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 12만 원으로 전국일주... 떠날 수 있을 때 떠나세요
무더운 여름철을 맞아 친환경 여행, 도시 탐방, 반려동물과 함께 보내는 휴가, 오토바이 여행, 숨겨진 명소 등 다양한 형태의 여름휴가를 즐길 수 있도록 '국민휴가위원회'가 나섭니다. 무더위와 고물가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휴가를 알차게 보낼 수 있는 다양한 방법과 실용적인 정보를 제공합니다. <편집자말>
[조경국 기자]
▲ 오토바이는 내게 가장 편리하고 경제적인 이동수단이다. |
ⓒ 조경국 |
"가고 싶을 때 가지 않으면, 가려고 할 때는 갈 수가 없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인생 영화로 꼽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에 나오는 대사다.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이었던 버트 먼로(안소니 홉킨스)는 1967년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낡은 인디언 오토바이(47년이나 된)를 개조해 시속 331킬로미터의 속도로 보너빌 소금 사막을 가로질러 세계 기록을 세웠다. 이 영화를 보며 언젠가 나도 라이더가 되고 싶었고, 나이가 들어서도 이루고 싶은 소중한 것이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 스쿠터를 타고 제주 종달리 소심한 책방을 찾았다. 중고로 구입한 2010년식 스쿠터는 여전히 나의 발이 되어주고 있다. |
ⓒ 조경국 |
오토바이, 가장 자유롭고 빠르며 경제적인 이동 수단
책방을 연 이듬해인 2014년 강원도 고성부터 제주도까지 책방을 찾아다니며 여행을 시작했다. 강원도 고성읍에 있는 서울서점부터, 제주도 종달리에 있는 소심한책방까지 서점과 서점을 이어가며 다녔다. 제주도를 한 바퀴 돈 것까지 포함해 달린 거리는 약 3000킬로미터였다. 당시 스쿠터의 5.5리터 연료통을 가득 채우는 값은 8000원 정도였고, 한 번 주유로 200킬로미터를 탔다. 1리터에 연비가 40킬로미터 정도 나왔으니, 12만 원어치 휘발유만으로 전국일주를 할 수 있었다.
"저희 국제서림은 1972년 2월 13일 개점한 이래 40여 년 동안 여러분의 뜨거운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하오나 2013년 12월 30일자로 정겨운 국제서림의 업무를 정리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성원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헌책방을 시작한 2013년 이후 많은 서점이 사라졌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의 <2024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영업하고 있는 전국 서점 수는 2484곳이며 20년 전인 2003년 3589곳과 비교하면 1000곳 이상의 서점이 문을 닫았다. 전국 지자체 중 서점이 한 곳도 없는 지역은 경남 의령군을 포함해 10곳이고, 단 한 곳뿐인 지역도 25곳이나 된다.
▲ '일만엔선서'로 유명한 홋카이도 이와타 서점. 방문했던 날 비가 억수같이 내렸었다. |
ⓒ 조경국 |
'일만엔선서' 이와타 서점 찾아 홋카이도로
책방 운영 3년차에 접어들 무렵 처음 책방을 열었을 때 넘쳤던 에너지는 거의 바닥나 있었다. 자영업 3년차 폐업률이 절반이 넘는 대한민국에서 헌책방을 한다는 건 수행자가 되어 도를 닦는 것과 비슷할 듯싶다. 헌책방을 열기 전 선배 책방지기님들께 가장 많이 들었던 충고는 "건물주가 아니면 하지 말라"였다. 20년 가까이 서점을 운영했던 고모도 "굳이 책방이냐"고 걱정을 하셨으니까. 선배들의 걱정은 곧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바닥을 헤매던 그때 눈에 박힌 신문 기사가 있었다. 일본 홋카이도 스나가와에 있는 이와타 서점에 대한 이야기였다. 궁벽한 시골에 있는 이와타 서점의 '일만엔선서'라는 서비스가 인기를 얻어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일만엔선서'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 1년 동안의 준비를 거쳐 2015년 9월 오토바이로, 일본 책방 여행길에 올랐다.
이왕 이렇게 온 거 시모노세키에서 시작해 최북단 왓카나이까지 달리며 서점과 도서관을 찾아다녔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 목적지였던 이와타 서점에 도착해 이와타 도오루 대표님을 만나 인사드렸다. 책값 1만 엔을 맡긴 손님들에게 꼭 필요한 책을 보내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고 성실하게 준비하는지 확인하곤 잠시나마 '나도 따라 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품었던 일말의 희망을 버리고 현실로 돌아왔다. 이리 재고 저리 굴려 봐도 이와타 서점의 '일만엔선서'는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 포르투갈 포르투에 있는 렐루 서점(깃발이 걸려 있는 건물)을 마지막 목적지로 육로로 여행하는 것이 버킷리스트였다. |
ⓒ 조경국 |
일본 책방 여행을 다녀오곤 40대에 이루고 싶은 궁극의 버킷리스트였던 포르투갈 포르투에 있는 렐루서점까지 다시 여행계획을 세웠다. 전국일주를 떠나기 1년 전 중국 칭다오에서 렐루서점까지 책방 여행을 떠났지만 7개월 만에 싱가포르에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나의 꿈은 렐루서점까지 육로로 여행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준비기간이 길 수밖에 없었다. 3년 동안 N잡러로 일하며 여행 경비를 모았다. 2019년 5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해 유라시아를 횡단해 포르투갈 렐루서점까지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4개월 동안 왕복 거리 3만 8000킬로미터를 달리며 서점을 찾아다녔다.
'셰익스피어'도 렐루서점과 마찬가지로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기대했던 것만큼 멋진 곳이었고 찬찬히 둘러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셰익스피어' 근처 센 강변엔 헌책을 파는 노점들이 있지만 책을 고르는 손님들보다 기념품을 구경하는 손님들이 더 많았다. 책만 파는 가게보다 기념품을 함께 취급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페르 라쉐즈 묘지로 가기 위해 강변을 걸으며 헌책 파는 노점을 여러 곳 유심히 보았지만 책을 사 가는 사람들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책이 아닌 '공간을 소비'하기 위해 서점을 찾는 것일 수도. '셰익스피어'와 센 강의 헌책 노점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랜 꿈이었던 렐루서점을 다녀왔지만 여전히 오토바이를 타고 서점을 찾아 떠난다. 얼마 전엔 통영 고양이서점에 들러 엘리너 파전의 <작은 책방>을 구입했다. 제목만 보곤 책방 이야기인 줄 알고 골랐는데 그게 아니었다. 다음 달 여행 계획은 이미 잡혀 있다. 오토바이를 타고 군산에 가서 '군산북페어 2024'를 보고 서점들도 둘러볼 계획이다. 9월엔 아주 멀리 꽤 오래 떠날 계획을 세웠다.
아마 책방지기로 일하는 동안엔 오토바이를 타고 책방을 계속 찾아다니지 않을까 싶다. 다른 책방에 갈 때마다 계속 버틸 에너지를 얻고 있으니 멈출 수가 없다. 나중에 가볼 걸 후회하는 것보다 "가고 싶을 때 가는" 본능에 충실한 것이 더 현명하다는 걸 지난 여행들로 깨달았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떠날 수 있을 때 떠나시길, 그리고 어딘가 멈춘 곳에서 책방을 발견하면 문을 열고 들어가 책 한 권 사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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