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에 고추장 넣고 비비면 밥 한 그릇도 부족하지

변영숙 2024. 7. 19.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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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여름철 별미 '오이지'를 담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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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숙 기자]

▲ 오이지무침 한국인의 대표적인 여름반찬 '오이지'
ⓒ 변영숙
 
아무리 머리를 짜도 그 오독오독한 식감을 글로 표현할 재간이 없다. 여름이면 우리 밥상에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 오이지.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 집 밥상에 올랐다.

해마다 6월 중순쯤 오이가 막 시장에 나올 때쯤이면 우리 집에서는 오이지 담그는 것이 연례행사다. 겨울에 김장을 담그듯 일종의 여름 김장처럼 오이지를 담근다.

"이번에는 오이지 몇 개나 담글 거야?
"글쎄 한 접? 반 접?"

"한 접에 얼마래?
"올해는 작년보다 오이 값이 좀 올랐어. 한 접에 15,000원이래."

"싸게 샀네? 우리는 며칠 전에 2만 원에 샀는데."
"짜지 않게 심심하게 잘 됐네. 작년에는 다 물러서 버렸는데…"

"너무 꼭 짰네?"
"덜 짜서 물컹거리네."

오이지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오이지 통도 바닥나고 여름도 지나간다.

아버지의 최애 반찬
 
▲ 오이지무침 대표적인 한국인의 여름철 반찬 '오이지무침'
ⓒ 변영숙
 
우리 집에서는 '오이지'는 조금 특별한 음식이다. 작고하신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여름 반찬이 오이지였던 까닭이다. 생전에 아버지는 '어딜 가봐도 네 엄마가 담근 오이지가 최고야!'라면서 오이지 반찬을 맛나게 드셨다. 게다가 아버지 기일이 막 여름이 시작되는 시점이라 오이지는 늘 아버지를 먼저 떠올리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10년이 넘는 동안 매해 오이지를 담가 무쳐 아버지 제사상에 제일 먼저 올렸다. "오이지 좋아하는 양반, 오이지나 올려 드려야지" 하면서 곱은 손으로 꼭 짜서 손수 무친 오이지를 올려놓는 것이었다(그 모습이 왜 그리 애잔했던지).

어머니의 그런 행동이 '오이지'와 아버지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게 만들었고, 오이지가 없는 제사상은 어딘가 허전하고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듯 찜찜한 기분이 들게 했다. 그런데 지난해 어머니는 "올해는 오이지 안 담그련다" 하시더니 정말로 오이지를 담그지 않으시는 것이었다.

당연히 제사상에도 올리지 못했다. '왜 안 담그냐고 물었더니 그냥 귀찮다'라고만 하셨다. 어머니의 그 말이 이상하게 섭섭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존재가 잊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여름철 밥도둑

며칠 전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오이지 무쳐 놨다. 가져다 먹어라."

올해 어머니는 누가 등을 떼밀지도 않았는데도 "올해는 오이지 반 접만 담글까?" 하시더니 일찌감치 오이지를 담그셨다. 그 오이지가 다 익어 맛이 들었는지 벌써 무쳐서 가져다 먹으라는 것이었다.

"음 역시 이 맛이야. 엄마표 오이지~. "

들기름 듬뿍 쳐서 고소하고 꼬들꼬들 씹히는 맛은 아버지의 극찬이 아니어도 천하의 백종원도 흉내 낼 수 없는 맛이다. 오이지무침에 밥 한 공기 쏟아 넣고 고추장 한 숟갈 넣어 슥슥 비벼 먹으면 입맛 없는 여름철 밥도둑이 따로 없다.
 
▲ 오이지물김치 한국인의 대표적인 여름반찬 '오이지물김치'
ⓒ 변영숙
 
오이지 냉국은 또 얼마나 시원한가. 오이지에 찬물을 붓고 파 송송 썰어 넣고 기호에 따라 설탕이나 식초를 적당하게 넣으면 끝이다. 한 시간 정도 두었다 먹으면 오이지의 짠맛이 우러나 따로 간을 할 필요도 없다.

어머니는 오이지 짤순이는 주방 한구석에 처박아 놓고 굳이 손으로 짜서 무친다. 손으로 짜야 어느 정도 물이 짜졌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 어머니의 설명이다. 짤순이 꺼내서 설치하고 설거지하고 하는 것이 더 번거롭다는 것도 큰 이유이다.

"엄마 근데 작년에는 왜 오이지 안 담갔어?"
"작년에는 코로나도 앓고 몸이 아파 죽겠는데 뭘 만들고 싶겠냐?"

아뿔싸. 그랬구나!. 그런 줄도 모르고 섭섭해했으니 어머니께 죄송한 마음 가득하다. '엄마가 얼마나 섭섭했을까.'

내가 무친 오이지
 
▲ 오이지  대표적인 여름 반찬 오이지
ⓒ 변영숙
 
올해는 나도 생전 처음으로 오이지를 직접 담갔다. 의외로 어려운 것은 없었다. 오이를 깨끗이 씻어 통에 담고 소금물을 팔팔 끓여 붓기만 하면 됐다. 열흘 정도 기다리니 오이지가 완성됐다.

"엄마 이거 먹어봐. 내가 담근 오이지로 무친 거야."
"오이지 담그는 법 물어보더니 담갔어? 맛있네. 근데 들기름이 좀 덜 들어간 것 같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내가 무친 오이지를 맛있게 드셨다. 

나도 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쉬운 것을 왜 그동안 어렵다고만 생각했을까. 왜 내가 담가서 어머니께 가져다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늙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아버지 제사상에 오이지 올리지 않는다고 섭섭해할 것이 아니라 내가 담가도 됐던 것인데. 어머니께 한없이 죄송하기만 하다.

해마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드릴 오이지를 담갔던 어머니. 이제 나는 어머니에게 드릴 오이지를 담가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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