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시내 점령한 케이팝 패션, 15년 살면서 처음 봅니다

박은영 2024. 7. 2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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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MZ들 사이에서 유행 중인 '한국 아이돌 코디', 일본 사회도 동향 주시

[박은영 기자]

 일본에 진출한 인기 아이돌 뉴진스의 콘셉트포토
ⓒ ador
    
일본 도쿄 시내의 한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는 라이(19)씨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누나들의 영향으로 케이팝(K-POP)을 처음 접했다. 초등학교 동창이 한국에서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유튜브에서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을 챙겨보며 '최애'를 발견해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한국 아이돌 콘서트에 가고 각종 굿즈를 산다. 지난 여름에는 한국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서울 여행을 떠났다. 한국 드라마에서 본 대로 치킨을 시켜 먹고 네컷사진을 찍었다. 그는 올가을 한국어능력시험(TOPIK) 응시를 목표로 한국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나는 올해로 일본 생활 15년 차다. 몇 년 전만 해도 중년 여성들 사이에서 통용되던 '한류'의 모습이 최근 들어 달라짐을 느낀다. 무엇보다 한국에 관심을 쏟고 한국 문화를 즐기는 연령층이 젊어졌다. 올해 8살인 아이의 학교 친구들에게 "나는 한국인"이라고 하면 "안녕하세요", "맛있어요" 같은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튀어 나온다. 한국 아이돌 노래를 즐기기 위해 부모와 함께 한국어를 공부하는 아이도 있다.

스케일도 커졌다. 세계적인 스타들만 설 수 있던 대형 스타디움에서 콘서트를 여는 한국 가수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본 현지 언론들은 콘서트장 앞에서 미처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벽에 귀를 대고 음악을 듣는 모습을 보도하기도 했다. 3만 명, 혹은 5만 명의 관객석을 가득 채운 일본 관중들이 한국어 현수막을 들고 한국어로 떼창을 부르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블랙핑크·트와이스... 한국 아이돌 패션 따라하는 일본 10대 여성

한국인도 깜짝 놀라는 일본인, 특히 일본 젊은 세대의 한국 사랑. 그 배경에는 케이팝 가수들이 있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케이팝의 전 세계적 유행을 지켜봐 온 일본 젊은 세대에게 한국은 '쿨하고 힙한' 나라다. 그들에게 케이팝 가수들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따라하고 싶은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15일 <니혼케이자이신문>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해당 매체는 "한국 것이라면 초 단위로 구입하는 10대. 한국 아이돌의 SNS가 갱신되면 바로 가게로 달려간다"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한국에 대한 10대들의 호감이 한국 관련 상품에 대한 적극적인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5월 오사카 얀마 스타디움 나가이에서 열린 `트와이스의 공연 모습. 5만여 좌석이 관객들로 꽉 찼다.
ⓒ 트와이스 공식 인스타그램
 
기사에 따르면, 특히 강세를 보이는 것은 패션 분야다. 소비자 동향 분석업체인 '라쿠마라보'가 364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패션에 참고하고 있는 나라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10대 여성 응답자 4명 중 3명이 한국을 꼽은 것이다.

해당 조사에서 한국을 첫 번째로 꼽는 10대 여성은 2019년 이후 줄곧 70%대를 유지하고 있다. 10대에 한해서는 조사가 시작된 2016년 이후 8년 연속 한국이 1위를 차지했다. 반면 줄곧 2위에 머무르던 미국의 영향력은 2016년 24.9%에서 2023년 8%까지 감소했다.
     
또한 '패션에 참고하는 구체적인 인물'로는 블랙핑크(1위), 트와이스(2위), BTS(4위), 르세라핌(6위) 등 한국 아이돌들의 이름이 줄을 이었다. 상위 10위를 뽑는 랭킹의 절반 가까이가 한국 아이돌로 채워진 것이다.  

위의 매체는 일본 젊은 세대 사이에 한국 아이돌 패션이 유행하는 현상과 관련해 전문가의 말을 인용, "한국에서 아이돌이 되면 세계에서의 성공이 보장된다. 히트 상품에 관해서도 같은 구조가 적용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그 근거로는 BTS와 블랙핑크 등 한국 아이돌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는 현상을 들었다.

특히 일본의 젊은 세대가 한국 패션을 접하는 경로는 인스타그램이 55.6%, 유튜브가 26.0%, 그 외 인터넷 사이트가 18.6%를 차지한다. 온라인에 익숙한 일본의 젊은 세대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케이팝 가수들의 SNS를 통해 한국의 최신 유행을 실시간으로 접하고 관련 상품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패션 넘어 한국어 공부까지... TOPIK 응시자도 늘어
     
일례로 도쿄 시내를 걷다 보면 한국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옷과 액세서리를 걸친 젊은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무선 헤드폰을 목에 건 젊은이들도 눈에 띄는데, 이 역시 한국에서 비롯된 유행이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Y2K' 패션의 영향으로 케이팝 아이돌들이 헤드폰을 액세서리처럼 착용한 사진을 SNS에 올린 게 계기가 됐다.
   
실제로 젊은층의 행동을 조사하는 '시부야랩'이 14~24세 여성 5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트렌드 대상 2023'에 따르면 2023년 패션 트렌드 2위는 '헤드폰 코디'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도쿄 긴자에 있는 한 전자상가에서는 지난해 가을부터 해드폰 매장에 전신 거울을 설치하고 있다. 매장 관계자는 "헤드폰은 음악을 듣는 도구뿐만이 아닌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소비자들이 옷가게에서 옷을 시착하는 감각으로 헤드폰을 시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일본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게시물. 왼쪽은 블랙핑크 제니가 광고하는 아이웨어 브랜드 소개사진, 오른쪽은 무선헤드폰 추천 이미지. (사진 출처 : yoona_trend/oasis_clothing)
ⓒ instagram
    
일본 언론들은 한일 상호 교류가 긴밀해질수록 일본 젊은층이 한국을 패션 아이콘으로 인식하는 추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더 나아가 젊은층들의 관심이 패션과 음악뿐만이 아닌 언어나 문화 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현상에도 주목하고 있다.

2023년 일본에서 한국어능력시험(TOPIK)에 응시한 수험생은 4만1059명이었다. 해당 시험이 처음 실시된 1997년 1529명에 비교하면 26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한국으로 유학을 가는 일본인도 늘어나고 있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2018년 한국 내 일본 유학생 수는 3977명이었는데, 2022년에는 5733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케이팝과 한국 문화를 계기로 한국을 알고, 한국 사회와 문화를 체험한 이들이 사회의 주역으로 활약할 날이 머지않다. 이들의 존재가 향후 한일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일본도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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