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 갈 뻔한' 침착맨, 이런 사과 방법도 있군요
[이의연 기자]
▲ 유튜버 '침착맨' 유튜브 영상 갈무리. |
ⓒ 침착맨 유튜브 캡처 |
"그냥 홍명보 감독이 싫은 거잖아."
지난 7월 15일, 구독자 수 250만 유튜버 '침착맨'이 라이브 방송 중 한 말이다. 당시 시청자들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홍명보가 선임된 것에 불만을 토로하자 나온 대답이었다. 이 발언으로 축구 팬들은 크게 분노를 표출했으며, 언론보도도 단기간에 쏟아져 나왔다.
침착맨을 좋아하는 편이다. 4년 전 삼국지연의를 그만의 독특한 입담과 창의적인 재해석으로 설명하는 방송을 접한 것이 시작이었다. 5시간이나 되는 분량임에도 지루할 틈이 없어 설거지, 청소 등 집안일을 하면서 틀어놓곤 했다. 이후로도 집안일을 할 때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그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콘텐츠를 꾸준히 틀어놓았다.
동시에 왠지 모를 인간적 호감이 있다. 쓸데 없는 관심사를 두고 입담을 펼치는 것이 주된 콘텐츠지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대한 자리에서는 주의 깊게 경청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초등학생 딸과의 게임에서도 이기고자 최선을 다하는 '딸 천재'의 면모를 보이는 동시에, 누군가 가족에 대한 선을 넘으면 단호히 대처하는 모습이 또 그랬다. 웃기지만 우습지 않은, 그런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랬기에 이번 사건은 적잖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열성적인 축구 팬이 아님에도 그랬다.
이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은 시스템의 총체적인 붕괴였다. 먼저 국제 경기에 전문성을 가진 여러 외국인 감독들과의 협상이 석연치 않게 결렬되었다. 유력한 감독 후보들이 한국 대표팀에 대한 분석과 훈련계획, 월드컵 전략 등을 열정적으로 어필하는 동시에 연봉도 삭감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음에도 지지부진한 협상 과정에서 떠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적으로 감독으로 선정된 홍명보는 감독 후보 중 유일하게 심층 면접조차 참여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심지어 홍명보는 국가대표팀 감독을 할 생각이 없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그럼에도 앞서 언급한 모든 외국인 감독을 제치고 선정된 것은 자연히 졸속행정, 특혜, 채용 비리 등의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전력강화위원이었던 박주호 전 선수는 홍명보 선임과 동시에 사퇴하며, 이 모든 불합리한 과정을 폭로했다. 과묵하기로 유명한 박지성 선수도 이례적으로 언론을 통해 작심 비판을 쏟아냈으며, 이영표, 구자철 등의 선배 세대 선수들도 뒤를 이어 협회를 비판했다.
▲ 유튜버 '침착맨' 유튜브 방송 갈무리. |
ⓒ 침착맨 유튜브 캡쳐 |
이 모든 이의 분노와 결심을 "그저 홍명보가 싫어서"로 일축한 침착맨의 발언은 분명 경솔했다. "이 이슈를 잘 모르지만"이라고 언급하며 사태를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의 관점임을 전제했음에도, 250만 유튜버의 발언이 축구 팬들의 마음에 준 상처는 분명했다. 지금껏 보아온 다른 많은 방송인과 같이 '나락'에 갈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당일 반응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사과를 하기도 했으나, 오히려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 유튜버 '침착맨' 유튜브 방송 갈무리 |
ⓒ 침착맨 유튜브 캡처 |
수많은 유명인의 추락을 지켜보았으나, 이런 식의 대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고서야, 경솔한 발언 정도는 충분히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일이 커지는 대다수 상황은 실수를 덮고자 더 큰 실수를 저지르는 데서 일어난다. 순간의 상황을 모면하고자 하는 다급함은 대체로 잘못된 곳을 향하기 마련이어서, 거짓말하거나, 고집부리거나, 핑계를 댄다.
다행히도 침착맨은 진실한 태도를 보였다. 본인이 잘 알지 못하고 경솔하게 발언했음을 인정할 뿐 아니라, 축구를 잘 아는 동료 유튜버를 초청해 알지 못했던 것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 통해 분노했던 많은 이들이 마음을 누그러뜨렸고, 심지어 이 소동을 통해 더 많은 일반인이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사태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의견도 나왔다. 또 한 사람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되어 안심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꼭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분열된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해하고자 몸을 기울이는 노력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는 각자의 작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세상을 이해할 뿐이어서 필연적인 소통의 균열이 발생한다. 크고 작은 소통의 균열은 오해와 상처를 낳고, 사람들을 갈등하게 만든다.
이 균열을 고치는 방법은 아마 '당신을 이해하고 싶다'는 태도일 것이다. 쉴 새 없이 실수하는 대화 속에서, 상대에 대한 악의가 없음을 증명하기에는 이만한 일이 없다. 그 이해가 완전한 진실에 이르지는 못할지라도, 그 태도만으로도 우리 사회의 분노가 조금은 누그러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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