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취업 술술... 취준생 몰리는 자소서 대필가, 알고 보니

김형욱 2024. 7. 19.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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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정직한 사람들>

[김형욱 기자]

 영화 <정직한 사람들>의 한 장면.
ⓒ 와이드 릴리즈
    
전문대 문예창작학과 출신의 보윤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형편 없는 스펙 때문에 취직은 일찌감치 접은 채 9급 공무원 시험 준비와 마트 아르바이트, 자기소개서, 일명 '자소서' 대필 일을 병행하고 있다. 약간의 거짓을 보탰을 뿐인데 그녀의 손을 거친 자소서로 대기업에 취직한 이들이 꽤 많다. 그런 한편 그녀는 마트에서 회사 물품을 자잘하게 빼돌리기 일쑤다.

강민은 보윤의 12번째 고객이다. 월세를 6개월째 못 내고 과방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동기들한테 돈을 꾸러 다니는 신세다. 당장 거리에 내앉게 생겼으니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하기만 한데, 꿋꿋하게 생존해 나가는 모습이 대단하다. 와중에 과 사무실 보조 자리를 얻어 한시름 놓을 찰나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린다.

세민은 보윤의 13번째 고객이다. 겉이 번지르르한 학생회장 출마자로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지만 실상은 가진 게 없다. 물질적으로도 인성적으로도 말이다. 와중에 강민에게 돈을 꿔주고 받은 명품 시계를 더 비싸게 중고로 파는데, 알고 보니 짝퉁이었다. 급기야 상대가 세민을 사기꾼으로 몰아가고 세민은 학생회장 출마는커녕 인생이 꼬일 위기에 처한다.

태호는 보윤의 9번째 고객이다. 그는 옥탑방에서 살며 자소서에 한 줄 제대로 쓸 것도 없는 스펙을 보유하고 있지만 자신의 처지를 완전히 속여 부잣집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세민한테 중고로 구입한 명품 시계를 주는데 손목에 차자마자 박살 난다. 태호는 세민의 대학교로 찾아가 그를 사기꾼으로 몰며 돈을 받아 내려 하지만 일은 이상하게 꼬여갈 뿐이다.

정직과 공정, 부정과 불공정
     
영화 <정직한 사람들>은 제목부터 나름의 '킥'이 있다. 영화 초입에선 보윤이 스스로를 '자소서 대필가'라고 소개한다. 자소서를 대신 '잘' 써주는 건 즉 한 사람의 인생 팩트에 픽션을 잘 가미하는 일이다. 정직, 나아가 공정이라는 단어와 정확하게 반대된다. 그녀에게 자소서 대필을 맡긴 이들이 하는 짓도 가관이다.

자소서 대필을 맡길 정도면 대략 짐작이 간다. 자소서에 쓸 만한 활동을 하지 않은(또는 못할 수도 있지만 핑계인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것이다. 그러니 말이 대필이지 자신이 직접 대면하지 않은 인생을 대신 만들어 달라는 게 아닌가. 하는 사람도, 맡기는 사람도 문제지만 대필 자소서를 잡아내지 못하는 기업의 인사 담당자 또한 문제 아닌가.
     
 영화 <정직한 사람들>의 한 장면.
ⓒ 와이드 릴리즈
 
영화의 주요 인물 모두가 20대 초·중반 청년이다. 지금 이 시대의 청년이 가장 목소리를 높이는 게 바로 '공정'의 문제일 텐데, 왜 이들은 공정하지 못한 짓을 하는 걸까. 자소서 대필 정도는 누구나 다 하는,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고정값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나아가 영화 속 청년들은 개인적으로 정직하지 못한 일을 저지른다. 회사의 물품을 빼돌리고 친구의 물건을 훔치고 중고 거래 사기를 저지르고 자신의 실상을 부풀린다. 심각하다면 충분히 심각할 테지만 별것 아니라고 하면 또 별것 아닐 수 있는 일이다. 이 또한 살면서 누구나 이 정도 일을 저지른다고 생각하는 걸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그래도 방식은 코믹하게 그렸다. 전반적으로 만연해 있는 불공정과 부정에 맞서, 최선(?)의 불공정과 부정으로 맞대응한다. 아마도 그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저 높은 곳에서 저지르는 부패와 비리일 테다. 그에 반해 그들은 스스로의 부정을 애처롭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영화를 보면, 제목을 보면, 청년들이 저지르는 부정을 보면 자연스레 생각할 수밖에 없다. 세상을 쥐고 뒤흔드는 거대한 부정의 실체를 말이다. 영화는 '청년'들에게 시간을 절대적으로 할애하고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 초점을 맞췄으나, 이면의 의도가 보인다.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하는 게 아니라 간접적으로 인지하고 느끼게 하는 훌륭한 작법이 아닐까 싶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엉성한 건 사실이다. 조금만 세세하게 들어가면 할 말이 너무나도 많다. 그럼에도 처음의 느낌과 기조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맛이 있다. 스스로도 엉성하다는 걸 인정하고 패기 있게 밀고 나가되 정녕 열심히 했다는 티를 낸다. 어설프지만 어설프지 않은 척을 하지 않으니 영화가 예뻐 보인다. 제목과 다르게 영화 만드는 데는 정직했다. 이런 영화, 오랜만이다.
 
 영화 <정직한 사람들> 포스터.
ⓒ 와이드 릴리즈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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