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청소년 30명 공개 처형' 뉴스, 검증이 필요하다
[정일영 기자]
▲ 김건희 여사가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민주주의진흥재단(NED)에서 열린 북한인권간담회에서 북한 억류 피해자와 유족, 북한인권 개선 활동 중인 탈북민, 북한 전문가 등을 만나 북한의 인권문제와 개선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
ⓒ 연합뉴스 |
북한 뉴스를 볼 때 일상적으로 등장하는 표현들이다. 어쩌면 당연한 듯 익숙해져버린 소위 '정보원'발 뉴스는 북한을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을까? 이 글에서는 검증을 거부하는 '정보원'발 뉴스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정보 검증 프로세스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검증을 거부하는 '소식통'·'관계자'발 뉴스들
지난 7월 10일 TV조선은 북한 당국이 "대북 전단 속 USB에 담긴 한국드라마를 봤다는 이유로 중학생 서른여 명을 지난주 공개처형했다"는 소식을 '단독' 뉴스로 보도했다. 익명의 '정부당국 관계자'가 "풍선에서 USB를 주워 드라마를 보다 적발된 중학생 30여 명이 지난주 공개 총살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는 것이다.(관련 보도 : [단독] 北, 중학생 30여명 공개처형…"대북풍선 담긴 'K드라마' 본 죄")
다음 날 <조선일보>는 해당 뉴스의 출처(정부당국)를 언급하지도 않은 채, TV조선의 보도 내용을 전하며 "북한 당국이 한국 드라마를 본 중학생 30여 명을 지난주 공개 처형했다"고 타전했다(관련 기사 : "USB 주워 한국 드라마 본 죄… 北, 중학생들 공개 총살"). '정부당국 관계자'가 전했다는 이 뉴스는 자극적인 타이틀과 함께 삽시간에 타 언론사와 인터넷 카페에 "북한 당국이 중학생 30명을 공개 처형했다"는 뉴스로 퍼져나갔다.
지난 7월 11일 미국을 방문한 김건희 여사 또한 워싱턴의 민주주의진흥재단(NED) 회의실에서 진행된 간담회에서 "최근 북한이 한국 드라마를 봤다는 이유로 중학생 30여 명을 공개 처형했다는 보도는 북한의 잔혹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며 이 뉴스를 전달했다.
그렇다면 이 보도는 사실일까? 우선 통일부는 7월 11일 진행된 백브리핑에서 "보도와 관련해서 통일부 차원에서 확인해드릴 내용은 없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정부당국 관계자'발 뉴스지만 정작 북한 인권 주무 부처인 통일부는 확인을 거부했다. 그렇다면 '중학생 30명 공개 처형' 뉴스는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까?
북한의 내부 정보가 국내 언론에 전파되는 과정을 돌아보자. 북한의 내부 정보를 전달하는 소위 내부 '정보원'은 국내에 거주하는 탈북민을 통해 정보를 전달한다. 그리고 이 정보를 탈북민으로부터 전달받은 '정부당국'이 '정부 관계자'발로 언론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북한 내부의 '정보원'이 해당 정보를 직접 확인했다는 보장은 없다. 이렇게 4~5단계를 거친 북한 정보는 정부와 언론을 거쳐 '익명의 당국자'와 '익명의 정보원'이란 이름으로 우리 국민에게 전달된다.
결국 어느 정부 부처의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 "정부 당국자"와 "북한 정보원"이 해당 정보를 어떻게 수집했는지 공개하지 않는 이상, 짧은 시간 안에 이 뉴스가 사실인지 검증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렇다면 검증을 포기해야 하나?
북한이 제정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서 처벌 조항은?
"괴뢰영화나 록화물, 편집물, 도서, 노래, 그림, 사진 같은 것을 보았거나, 들었거나, 보관한자, 또는 괴뢰노래, 그림, 사진, 도안 같은 것을 류입, 류포한자는 5년 이상 10년 이하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 정상이 무거운 경우에는 10년 이상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 괴뢰 영화 록화물, 편집물, 도서를 류입하였거나 류포한 경우에는 무기로동 교화형에 처한다" -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제27조 (괴뢰사상문화전파죄)
위의 법 조항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한국의 문화콘텐츠를 보았을 경우, 처벌은 '5년 이상 10년 이하의 로동교화형'에 해당한다. 최근 몇몇 언론을 통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따라 청소년에 대한 처벌이 있었다는 탈북자 증언이 공개된 바 있다. 다만 위의 처벌 규정과 앞서 언론이 보도한 '청소년 30명 공개 처형' 내용은 분명 차이를 보이고 있다.
