단독주택과 공동주택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건축가의 설계 과정을 살펴보는 스케치·설계도·모형 등의 건축 자료뿐만 아니라 건축주 혹은 거주자가 그 집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사진과 일기 등의 생활 자료를 선보인다. 그러니까 단지 건축 디자인에 대한 전시가 아니라 한국 주거 문화를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조망해 보는 전시다.

전시를 기획한 정다영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릴 만큼 아파트가 다른 주거 형식을 압도합니다. 그와 다른 대안적 공간을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이는 능동적인 삶의 태도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박지현+조성학(비유에스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의 '묘각형주택'(2020). 경기도 용인시. [사진 노경, 국립현대미술관]

‘가족을 재정의하는 집’ 섹션에는 기존의 전형적인 가족 형태인 4인 핵가족에 최적화된 집들이 아닌, 새롭고 다양한 가족 형태에 맞춘 집들이 소개된다. 그중 경기도 용인시에 2020년에 지어진 ‘묘각형주택’은 반려 고양이들과 함께 사는 삶에 최적화된 오각형 평면 주택이다. 박지현·조성학 건축가 팀은 건축주와 의논해 고양이 눈높이의 창문들, 고양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간들, 고양이들이 뿜어내는 엄청난 털로부터 안전한 드레스룸 등을 설계했다.

또한 서울 서대문구의 ‘홍은동 남녀하우스’는 아이 없는 부부가 1층 공간에서는 함께 하는 시간을 갖고 2층과 3층은 각자의 독립적인 공간으로 사용하도록 설계된 집이다. 결혼 후에도 ‘자기만의 방과 시간’이 여전히 중요한 부부들이 솔깃할 만한 건축이다. 에이오에이아키텍츠가 설계했다.

정현아(디아건축사사무소)의 '와촌리 창고주택'(2012). 충청남도 연기군. [사진 신경섭, 국립현대미술관]

한편 ‘펼쳐진 집’은 한마디로 시골 집들에 대한 섹션이다. 그러나 동네의 맥락과 따로 노는 ‘전원주택’이 아닌, 각 시골의 자원과 장소성에 대응하는 집이다. 정현아 건축가의 ‘와촌리 창고주택’(2012), 이소정·곽상준 건축가의 ‘볼트 하우스’(2017) 등이 그 예다.

반대로 ‘작은 집과 고친 집’은 도심의 한정된 자원과 장소성에 대응하는 집이다. 이 섹션에는 조민석 건축가의 첫 국내 작품으로 경기도 파주시의 명물인 ‘픽셀 하우스’(2003)가 소개된다. 또한 ‘기네스북에 올라야 하지 않을까’라는 경탄이 나오는 서울 서초구의 ‘얇디얇은집’(2018)이 소개된다. 경부고속도로 완충 녹지에 의해 잘려나간 폭이 2.5m밖에 안 되는 길쭉한 대지에 내부공간 폭 1.5m로 그야말로 “얇디얇게” 세워진 집이다. 이런 공간을 활용해 한 가족이 살 수 있는 집으로 만든 건축가 안기현·신민재도 놀랍지만 이 집을 짓게 하고 살고 있는 건축주도 놀라운 그런 집이다.

안기현+신민재(에이앤엘스튜디오)의 '얇디얇은 집'(2018). 서울 서초구. [사진 이한울, 국립현대미술관]

그 밖에 ‘선언하는 집’ 섹션은 승효상 건축가의 ‘수백당’(1999~2000), 조병수 건축가의 ‘땅집’(2009) 등 유명 건축가들이 자신의 미학을 선언하는 듯한 집들을 다룬다. ‘잠시 머무는 집’ 섹션에서는 최근 한국 사회의 주요 공간 소비 장소로 떠오른 공유별장과 주말 주택을 소개한다.

전시에 나온 58채 집들의 기준에 대해서 정 학예연구사는 “건축가와 거주자 양쪽의 의지가 모두 강하게 작동한 집들을 골랐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시도해볼 수 있도록 연면적 100평 이상의 고급주택은 피했다”고 밝혔다. 그래도 건축가가 특별히 설계한 집에서 사는 것은 경제적 부담이 클 것 같다는 질문에 그는 “전시에 나온 집들은 대개 도시의 자투리 땅이나 도시가 아닌 지역에 지어진 것으로서 땅값까지 합쳐도 서울에서 아파트 30평대를 구입하는 것보다 저렴하거나 비슷한 가격”이라고 답했다.

조민석(매스스터디스)의 '픽셀 하우스'(2003). 경기도 파주시. [사진 김용관,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의 특징 중 하나는 참여 건축가의 세대가 다양하다는 것이다. 유명 건축가들부터 양수인·조재원 등 중진, 그리고 오헤제건축 등 젊은 건축가까지 아우른다. 그리고 건축가 못지 않게 건축주의 철학과 그것이 드러난 기록 등을 중요하게 다룬다는 게 이 전시의 큰 특징이다. 이로써 “삶의 대안적 형태를 제시하고 싶었다”는 것이 정 학예연구사의 말이다.

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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