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아들로 태어나 로마 황제가 된 디오클레티아누스

오문수 2024. 7. 2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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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7~8월이면 클래식과 팝, 댄스 공연이 펼쳐지는 스플리트

[오문수 기자]

 스플리트를 안내하는 간판에 기록된 디오클레티안 궁전 모습
ⓒ 오문수
 
스플리트는 아름다운 아드리아해 연안에 자리한 휴양도시다. 스플리트는 찬란한 태양이 연평균 7시간가량 내려쬐는 곳으로 유럽에서 일조량이 가장 많은 도시 중 하나이다. 그래서인지 관광버스가 정해진 시간에 들어오지 않으면 많은 벌금이 부과될 정도로 관광객이 많다.

달마티아 지방 노예의 아들로 태어나 고대 로마 황제 직위에까지 오른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훗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 여생을 보내기 위해 디오클레티안 궁전을 짓게 된다.

황제는 노년을 편히 지내기 위해 자신의 고향 근처인 스플리트에 이 궁전을 만들었다. 동서 181m, 남북 215m 규모의 궁전은 두께 2m, 높이 20m가 넘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295년부터 스플리트 앞 바다 브라체 섬에서 채굴한 질 좋은 석회암,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대리석을 사용했다.

기둥과 스핑크스는 이집트에서 가져와 305년에 완공했으니 1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완성되었다. 궁전 구조는 로마군 진영 구조로 이뤄졌는데 중앙을 동서남북으로 넓은 도로가 지나가면서 도시를 4구역으로 나눠 각 구역 끝에는 문이 있다. 
 
 디오클레티안 궁전 외곽의 리바거리와 해변모습
ⓒ 오문수
 
 남문에서 디오클레티안 궁전으로 연결되는 통로 모습
ⓒ 오문수
  
 우리나라 TV에서도 방영되었다는 아카펠라 그룹의 멋진 음악에 군중이 '브라보!'를 외쳤다. 둥근돔 안에서 부르는 노래가 화음을 이뤄 환상적이었다.
ⓒ 오문수
 
북쪽은 금문, 동쪽은 은문, 서쪽은 철문, 남쪽은 청동문이라 부른다. 바다쪽으로 향한 남쪽 청동문은 황제의 주거 공간과 직접 통한다. 바다에 면한 쪽으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와 가족들이 살았고, 42개의 창문이 있어 바다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반대편은 700명의 하인들과 병사들의 거처로 사용되었다.
      
궁전 정문인 남문 앞 '리바거리'에는 아름드리 야자수가 심어져 있고 상인들로 왁자지껄할 뿐만 아니라 지하 통로와 연결된다. 통로 끝 계단을 올라가면 만나는 둥근 돔 지붕은 전쟁통에 파손되어 파란 하늘이 보였다. 돔 아래 넓은 둥근 광장에는 4명으로 구성된 아카펠라 그룹이 노래부르고 있었다.

노예의 아들로 태어나 로마 황제까지 오른 디오클레티아누스

디오클레티아누스(245~316)는 스플리트 근교 살로나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출생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본래 그는 고대 로마를 통치한 누메리아누스 황제의 경호대장이었다.

294년 페르시아를 정벌하고 돌아오던 중 황제가 암살 당하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부하들은 그를 황제로 추대했다. 그는 3세기를 거치면서 20명 이상의 황제가 바뀔 만큼 불안한 로마의 정세를 수습하고 통치권을 강화했다.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 모습이 보인다.
ⓒ 오문수
 
먼저 나라를 동·서로 나눈 후 2명의 황제와 2명의 부황제를 뽑아 분할통치하는 4두정치 체제를 확립했다. 또한 군제 세제 화폐제도의 개혁을 통해 국사를 돌보았지만 로마제국에서 가장 심하게 기독교를 박해한 황제로도 유명하다.

303년 기독교 탄압을 위한 칙령을 발표한 후 교회와 성전을 파괴했으며 저항하는 사제와 주교들을 가차없이 탄압했다. 기독교인이라는 소리가 들리면 무조건 찾아내 고문할 수 있는 칙령을 발표했고 로마 신의 제의를 수행하지 않고 이를 어길 시 사형이라는 극형도 서슴치 않았다.

자료에 의하면 2년 동안 약 3천~4천 명의 신자들이 순교했다. 그 후 305년에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스플리트에서 남은 생을 보내려고 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스스로 제위를 물려준 유일한 로마 황제다.
 
 궁전 내 최대광장인 열주광장 모습. 황제가 회의나 행사 등을 주재한 장소로 웅장한 16개의 열주식 대리석 기둥에 둘러싸여있다.
ⓒ 오문수
열주광장은 스플리트에서 가장 규모가 큰 노천시장이 있는 은의 문을 들어가면 나타나는 궁전으로 궁전 내에서 최대 광장이다. 황제가 회의나 행사 등을 주재한 장소로 웅장한 16개의 열주식 대리석 기둥에 둘러싸여 있다.
    
광장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유적지들이 흩어져 있어 이정표 구실을 한다. 광장에는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과 이집트에서 가져온 스핑크스가 있다. 광장 주변에는 레스토랑과 노천카페가 있다.

크로아티아인들로부터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 그레고리우스 닌

황금의 문(북문)을 나가면 높이 4.5m의 거대한 동상이 나타난다. 10세기에 대주교였던 그레고리우스 닌의 동상이다. 그는 크로아티아인들이 모국어로 예배를 볼 수 있도록 투쟁한 인물로 크로아티아에서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크로아티아인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종교지도자 중 한 분인 그레고리우스 닌의 동상 모습
ⓒ 오문수
 
 크로아티아인들로부터 존경받는 종교지도자 중 하나인 그레고리우스 닌 대주교 동상 왼쪽 엄지발가락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 때문에 사람들이 붐빌 뿐만 아니라 반짝거린다.
ⓒ 오문수
 
1929년 이반 메슈트로비치가 청동으로 만든 이 동상은 엄청난 크기에 보는 이를 압도한다.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그의 왼쪽 엄지발가락은 소원을 비는 수많은 사람의 손을 타 반짝거린다.

철의 문(서문)과 연결된 광장으로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베네치아·바로크·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 즐비하다. 그 가운데 15세기 베네치아·고딕 양식의 구 시청사는 현재 민족학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광장 주변에는 현대적인 쇼핑가와 레스토랑·카페 등이 모여 있다. 광장 한쪽에는 최초로 크로아티아어로 책을 쓴 마르코 마루리치의 동상이 서있다.
  
 중세의 다양한 건축 양식이 즐비한 나로드니 광장 모습
ⓒ 오문수
  
 크로아티아는 아이스크림으로 유명하다. 아이스크림가게에서 촬영했다.
ⓒ 오문수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뉴스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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