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 인근에 똥과 발자국이 즐비, 웃음이 났다
[박은영 기자]
▲ 천막농성장 근처에서 발견된 쇠살모사 |
ⓒ 임도훈 |
"뱀이야, 조심해!"
세종시 한두리대교 아래 그라운드 골프장을 향하시던 어르신 한 분이 세종보 텐트 쪽으로 기어가던 뱀을 보며 소리쳤다. 외마디 외침을 듣고 얼른 달려가 "저리가" 하면서 인기척을 내니 풀숲으로 사사삭 사라진다. 쇠살모사다. 폭우에 젖은 몸을 말리려고 잠시 볕에 나왔던 것 같은데 떡하니 텐트가 가로막고 있으니 놀라기도 했겠다.
▲ 강변에 남은 새들의 흔적 |
ⓒ 대전충남녹색연합 |
아침에 일어나 강변에 나서보면 너구리, 수달, 할미새, 백로, 왜가리, 참새, 고라니들이 새로운 길을 낸 흔적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잠이 들었지만, 이 친구들은 그때가 한창이었던지, 똥과 발자국이 즐비하다. 텐트 옆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두리번거리고, 먹을 것을 찾아 부지런히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난다. 우리에게 오늘의 계획이 있듯이, 이 친구들도 오늘을 살아갈 계획이 있는 것이다.
▲ 라이트트랩 빛으로 덫을 놓고 곤충을 관찰한다 |
ⓒ 대전충남녹색연합 |
더듬이긴노린재, 메추리 노린재, 등얼룩풍뎅이, 십자무늬긴노린재, 끝똥매미충, 말매미, 녹슬은방아벌래(클릭비틀), 팔좀날개매미충, 귀매미, 큰검정풍뎅이, 모가슴소똥풍뎅이, 수염풍뎅이...
농성장 근처에서 만난 곤충들의 이름이다. 지난 18일 밤, 천막농성장은 밤마실 프로그램으로 곤충친구들을 만나는 라이트트랩을 진행했다. 대전, 세종의 시민 20여명이 참여했다. 곤충전문가인 생태평가연구원 이호단씨가 진행을 맡아 안전하고 재미있게 관찰할 수 있었다. 라이트트랩은 곤충이 좋아하는 환한 조명공을 켜서 곤충들을 유도해 관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관찰만 하고 불을 끄면 다시 흩어지기 때문에 서로 발걸음을 조심하며 관찰했다.
수염풍뎅이는 이날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두 수염을 반짝 올려 인사하는 듯했다. 말로만 듣던 멸종위기종 1급 수염풍뎅이가 모습을 드러내니 사람들은 신기해한다. 멸종위기종임에도 아직 연구된 내용이 많지 않아 관심이 그렇게 크지는 않다. 그래서 2주전에 신고를 했는데, 국립생태원이나 환경부가 나타나지 않는 모양이다. 오히려 참여한 시민들이 한마디씩 한다.
"우리 곁에 멸종위기종이 살고 있으니, 우리가 지켜줘야 한다."
되레 아이들이 곤충들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눈앞에서 사진으로 찍은 곤충들의 아름다운 무늬를 보면서 탄성을 내질렀다. 윤기나고 단단한 등을 가진 풍뎅이, 태극무늬를 닮은 나방, 무지갯빛이 도는 곤충들의 자태에 예쁘다고 환호했다. 아이들은 가장 작은 친구들을 만들어 준, 빛을 둘러싼 비밀의 모임을 엄마아빠와 함께 즐겼다. 이게 우리가 바라는 강의 풍경이다.
▲ 강변으로 떠내려온 쓰레기들 |
ⓒ 대전충남녹색연합 |
아침에 강가에 가면 많은 쓰레기들이 떠내려 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농사에서 나온 쓰레기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도시에서 사용하는 쓰레기들이다. 우리가 만든 쓰레기가, 강물을 따라 하류로 흘러내려가는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강은 이렇게 다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 강은 세종의 강, 공주의 강, 부여의 강 할 것이 없다. 강은 하나이고 가장 작은 친구들부터, 사람까지 강의 생명이 연결되어 있다. 강은 모두의 강인 이유다.
▲ 인조잔디를 뚫고 나온 풀 한포기 |
ⓒ 임도훈 |
나귀도훈(임도훈 보 철거 시민행동 상황실장)이 농성장에서 '새 학교'를 열자고 얼간이새(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에게 말한다. 가만히 앉아 나타나는 새를 관찰하고 그 이야기를 나누는 유유자적한 시간을 시민들과 함께 해보면 좋겠다는 취지였다. 라이트트랩 행사처럼 시민들이 참여해서 자연과 친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하자는 것이었다. 얼가니새는 고개를 끄덕였다.
▲ 농성은 계속 된다 |
ⓒ 이경호 |
"텐트 뒤집혀요!"
한두리대교 아래로 바람이 거칠게 몰아쳤다. 텐트가 180도로 뒤집혀서 뒹구는 것을 얼른 뛰어가 잡았다. 돗자리는 이미 풀숲으로 날아갔다. 텐트를 지지하던 줄도 끊어져서 나귀도훈이 보수작업을 하고 텐트가 날아가는 것을 막으려고 안에 들어가 누워버렸다. 사람이 안에 있는데도 바람은 매서운 기세로 텐트를 밀어냈다.
▲ 정의당과 정의당대전시당에서 대표, 실무단이 지지방문 했다. |
ⓒ 김병기 |
바람은 거침없이 불며 세상을 마음껏 뛰어다닌다. 이 천막농성장이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서도 당당하게 맞서는 거침없는 바람이었으면... 폭우에 천막농성장이 휩쓸리고, 텐트가 뒤집혔어도 곤충들과 친구가 되는 조촐한 행사를 벌이고, 두런두런 둘러앉아서 웃을 수 있는 건 우리가 품고 있는 희망조차 날려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라운드 골프장의 플라스틱 장막을 뚫고 솟아난 풀 한포기를 보라. 김수영 시인의 '풀'처럼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거친 바람에도 뽑히지 않는다.
"//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김수영 시인의 '풀' 중)
금강이 세종보에 막히지 않고 흐르는 그날까지 우리의 농성 천막은 풀처럼 이곳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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