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넓게 더 높게… ‘더 큰 것’을 향한 인간의 욕망

맹경환 2024. 7. 19.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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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사이즈
브츨라프 스밀 지음, 이한음 옮김
김영사, 428쪽, 2만2000원
인간은 큰 것을 욕망한다. 생산 및 교통수단의 거대화는 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이어져 인류에게 풍요를 가져다 줬다. 하지만 큰 것에 대한 집착은 허영 때문이기도 하다. 하늘로 뻗은 마천루나 자동차는 단지 필요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게티이미지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크기(사이즈)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다. 하지만 ‘익숙한 사이즈’(표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기가 막히게 감지한다. 계단의 높이와 넓이가 미세하게 달라져도 몸이 먼저 불편함을 느낀다. 대개 정확한 수치는 알지 못하지만 경험을 통해 많은 표준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완벽하게 측정하든 명확하게 잴 수 없든 크기는 일생생활에서 온갖 방식으로 중요하다. 통계분석의 권위자가 쓴 책은 ‘크기’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크다’라는 말은 언제나 중요함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큰 것을 선호하는 경향은 생애 초기부터 뚜렷이 드러난다. 대개 처음 사람을 그리는 유아들은 지면을 꽉 채울 정도로 그린다. 또 대개 좋아하지 않는 사람보다 좋아하는 사람을 더 크게 그린다. 성인이 되면서 큰 것은 성공의 상징이다. 집이든 차든.


욕망만으로 큰 것을 만들 수는 없다. 저자는 “크기 확대는 에너지의 유례없는 사용과 대규모 물질 동원을 통해 가능해졌다”고 설명한다.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인간과 동물의 근육에 의존하는 에너지, 목재·점토·돌과 몇 가지 금속에만 기댄 도구와 건축 재료만 사용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석탄과 석유가 에너지원으로 등장했고, 증기기관이나 내연기관과 같은 새로운 원동기가 새로운 산업과 교통수단을 만들어 내는 대전환이 이뤄졌다. 새로운 에너지의 풍요는 식량 생산의 확대로 이어졌고, 그 결과는 인구의 증가였다.

20세기 이후 크기의 기록은 계속 경신됐다. 1900년과 2020년 사이의 크기 변화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가장 큰 수력발전소의 용량은 600배, 용광로의 부피는 10배 증가했다. 고층 건물도 828m인 브루즈 할리파까지 9배 증가했고, 미국의 경제 규모는 32배 늘어났다. 정보의 양은 비교 불가의 엄청난 크기 증가가 이루어졌다. 1987년 미국 의회도서관의 장서는 84만권으로 전자 매체에 저장한다면 1테라바이트쯤 될 것으로 추정된다. 1997년 추정된 의회도서관의 소장물 추정치는 3페타바이트(1페타바이트=1024테라바이트)로 100년 사이에 3000배 넘게 증가한 셈이다.

하지만 인간은 필요가 아닌 ‘허영’으로 큰 것에 집착하는 경향도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자동차와 주택의 크기다. 1908년 포드의 모델 T의 무게는 540㎏이었지만 현재 렉서스 LX570의 무게는 2670㎏에 달한다. 자동차와 탑승자(70㎏ 성인 기준)의 무게 비율은 모델 T ‘7.7’에서 렉서스 LX ‘38’로 늘어났다. 고속버스 5, 자전거 0.1과 비교하면 놀라운 정도로 비정상적인 모습이다. 미국 주택의 크기는 1950년대와 비교할 때 현재 2.5배 이상 넓어지면서 1인당 평균 거주면적은 2.5배 커졌다. 집이 커지면서 냉장고와 TV도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나치게 큰 집, 거대한 자동차, 대형 냉장고가 소유자를 더 행복하게 해줬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인간은 무조건 크게 만들 수는 없었다. 물리적 한계도 있지만 경제적인 효율이 크기의 한계를 결정하기도 한다. 유조선의 크기는 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15배 이상 커졌지만 1970년대 이후 증가 추세를 멈췄다. 초거대 선박은 운하를 통과할 수가 없었고 크기가 커질수록 투자 대비 수익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의 몸 크기에 따른 뇌와 장기의 크기, 신체 대사의 변화를 걸리버여행기에 등장하는 소인과 거인을 통해 흥미진진하게 해설하기도 하고, 한쪽 집게발만 유난히 큰 농게 수컷도 등장시키면서 크기를 주제로 종횡무진한다. 그리고 다양한 크기가 출현하는 빈도에 관한 이야기에 이른다.

자연이건 인공물이건 엄청난 크기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그래프로 나타내면 평균을 중심으로 종 모양으로 대칭을 이루는 정규분포가 될 수도 있고, 완전히 비대칭의 분포를 보이기도 한다. 신생아의 키와 같이 정규분포라면 내 아이의 키가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저자는 비대칭에 주목한다. 소득과 부는 대표적인 비대칭 분포를 보인다. 극단적인 경제적 불평등을 의미한다. 지진이나 화산 분출이나 세계적 유행병 등 자연재해도 비대칭 분포다. 저자는 “앞으로 닥칠 대규모 지진이나 세계적 유행병에 결코 제대로 대비할 수 없을 것임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 세·줄·평 ★ ★ ★
·크기와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이 담겼다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끝까지 간다면 보람이 있다
·저자가 모든 것을 담으려는 욕심을 버렸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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