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방송에서 차별 없이 일하고 싶다, 이게 전부예요"
[손가영]
▲ 2024년 3월 13일 울산방송 앞에서 열린 ‘무늬만 프리랜서 ubc울산방송 노동탄압 규탄집회’에 손민정씨(왼쪽)와 이산하씨(오른쪽)가 참가한 모습. |
ⓒ 울산방송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
ubc 울산방송 9년 차 CG 제작자 손민정(34)씨가 '100만 원 월급'으로 생활한 지 1년이 넘었다. 회사가 '하루 2시간 노동'으로 일감을 줄인 후부터다. 회사는 2년 전부터 그의 근무시간을 점점 줄이더니 급기야 새벽 5시 30분부터 오전 7시 30분까지, 2시간으로 줄여 버렸다. 당시 7년을 꼬박 3교대로 일해 왔던 그였다. 그는 지금 주급으로 25만 원씩 받는다. 공휴일이나 휴가가 끼면 10만 원 대로 주저앉는다.
9년 차 아나운서 이산하(32)씨는 7개월째 뉴스 편집을 하고 있다. 이 또한 회사의 강제 전보다. 산하씨도 2년여 전부터 일감이 점점 줄더니, 지난해 말 하나 남은 프로그램마저 폐지됐다. 이후 회사는 그에게 뉴스 영상 편집을 시켰다. 근무시간도 다른 정규직과 달리 '6시간'이다. 산하 씨는 부당 전보라 반발했으나 업무를 거부할 수 없으니 감내하며 일하고 있다.
산하씨와 민정씨는 왜 이런 일을 겪고 있을까? "비정규직 부당대우에 제 목소리를 내 당하는 보복 갑질"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둘은 울산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다. 입사 때부터 지금까지 계약서 한 장 써본 적 없는 '무늬만 프리랜서'다.
산하씨는 부당해고에 반발한 후부터, 민정씨는 정당한 근로계약을 요구한 후부터 일감 축소를 포함한 각종 괴롭힘을 수년째 버티고 있다고 주장했다. 각자 소송을 해오던 둘은 올해 1월부터 함께 문제를 공론화하며 얼굴을 드러내고 싸우고 있다.
갑자기 중단된 취재 업무
지난 6월 21일 울산 성남동에서 산하씨를 만나 투쟁을 시작한 이유를 들었다. 일정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한 민정씨와는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24살에 입사한 첫 직장이었어요. 소중했던 만큼 정말 진심을 다했어요. (해고 통보 전) 5년 동안 기상 캐스터, 뉴스 앵커, 취재기자, 라디오 DJ, 리포터, 영어 아나운서, 주말 당직, 회사 행사 진행, 거의 모든 방송 업무를 다 했어요. 앵커와 취재를 함께 맡던 때엔 매일 12시간 이상 근무하고 주말까지 출근한 날이 허다했어요. 그때 제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너 왜 아직도 집에 안 갔어?'예요. 보도국의 노예처럼 일했어요. 그런데 2020년 11월 30일, 영문 모를 괴롭힘이 시작된 거죠." (산하씨)
산하씨는 그날부터 상사가 5년간 매주 해왔던 취재 업무를 갑자기 중단시켰다고 설명했다. 회사 아나운서 소개란에서 산하씨 이름도 삭제됐다. 산하씨는 이를 괴롭힘이라고 판단해 회사에 신고했으나 "돌아온 건 또 다른 괴롭힘과 해고였다"는 게 그의 증언이다. 회사는 산하씨에게 2021년 4월 해고를 통보했다.
산하씨는 모든 법적 다툼에서 이겼다. 울산지방노동위원회(2021년 7월), 중앙노동위원회(2021년 11월), 행정소송 1심(2022년 12월)에서 '이산하는 울산방송의 노동자이고 부당해고를 당한 게 맞다'고 인정받았다.
회사는 중노위 패소 직후 그를 복직시키긴 했다. 그러나 회사가 제시한 건 급여 140만 원, 하루 소정근로 4시간의 '1년짜리 단기 근로계약서'였다. 산하씨는 복직 후 지금까지 근로계약서를 쓰지 못했는데, 이는 회사가 "서명할 수 없는 계약서만 들고 왔기 때문"이다. 이후에 제시한 계약서도 소정 근로 '월 30시간', 급여 210만 원의 계약서였다. 다른 정규직과 판이한 처우다.
"취업규칙은 하나인데 똑같이 적용돼야지 왜 나한테만 이를 적용하지 않는 것이냐"며 산하씨는 서명을 거부했다. 이후 그는 2022년 3월 자신의 정규직 지위를 확인하는 '일반직 직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6월 13일 승소했다(지난달 27일, 회사는 이에 항소했다 - 편집자 말). 이후 산하씨가 맡고 있던 프로그램 두 개가 2023년 9월과 12월 순차로 폐지되면서, 올해부터 산하씨는 아나운서 일에서 완전히 배제돼 뉴스 편집만 하고 있다.