보수적으로 해석하더라도 단지 대북 전단에 실린 USB에서 한국 드라마를 봤다는 이유로 '청소년 30명을 공개 총살'했다는 뉴스는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아무리 북한이 독재국가라 하더라도 사회를 통제하기 위한 법규준수(사회주의 법무 생활) 또한 강조되고 있다. 이례적인 처벌 사례가 있다 해도 한두 명도 아닌 30여 명의 청소년을 법에 규정된 처벌 형량과 달리 그것도 집단으로 공개 총살했다는 말은 여러모로 의문점이 남는다.
북한의 인권 상황은 알려진 바와 같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며 이와 관련한 우리 정부와 언론의 합리적인 비판과 대안 제시는 지속되어야 한다. 다만 북한의 내부 정보가 제대로 된 검증 프로세스 없이 자극적인 단어로 무분별하게 기사화되는 것은 우리 국민이 제대로 북한을 이해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데 걸림돌이 될 뿐이다.
▲ 북한, 내각 전원회의 확대회의 개최 북한은 19일 노동당 제8기 10차 전원회의 결정을 철저히 집행하기 위한 내각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개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 |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
먼저 정부는 북한에서 획득한 정보를 어떻게 검증할 것인지, 검증 프로세스를 마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크로스 체크를 통한 정보 검증과 전문가의 재검증 절차 등을 통해 정보의 신뢰도를 높이고 해당 정보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오염 가능성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외부전문가가 포함된 위원회가 북한 정보에 대한 검증프로세스가 제대로 운용되고 있는지 운용실태를 점검하는 과정도 마련되어야 한다.
정부가 언론을 통해 북한 정보를 국민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정부 당국자', '통일부 관계자' 등의 익명에 기대는 관례는 타파해야 한다. 정보 제공자는 공인으로서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밝히고 해당 정보가 수집된 과정을 제시함으로써 정보의 공신력을 높여야 할 것이다.
우리 언론 또한 북한 정보를 국민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자체의 검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관련하여 우리 언론 현업인 3단체(한국기자협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및 한국PD연합회)는 '평화통일과 남북 화해 협력을 위한 보도 제작 준칙'을 제정해 운용하고 있다.(관련 자료 : 평화통일과 남북 화해 협력을 위한 보도 제작 준칙)
해당 준칙은 총강에서 "우리는 냉전시대에 형성된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보도·제작함으로써 남북 사이의 공감대를 넓혀 나간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도실천요강의 '각종 추측 보도 지양' 항목에서는 "국내외 관계자들이 무책임하게 유포하는 각종 설은 보도하지 않는다. 다만 취재원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는 예외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망명자의 증언 취사' 항목에서는 "망명자의 증언은 그로부터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만 기사화"하며, "전언이나 추정 등을 기사화해야 할 경우는 '전언', '추정' 등을 명기"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언론이 이 준칙을 제대로 준수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북한에 대한 정보는 북한의 폐쇄성으로 인해 익명에 기대거나, 재검증이 어려운 한계로 왜곡되기 쉽다. 만약 북한 정보가 왜곡된다면 남북관계가 왜곡될 것이고 한반도에서 갈등이 증폭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관련하여 정부는 북한 정보에 대한 체계적인 검증 프로세스를 운용하고, 언론은 스스로 만든 보도 제작 준칙을 준수할 필요가 있으며, 시민사회가 이를 재검증하는 노력 또한 병행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정일영씨는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입니다. 관심분야는 북한 사회통제체제, 남북관계 제도화, 한반도 평화체제 등으로, <한반도 오디세이>, <한반도 스케치北>, <북한 사회통제체제의 기원> 등 집필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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