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 12만 원으로 전국일주... 떠날 수 있을 때 떠나세요

조경국 2024. 7. 20.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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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공동리포트 - 국민휴가위원회] 오토바이로 전국일주부터 유라시아 횡단까지

무더운 여름철을 맞아 친환경 여행, 도시 탐방, 반려동물과 함께 보내는 휴가, 오토바이 여행, 숨겨진 명소 등 다양한 형태의 여름휴가를 즐길 수 있도록 '국민휴가위원회'가 나섭니다. 무더위와 고물가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휴가를 알차게 보낼 수 있는 다양한 방법과 실용적인 정보를 제공합니다. <편집자말>

[조경국 기자]

 오토바이는 내게 가장 편리하고 경제적인 이동수단이다.
ⓒ 조경국
오토바이로, 책방 여행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책방지기가 되는 것이 오랜 꿈이었고 오토바이만큼 자유롭고 빠르며 경제적인 이동 수단은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꿈을 이뤄 동네 작은 헌책방 책방지기가 된 지 10년이 넘었고, 오토바이로 책방 여행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가고 싶을 때 가지 않으면, 가려고 할 때는 갈 수가 없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인생 영화로 꼽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에 나오는 대사다.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이었던 버트 먼로(안소니 홉킨스)는 1967년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낡은 인디언 오토바이(47년이나 된)를 개조해 시속 331킬로미터의 속도로 보너빌 소금 사막을 가로질러 세계 기록을 세웠다. 이 영화를 보며 언젠가 나도 라이더가 되고 싶었고, 나이가 들어서도 이루고 싶은 소중한 것이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오랫동안 간직했던 꿈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쯤이었다.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빚을 청산하고 고향에 내려와 헌책방을 열었고, 2종 소형면허(125cc 이상 배기량을 가진 오토바이를 운전하기 위해선 필수)를 따고 중고 스쿠터를 샀다. 그리고 식구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콧수염을 기른 라이더가 되어 책방을 찾아 여행을 시작했다.
 
 스쿠터를 타고 제주 종달리 소심한 책방을 찾았다. 중고로 구입한 2010년식 스쿠터는 여전히 나의 발이 되어주고 있다.
ⓒ 조경국
 
오토바이, 가장 자유롭고 빠르며 경제적인 이동 수단

책방을 연 이듬해인 2014년 강원도 고성부터 제주도까지 책방을 찾아다니며 여행을 시작했다. 강원도 고성읍에 있는 서울서점부터, 제주도 종달리에 있는 소심한책방까지 서점과 서점을 이어가며 다녔다. 제주도를 한 바퀴 돈 것까지 포함해 달린 거리는 약 3000킬로미터였다. 당시 스쿠터의 5.5리터 연료통을 가득 채우는 값은 8000원 정도였고, 한 번 주유로 200킬로미터를 탔다. 1리터에 연비가 40킬로미터 정도 나왔으니, 12만 원어치 휘발유만으로 전국일주를 할 수 있었다.

제주도를 제외하고 최대한 해안도로를 따라 우리나라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린 시간은 7일이었다. 헌책방이 모여 있는 부산 보수동과 인천 배다리도 찾았고, 인제의 고려서점, 양구의 양구서점 같은 지역에 하나밖에 없는 서점들도 방문했다. 기껏 찾은 책방이 문을 닫은 경우도 있었다. 전라남도 완도군의 국제서림을 찾았을 때 붙어 있었던 안내문은 아직도 여행 기록에 남아 있다.
 
"저희 국제서림은 1972년 2월 13일 개점한 이래 40여 년 동안 여러분의 뜨거운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하오나 2013년 12월 30일자로 정겨운 국제서림의 업무를 정리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성원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헌책방을 시작한 2013년 이후 많은 서점이 사라졌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의 <2024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영업하고 있는 전국 서점 수는 2484곳이며 20년 전인 2003년 3589곳과 비교하면 1000곳 이상의 서점이 문을 닫았다. 전국 지자체 중 서점이 한 곳도 없는 지역은 경남 의령군을 포함해 10곳이고, 단 한 곳뿐인 지역도 25곳이나 된다.
일반 서점이 이런 실정이니 헌책방이야 말할 것도 없다. 지난 시절 헌책방으로 유명했던 부산 보수동이나 인천 배다리도 상황이 어렵기는 마찬가지고 사라지는 곳이 늘고 있다. 진주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 소문난 서점도 이어받을 사람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어디를 가든 그곳에 있는 서점을 먼저 찾아가는 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걱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그 걱정은 책방지기로 일할 때까지 내려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일만엔선서'로 유명한 홋카이도 이와타 서점. 방문했던 날 비가 억수같이 내렸었다.
ⓒ 조경국
 
'일만엔선서' 이와타 서점 찾아 홋카이도로

책방 운영 3년차에 접어들 무렵 처음 책방을 열었을 때 넘쳤던 에너지는 거의 바닥나 있었다. 자영업 3년차 폐업률이 절반이 넘는 대한민국에서 헌책방을 한다는 건 수행자가 되어 도를 닦는 것과 비슷할 듯싶다. 헌책방을 열기 전 선배 책방지기님들께 가장 많이 들었던 충고는 "건물주가 아니면 하지 말라"였다. 20년 가까이 서점을 운영했던 고모도 "굳이 책방이냐"고 걱정을 하셨으니까. 선배들의 걱정은 곧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바닥을 헤매던 그때 눈에 박힌 신문 기사가 있었다. 일본 홋카이도 스나가와에 있는 이와타 서점에 대한 이야기였다. 궁벽한 시골에 있는 이와타 서점의 '일만엔선서'라는 서비스가 인기를 얻어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일만엔선서'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 1년 동안의 준비를 거쳐 2015년 9월 오토바이로, 일본 책방 여행길에 올랐다.