"경력 인정해달라" 요구에 돌아온 건 월급 100만 원 일자리
"산하씨 노동위 승소 후에 회사에서 비정규직 흔적 지우기가 시작됐어요. 그때 사내 비상 연락망에서 저희(CG실 비정규직 3명) 이름이 빠졌거든요. 회사가 갑자기 프리랜서 계약서를 주더라고요. 근데 저는 프리랜서였던 적이 없어요. 그렇게 일한 적도 없어요. 그래서 계약을 거부했더니, 1년 후(2022년) 무기계약직 계약서를 주더라고요. 그때 제가 8년 차였는데 경력은 하나도 인정해 줄 수가 없대요. '이것도 충분히 양보한 것'이래요. 또 근무시간은 늘어나는데 급여는 전보다 줄더라고요. '이전 경력을 인정해달라'고 사인 못 하겠다 했어요."(민정씨)
그리곤 바로 이어진 게 일감 줄이기였다. 곧 3교대 근무에서 민정씨만 제외됐고 아침 뉴스로 옮겨져 새벽 5시 30분 출근하는 '하루 2시간 근무' 노동자가 된 것이다. 당시 민정씨는 회사의 압박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 처우가 바닥을 치는 걸 보면서 민정씨는 "삶을 통째로 위협받아,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며 "다 포기하고 그만두는 것, 그리고 싸우는 것, 이 두 개 외엔 선택지가 없었고 싸우는 것을 택했다"고 말했다.
민정씨는 2023년 3월 서울중앙지법에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하며 홀로 싸움을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부터 산하씨와 함께 자신들의 싸움을 사회에 알리기 시작했다.
▲ 2024년 5월 17일 울산방송 앞에서 열린 ‘비정규직 탄압 ubc울산방송 규탄 2차 집회’에서 이산하 아나운서가 발언하고 있다. |
ⓒ 울산방송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지역대책위 |
두 사람은 현재 회사에서 섬처럼 고립돼 있다. 새벽 5시 30분 출근해 아침 7시 30분 퇴근하는 민정씨는 다른 직원들과 얼굴 한 번 마주치기 힘들다. 하루 근무시간이 6시간인 산하씨는 밥시간인 휴게시간이 30분뿐이라, 동료들과 점심을 같이 먹을 수 없다. 물론 산하씨가 싸움을 시작한 이래 먼저 다가오는 직원도 거의 없다. 산하씨는 "직원들이 내 인스타에 '좋아요'도 누르지 못하는 게 지금 회사 분위기"라며 웃었다. 그는 "작은 문제라도 책잡힐 수 있기에 아예 회사 밖을 나가지 않는다"며 "점심은 시켜 먹거나 빵을 싸서 다닌다"고 했다.
"저희 요구는 다른 게 아니에요. 그저 남들이랑 똑같이, 차별 없이 일하고 싶다는 거예요. 당연한 노동자성을 당연하게 존중받고 싶어요. 그리고 일을, 방송을 정말 하고 싶어요. 이제 9년 차인데,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제대로 된 근로계약서를 너무 쓰고 싶어요."(산하씨)
두 사람이 회사 앞에서 규탄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과 집회를 연 지 6개월이 넘어간다.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산하씨는 "역설적이긴 한데, 시련이 깊었던 만큼 예전보다 내면이 굉장히 더 단단해졌다"며 "예전엔 불합리를 참고 살았다면 지금은 회사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당당히 제기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3월엔 'ubc 울산방송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지역대책위원회'도 출범했다. 두 사람의 억울한 사정이 알려지자 지역사회단체와 노조가 모인 것이다. 이들은 울산 방송 앞, 울산 시내 거리, 실소유주 삼라마이더스그룹 서울 본사 등에서 울산방송 규탄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은 사안을 더 알리기 위해 울산방송의 비정규직 보복 갑질 중단을 요구하는 서명운동도 시작했다.
"버티고, 또 버티고 있다."
두 사람은 지금 상황을 묻는 말에 이리 답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고 힘을 내라고 말해 주는 분들, 대책위 분들 덕분에 용기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산하씨는 "선망의 대상이던 방송사의 이면엔 사람을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존재로 취급하는 모습이 있었다"며 "내가 사랑하는 이 현장이, 공정과 정의를 말하는 이곳이 스스로 정의를 지키는 곳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동안 UBC 측은 이씨 관련 문의를 하는 언론에 "정당하게 협의 과정을 거쳐 업무 명령을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또 지난 1월 <미디어오늘>의 문의에는 "지난해 4명이 퇴직했는데 UBC는 신규 충원하지 않고 정규직 직원들을 전환배치했다"라며 이씨의 전환배치 또한 회사에 필요하기 때문에 진행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 울산방송의 비정규직 보복갑질 중단을 요구하는 서명운동.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
ⓒ 울산방송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지역대책위 |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손가영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 일터 7월호에도 실립니다. 한노보연 후원 문의 : 02-324-8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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