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도 "최후 수단" 권고…우려 터진 '익명 출산' 보호출산제, 왜
경제적 어려움 등을 이유로 양육하기 어려운 임산부가 신원을 밝히지 않고 출산할 수 있도록 하는 ‘보호출산제’가 19일부터 시행됐다. 상담을 거쳐 경제·심리·신체적 이유로 출산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가명으로 산전 검사부터 출산까지 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의료기관 출산을 꺼리는 임산부들이 밖에서 아이를 낳아 살해·유기·학대하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 이날 함께 시행된 출생통보제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됐다. 출생통보제는 아이가 의료기관에서 태어나면 출생 사실과 관련 정보가 지방자치단체에 통보되게 한다.
합법적 유기 수단 될까 우려…“질병·장애아 양육 포기 늘 수도”
하지만 보호출산제 도입으로 오히려 양육을 포기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합법적으로 영아를 유기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출산 이전뿐 아니라 출산 뒤 1개월 안에 보호출산을 신청할 수 있어,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아기를 유기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백선영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조직국장은 “보호출산제는 장애아 등을 손쉽게 포기하도록 해준 것”이라며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낙인을 감수하고 장애아 양육을 선택할 부모가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민지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유엔(UN)아동권리위원회는 충분한 지원책을 마련한 뒤에도 불가피할 경우에만 보호출산제를 최후의 수단으로 도입하라고 권고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논의 9개월 만에 급하게 시행됐다”며 “출산 뒤에도 보호출산 신청을 할 수 있게 해 임산부의 경제·심리·신체적 이유를 고려한 법 도입 취지보다 보호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고 지적했다.
아동 알 권리 vs 부모 익명성 보장
보호출산 아동의 알 권리와 이름을 밝힐 수 없어 보호출산제를 택한 산모의 권리 사이의 간극도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다. 현행 보호출산법(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보호출산으로 태어난 아이는 성인이 된 이후나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아 생모(母) 등 자신의 출생 정보에 대해 공개를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생모의 동의가 있어야만 이뤄진다. 생모의 익명성 보장과 아동의 알권리가 상충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또 생부(父)의 정보는 반드시 기록할 필요가 없다는 점, 보호 출산을 철회할 경우 정보와 관련된 절차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보호출산으로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부모가 정보공개 요구에 동의하기 쉽겠냐”며 “생부 정보를 게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임신·출산의 책임이 여성에게만 있다고 인식하게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양육 선택할 실질적 지원 없어…“임신기부터 종합적 대책 필요”
위기의 임산부가 보호출산을 결정하기에 앞서 양육하기로 마음먹을 수 있게 하는 실질적 지원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며 보호출산제 도입을 주장해왔던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의 양승원 사무총장도 “선(先)지원 후(後)행정을 통해 아기를 포기하지 않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선인데, 현재는 상담 외에 별다른 지원책이 없다”며 “이 상담마저도 보호출산제를 반대했던 기관 등 일부 전문성이 부족한 곳이 맡고 있다”고 말했다.
영아 생명을 보호하는 최후의 수단으로서 출산보호제가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선 위기에 처한 부모에게 임신·출산과 관련해 종합적인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보호출산제 도입과 함께 위기 임산부에 대한 지원책이 마련됐지만, 기존 한부모가정 지원 방안과 큰 차이가 없다”며 “임신기에서부터 종합적인 대책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보람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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