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올리겠다"…사이버 레커 '공갈∙협박' 일반인도 손댄다
#1. 대학 편입 관련 플랫폼에서 일하던 강사 장모(26)씨는 원장 최모(33)씨가 수강생 10명을 성추행했다는 사실을 수강생으로부터 듣고, 최씨의 성범죄를 폭로하는 영상을 2021년 8월 자신의 유튜브 계정에 올렸다. 1주일 뒤 장씨는 최씨에게 “피해자들로부터 대리할 권한을 위임받았다”며 “나와 합의하지 않으면 추가로 폭로하겠다”고 돈을 요구했다. 보름 뒤엔 “성범죄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이 10명 더 있다”고 협박했다. 장씨는 이후 최씨 변호인을 통해 총 2억 1500만원을 송금받았다. 하지만 장씨는 피해자들로부터 대리 권한을 위임 받지도 않았고, 추가 성범죄 피해자 10명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22년 5월 서울동부지법은 장씨에게 사기·공갈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 50대 남성 A씨는 5년 동안 내연관계로 지낸 여성 B(50대)씨에게 “성관계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겠다”고 지난해 2월 협박했다. 자신이 새로운 여자친구가 생긴 것에 B씨가 화를 내면서 사이가 틀어진 뒤였다. 지난해 12월 수원지법 평택지원 형사1부(부장 안태윤)는 성폭력처벌법상 촬영물 협박 등의 혐의로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유튜브를 이용해 협박·공갈을 하는 건 이른바 ‘사이버 레커’만의 일이 아니다. 일반인들이 유튜브를 매개로 상대의 약점을 빌미 삼아 위협하거나 금품을 갈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이버 레커로 불리는 유명 유튜버에게 제보하겠다고 협박하는 경우도 있다. 형제 사이인 C씨·D씨는 2022년 10월 조건 만남을 미끼로 남성 2명을 모텔로 유인한 뒤 “유튜브에서 공개 처형당하고 싶냐”고 협박해 80만원을 뜯어냈다. 춘천지법은 공동공갈 등 혐의로 형제에게 지난해 징역 6월형을 선고했다. 서울 일선 경찰서의 한 형사과장은 “과거엔 가족 등 지인에게 약점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했다면, 최근엔 유튜브에 올리겠다고 위협하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유튜브를 허위사실 유포 도구로 악용하는 경우도 문제다. 유튜브 채널에 직접 나오거나, 라이브 채팅창에 등장해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식이다. 울산지법은 지난해 7월 정치 관련 유튜브 방송을 하면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공산주의자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고 말한 60대 김모씨에게 지난 11일 벌금 100만원형을 선고했다.
유튜브가 범죄에 악용되는 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사이버 레커들이 명예훼손이나 협박·공갈 등 범죄에 연루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서울의 한 경찰서 수사과장은 “유튜브 방송은 특별한 검증 없이 허위 사실을 방송할 수 있는 등 문턱은 낮은데, 파급력은 TV 등 기존 매체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폭로자 입장에선 피해자의 약점을 손쉽게 공개할 수 있다”며 “특히 사이버 레커들에겐 적은 투자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인 셈”이라고 말했다.
유튜브를 활용한 범죄는 느는 추세이지만 처벌은 세지 않다. 언론중재법·방송법 등은 유튜브 방송엔 적용되지 않는다. 유튜버 쯔양의 과거를 폭로하지 않는 조건으로 돈을 뜯어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유튜버 구제역(이준희)가 지난해 2월 또 다른 유튜버와의 통화에서 “고소당해봤자 끽해야 벌금 몇백만 원 나오고 끝나겠지”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일반인의 경우 파급력이 세지 않다는 점이 감형 사유로 자주 등장한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일반인은 영향력이나 출연 횟수 등이 적다 보니 기소유예나 약식기소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부 교수는 “방송통신심위원회는 허위사실 유포 콘텐트에 대해 삭제 권고만 할 수 있어 영상이 그대로 남는 경우가 많다”며 “수익창출 정지, 퇴출 등 엄격한 조치가 포함된 유튜브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범죄수익 환수 조건을 보다 넓혀 사이버 레커를 포함해 유튜브 악용 범죄자의 돈줄을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찬규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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