이왕 이렇게 온 거 시모노세키에서 시작해 최북단 왓카나이까지 달리며 서점과 도서관을 찾아다녔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 목적지였던 이와타 서점에 도착해 이와타 도오루 대표님을 만나 인사드렸다. 책값 1만 엔을 맡긴 손님들에게 꼭 필요한 책을 보내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고 성실하게 준비하는지 확인하곤 잠시나마 '나도 따라 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품었던 일말의 희망을 버리고 현실로 돌아왔다. 이리 재고 저리 굴려 봐도 이와타 서점의 '일만엔선서'는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일만엔선서'를 직접 보고 써먹겠단 생각은 머릿속에서 깨끗이 지웠지만 일본 책방 여행에서 배우고 느낀 것은 많았다. 한 달 동안 6800킬로미터를 달리며 찾았던 서점과 도서관 이야기는 그날그날 정리하고 일기로 남겼다. 보잘것없는 책방지기로서의 능력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아르마딜로처럼 가만히 웅크리고 가늘고 길게 버티는 걸로 전략(?)을 바꾸었다. 에너지가 넘치는 것도 아니고 사업수완이 있는 것도 아닌 나로선 그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포르투갈 포르투에 있는 렐루 서점(깃발이 걸려 있는 건물)을 마지막 목적지로 육로로 여행하는 것이 버킷리스트였다.
ⓒ 조경국
40대 궁극의 버킷리스트, 포르투 '렐루서점'까지 육로 여행

일본 책방 여행을 다녀오곤 40대에 이루고 싶은 궁극의 버킷리스트였던 포르투갈 포르투에 있는 렐루서점까지 다시 여행계획을 세웠다. 전국일주를 떠나기 1년 전 중국 칭다오에서 렐루서점까지 책방 여행을 떠났지만 7개월 만에 싱가포르에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나의 꿈은 렐루서점까지 육로로 여행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준비기간이 길 수밖에 없었다. 3년 동안 N잡러로 일하며 여행 경비를 모았다. 2019년 5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해 유라시아를 횡단해 포르투갈 렐루서점까지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4개월 동안 왕복 거리 3만 8000킬로미터를 달리며 서점을 찾아다녔다.

쉬어가는 도시마다 훌륭하고 멋진 서점이 있었다. 렐루서점뿐만 아니라 영화 속 배경이었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너무나 세련된 서점이었던 멘도, 톨스토이의 삽화가 들어간 <전쟁과 평화> 1912년 초판본을 발견했던 북박스... 하지만 어느 곳이나 빛과 그늘이 존재했다.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를 찾은 날 남긴 일기(2019년 7월 8일)다.
 
'셰익스피어'도 렐루서점과 마찬가지로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기대했던 것만큼 멋진 곳이었고 찬찬히 둘러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셰익스피어' 근처 센 강변엔 헌책을 파는 노점들이 있지만 책을 고르는 손님들보다 기념품을 구경하는 손님들이 더 많았다. 책만 파는 가게보다 기념품을 함께 취급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페르 라쉐즈 묘지로 가기 위해 강변을 걸으며 헌책 파는 노점을 여러 곳 유심히 보았지만 책을 사 가는 사람들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책이 아닌 '공간을 소비'하기 위해 서점을 찾는 것일 수도. '셰익스피어'와 센 강의 헌책 노점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랜 꿈이었던 렐루서점을 다녀왔지만 여전히 오토바이를 타고 서점을 찾아 떠난다. 얼마 전엔 통영 고양이서점에 들러 엘리너 파전의 <작은 책방>을 구입했다. 제목만 보곤 책방 이야기인 줄 알고 골랐는데 그게 아니었다. 다음 달 여행 계획은 이미 잡혀 있다. 오토바이를 타고 군산에 가서 '군산북페어 2024'를 보고 서점들도 둘러볼 계획이다. 9월엔 아주 멀리 꽤 오래 떠날 계획을 세웠다.

아마 책방지기로 일하는 동안엔 오토바이를 타고 책방을 계속 찾아다니지 않을까 싶다. 다른 책방에 갈 때마다 계속 버틸 에너지를 얻고 있으니 멈출 수가 없다. 나중에 가볼 걸 후회하는 것보다 "가고 싶을 때 가는" 본능에 충실한 것이 더 현명하다는 걸 지난 여행들로 깨달았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떠날 수 있을 때 떠나시길, 그리고 어딘가 멈춘 곳에서 책방을 발견하면 문을 열고 들어가 책 한 권 사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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