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노인은 홀로 외롭다? 그 생각을 거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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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부터 주 1회 어르신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싣습니다. <기자말>
[최은영 기자]
나는 복지관에서 '내 인생 풀면 책 한 권'이라는 시니어 글쓰기 강사를 한다. 그러다 시니어 글쓰기로 다른 수업 제안을 받고 이 기사를 썼다. '대학은 가본 적도 없는데 대학생이 된 거 같아요.' 지역 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이 직접 체험활동 홍보글을 쓰는데 교육을 해주십사 하는 요청이었다.
수업 전에 담당 선생님을 만났다. 전화 목소리로 상상한 밝음 그대로가 딱 어울리는 분이었다. 선생님은 이 동네에 기초수급자 어르신이 많다고 하시면서 그분들이 삶에 치여 못해본 일들을 지금이라도 할 수 있게 돕고 싶다고 하셨다. 그 마음으로 적합한 강사를 한참 찾았는데 나를 만나서 정말 다행이라며 활짝 웃으셨다.
▲ 할머니들은 그 무대에서 어린 시절 설렘을 되살린 진짜 소녀가 되었다. 강단의 나는 그저 관객이었다.? |
ⓒ elements.envato |
추천과 별개로 걱정도 생겼다. 나는 그때까지 기초수급자 독거노인을 실제로 만난 적이 없었다. 대신 미디어를 통해 '홀로, 외롭게, 우울하고 어두움'이라는 이미지는 탄탄하게 박혀 있었다. 이런 이미지가 나를 긴장으로 탄탄히 가뒀다. 우울하고 어두운 이들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 할까? 쓰다보면 개인사가 나오기 마련인데 그 이야기들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짧은 순간에 내게 되물었다. 자신이 없었다.
복잡한 마음으로 강의실에 들어갔다. 같이 들어오던 어르신들이 내게 직각으로 허리 숙여 인사를 하셨다. 그렇게까지 인사하는 어르신을 처음 본지라 당황한 나는 폴더처럼 허를 접어 인사했다. 고개를 드니 어르신들 얼굴에 소녀 같은 맑은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삶의 무게에 눌린 사나운 주름 따윈 없었다.
'홀로 외롭게'라는 전제부터 틀렸다. 가족 없이 홀로 사는 건 맞지만 이웃사촌으로 서로의 가족이 되어 돌보는 분들이었다. 자서전에서는 수강생들끼리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여기서는 다들 친구였다. 그것도 칭찬에 아주 넉넉한 친구들이었다. 한 페이지를 써도 별 말 없던 다른 복지관에 비해 여기서는 한 줄만 써도 서로 잘했다는 칭찬이 이어졌다.
자서전 수업을 할 때는 수업 초반에 꼭 간 보는 사람이 있다. 한 글자도 안 쓰면서 팔짱 끼고 나를 관찰한다. 좋게 말해 관찰이지, 감시다. 그런 분 설득하는 것도 내 일이라 여러 방법을 써보긴 하지만 안 통한다. 그러다 갑자기 적극적이 되기도, 말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10명 수업보다 그 한 명이 너무 힘들었는데 나중엔 그저 기본값이려니 했다. 그래야 나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는 첫 시간부터 여덟 명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내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게 느껴져서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어떻게 100프로 참여가 있을 수 있지?
처음부터 100프로가 참여하는 수업은 상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평정심 유지를 잘 해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애써 평정심을 유지할 필요가 없는 수업은 수업이라기보다 놀이 같았다.
어르신들이 허브꽃 농장을 다녀왔다길래 '꽃잎이 바스락 흔들렸다'에서 '바스락' 같은 말이 뭐가 있겠냐고 물어봤다. 어떤 분이 '꽃잎이 사각사각거린다'라는 대답을 주셨다. 뒤이어 둥실둥실, 하늘하늘 같은 말이 나왔다. 이런 말들에 내 마음을 넣을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이런 대답이 나왔다.
▲ 할머니들이 선택한 의성어와 의태어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
ⓒ 최은영 |
나는 그저 파워포인트로 받아적기만 했는데 갑자기 교실이 조용해졌다. 어쩐지 기분 좋은 침묵같다는 생각을 하던 차, 한 분이 말문을 여셨다.
"내가 꼭 10대가 된 거 같아요. 옛날에 문학소녀 안 했던 사람 어딨어요. 그런 기억이 떠오르네요."
다들 고개를 끄덕이셨다. 문장만 놓고 보면 대단한 수사를 쓴 건 아니다. 그런데도 그 단순한 문장은 복지관 교실을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무대로 바꿔놨다. 할머니들은 그 무대에서 어린 시절 설렘을 되살린 진짜 소녀가 되었다. 강단의 나는 그저 관객이었다.
허물어진 내 안의 편견들
▲ 나누고 싶은 어르신의 마음 이건 배워서 나오는 글이 아닐 거 같다 |
ⓒ 최은영 |
이 글을 쓴 할머니는 화면에 뜬 본인 글을 더듬더듬 읽으면서 부끄러워하셨다. 그리 행복하셨냐는 내 질문에 세상에 이렇게 좋은 게 있는지 처음 알았다며 활짝 웃으셨다. 이 이상 만족할 수 없다는 그분 눈빛은 삶을 더없이 농밀히 만드는 순간을 직관적으로 보여줬다.
이미 가진 건 금방 잊은 채 못 가진 것에만 발 동동 구르는 분위기에 휩쓸려있다가 '발 마사지 하나에 많이 행복했고, 나누고 싶다'는 말을 보니 내가 대체 무슨 기준으로 살고 있는지 싶었다.
기초생활수급자 독거노인은 우울하다는 미디어의 이미지를 나는 너무 쉽게 받아들였다. 그 선입견은 마치 잘못된 전제 위에 세워진 집처럼 시야를 좁히고, 마음을 닫아버렸다. 누군가는 확률이나 보편성을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확률도, 보편성도 인간을 개별이 아닌 묶음으로 본다. 뭉뚱그려진 보편성은 편견과 차별로 이어지며, 약한 이들을 더욱 외롭게 만든다.
시니어 글쓰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보편성이라는 이름 아래 뭐가 눌려있는지 들여다볼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기초생활수급자 독거노인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수업 덕분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내 편견을 마주했고, 편견은 조금씩 허물어졌다. 강사로 섰지만 내가 더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다.
할머니들 글을 다시 꺼냈다. 미디어 이미지를 생각없이 믿는 내 뒷통수를 삐뚤한 글씨들이 툭툭 치고 지나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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