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균의 열정 담긴 재난영화 ‘탈출’… 김태곤 감독 “한 명이라도 더 봐주길”
실제 차 부딛치며 100중 추돌 촬영
이선균, 캐릭터 구축부터 적극적 참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가 드리워진 공항대교. 그 위를 한 스포츠카가 위험하게 질주하고, 결국 100중 연쇄 추돌 사고가 벌어진다. 기나긴 공항대교에 꼼짝없이 갇힌 사람들과 그 위에 풀려난 통제 불능의 군사용 실험견들. 설상가상으로 실험견을 빼내기 위해 투입된 헬기가 추락하고, 그 여파로 대교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에 이른다.
현실에 있을 법한 재난 위에 군사용으로 개발된 실험견이란 상상이 더해진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탈출)가 지난 12일 개봉했다. 영화는 올여름 사실상 유일한 블록버스터 한국 영화인 데다 故 이선균의 유작이기도 해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탈출’을 연출한 김태곤 감독을 만났다. 이선균의 유작이라는 게 부담스럽진 않은지 묻자 김 감독은 “여러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마음이 무거웠던 건 사실”이라면서도 “영화를 제작한 입장에서도, 선균이 형을 생각해서도 조금이라도 더 많은 관객이 우리 영화를 보는 게 좋은 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 5일까지도 후반작업을 했다”고 답했다.
영화는 지난해 제76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 상영됐을 때보다 러닝타임이 6분가량 줄었다. 김 감독은 “요즘 관객들은 감정을 과잉시키는 장면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음악이 선행되어 감정을 강요받는 느낌이 드는 것도 선호하지 않는 듯해 음악의 톤도 많이 수정했다”며 “전반적으로 영화의 속도감과 긴장감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96분이다.
재난 상황의 실감 나는 구현을 통해 영화에 대한 몰입감을 높였다. 100중 추돌 사고를 연출한 건 ‘탈출’이 국내에서 처음이라고 한다. 이 장면은 실제로 차를 박아가며 만들었다. 김 감독은 “광양에 있는 커다란 공터를 빌려 실제로 속도를 내어 추돌하며 촬영했다. 그 장면은 배경만 컴퓨터그래픽(CG)”이라며 “이 장면이 가짜처럼 보이면 뒤에 나오는 개들은 더 가짜처럼 보일 것 같아 초반부는 실재감을 살려 제작했다”고 말했다. 영화의 큰 축을 담당하는 실험견 ‘에코’들은 전부 CG다.
김 감독은 “일상적인 공간에서 어떤 하나의 일상이 공포스러운 존재로 바뀌었을 때의 공포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그 무서운 존재로 개를 택한 이유는 뭐였을까. 이는 김 감독이 홀로 목포에서 서울까지 걷는 도보여행을 하다가 20마리 정도의 들개 떼를 만난 경험에서 탄생했다. 그는 “그때 일상적으로 봐왔던 개들이 내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위협적인 존재로 변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여기에 깊이 있는 주제를 담으면 재밌는 얘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탈출’에서 실감 넘치는 추돌 장면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건 주지훈의 변신이다. 그는 헤어피스를 붙여 길게 늘어트린 머리와 지저분한 옷차림, 아무에게나 반말하고 깐족거리는 소위 ‘양아치’ 레커 기사 조박으로 등장한다. 조박의 외관 스타일링은 주지훈이 김 감독에게 적극 의견을 내서 완성했다.
이런 변신을 시도한 이유를 묻자 주지훈은 “관객들이 숨 쉴 수 있게 기능성이 부과된 캐릭터를 좋아한다”며 “영화 안에서 제 캐릭터가 특히 재치 있는 인물이기도 하고, 감정을 표출하는 방법도 재밌어서 연기하는 맛이 있을 것 같았다”고 답했다. 조박은 반려견 조디와 함께 무거운 영화의 분위기를 풀어준다.
주지훈은 영화에서 유독 몸 고생을 많이 했다. 승용차 트렁크에 들어가 뒷좌석과 이어지는 구멍에 얼굴을 넣은 채 연기하고, 직접 입으로 위스키를 뿜는 불쇼도 여러 번 했다. 이때 위스키가 침샘으로 역류해 염증이 생겨 일주일을 앓았다며 “침샘과 맞바꾼 장면”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탈출’은 재난영화의 정석을 충실히 따라간다. 부녀, 자매, 부부, 반려견 가구까지 다양한 관계를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중심이 되는 건 정원(이선균)과 경민(김수안) 부녀의 이야기다. 일밖에 모르던 정원이 딸과 함께 목숨을 건 탈출을 하고, 믿었던 상관 현백(김태우)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변화하는 모습이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뻔할 수 있는 캐릭터에 현실감을 불어넣은 건 이선균이었다. 김 감독은 “원래 정원은 전형적인 다정한 아빠였는데 이선균 배우가 ‘요즘 그런 아빠가 어딨어. 엄마도 없는 상황에서 아빠가 청와대 일을 하는데 당연히 갈등이 있어야지’라는 의견을 냈다. 그렇게 ‘츤데레’ 아빠 캐릭터를 구축해 나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선균은) 되게 깐깐한 사람이었다. 어느 것 하나 대충 찍자는 게 없었다”며 “이선균 배우가 구심점을 잡고 영화를 훌륭하게 이끌어갔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올여름은 이선균의 유작들이 모두 관객을 만난다. 현재 상영 중인 ‘탈출’ 외에 그가 출연한 영화 ‘행복의 나라’는 다음 달 14일 개봉한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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