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약자 지원"... 윤 대통령의 말이 의심가는 이유 [소셜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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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근]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4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열린 스물다섯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는 '고맙습니다, 함께 보듬는 노동현장'을 주제로 진행됐다. |
ⓒ 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4일 민생토론회에서 '노동약자 지원과 보호를 위한 법률'(노동약자지원법)을 제정하겠다고 언급한 이후 고용노동부는 지난 6월 25일 자문단을 발족하면서 법 제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법률안에 미조직 근로자 공제회 설치 지원, 질병·상해·실업 시 보호, 노동약자 분쟁조정 협의회 설치, 표준계약서 마련, 미조직 근로자를 위한 정부 재정지원 등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노동약자를 지원하겠다는 것에 반대할 이유가 없겠지만 '노동약자'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이나 그동안 현 정부가 추진해 온 노동정책 등을 생각하면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표현의 강도는 다르지만 민주노총, 한국노총, 민변 노동위원회 등도 정부의 노동약자지원법 추진에 대해 비판 또는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되뇌던 정부가 실질적인 노동시장 개선책을 내기보다는 노사법치주의와 노동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조직노동에 대한 공격으로 일관했음을 감안하면 이번 노동약자지원법은 조직노동과 미조직노동을 구분하고 상대화하는 또 하나의 정책이라는 우려가 가시지 않는다.
대통령의 민생토론회 발언 직후 고용노동부는 사후 브리핑을 통해 "기존의 노동관계법과 제도는 조직화되고 전형적인 근로자를 중심으로 보호하는 데 좀 더 무게가 실려있는 만큼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약자를 두텁게 보호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법 제정이 시급"함을 강조했다.
'노동약자 정책전문가 자문단'의 공동단장인 권혁 부산대 교수도 "일하는 방식이 다원화하면서 근로계약을 전제로 설계된 기존 노동법제도 체계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었던 노동약자에 대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사회안전망을 확대·심화"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두 발언은 공통적으로 기존 노동법제의 노동보호 기능이 변화하는 노동사회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문제 진단이 이렇다면 우선적으로 기존 노동법제를 현실에 맞게 개선하는 처방을 내놓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을 위한 노동법 개선이라는 핵심적 처방을 외면한 채 공제회, 분쟁조정협의회, 표준계약서 등 주변적 처방을 내놓고 있다.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5인 미만 사업장
진단과 처방의 불균일성은 정책 추진 의도를 의심하게 만든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노동약자지원법을 둘러싼 몇 가지 쟁점과 과제를 살펴본다.
첫째, 노동자성 문제이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5월 16일 브리핑을 통해 "노동자성과 사용자성을 전제로 한 전통적인 노동법 체계와 달리 접근하겠다는 것이 노동약자지원법"이라고 언급했다. 노동약자지원법은 노동자성 문제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등 노동법은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법이다. 같은 얘기지만 노동자성을 인정한다면 당연히 노동법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그런데 기존 노동법이 아닌 별도의 법을 만들어서 노동보호를 하겠다는 것은 법 적용 대상자에게 노동자성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 접근에 해당한다. 이러한 논리구조에서는 정부가 노동자성 문제와는 다른 접근을 하겠다고 아무리 얘기하더라도 결국 '노동약자'의 노동자성이 없다는 것을 정책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는 의미일 수밖에 없다.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입법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 유성호 |
고용노동부장관은 사회적 논의를 토대로 노동약자지원법의 대상을 확정하겠다고 말했지만 대체로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 노동을 염두에 두고 법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론에 보도된 국세청 자료를 보면 종합소득세 납부자 중 '인적용역 사업소득'(고용관계 없이 노무를 제공하고 받는 소득) 원천징수 대상 인원은 2011년 328만 명가량이었고, 매년 50만 명 안팎의 증가를 거듭해서 2022년에는 847만 명에 달하고 있다. 이들은 3.3% 사업소득세를 납부하는 소위 '노무제공자'들이다. 이들 중 독립적 자영업자도 있지만 노동자성을 추정할 수 있는 종속적 자영업자도 상당수이다. 이들에게는 표준계약서, 공제회보다도 '오분류'로 인해 배제된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노동법을 적용하는 것이 우선적 과제이다.
유럽연합(EU) 의회가 지난 4월에 통과시킨 '플랫폼 노동의 노동조건 개선에 관한 지침'의 첫 번째 내용은 회원국들이 향후 2년 내에 고용지위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국내법으로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와 독립 계약자의 분류 기준에 대한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법인 AB5법(ABC 테스트법)의 효력에 대한 법적 논쟁이 미국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도 노동자성 범위가 확대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월 호주 의회를 통과한 '구멍 막기 법안'(Closing the Loopholes bill)도 플랫폼 노동자의 운임, 계정 정지 등 노동조건 결정에 최저기준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적인 흐름은 자영업자로 오분류되어 있는 독립계약자인 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에 대해 노동자성을 확대적용하는 과정에 있다. 고용 지위상 오분류 문제는 정부가 얘기하는 '노동약자'의 핵심 쟁점이다. 노동자성을 확대적용하고 있는 세계적 흐름에 한국도 호응해야 한다.
둘째,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 문제이다. 추상적 개념의 '노동약자'가 아니라 저임금, 고용 불안정이라는 구체적인 문제는 5인 미만 사업장에 집중되어 있다. 근로기준법의 해고제한 조항, 시간외근로 가산수당 조항 등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5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라고 무조건 약자에 들어간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얘기했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을 빼고 '노동약자'를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조사자료에 의하면 2023년 기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380만 명이고 매년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지원은 근로기준법을 확대적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고용노동부는 '2023년 주요 업무 추진계획'에서 "노무제공자 권리보장을 위한 입법과 함께 근로기준법도 근로자 인격권 보호를 중심으로 사업장 부담을 고려하면서 5인 미만 사업장에 단계적으로 적용 확대"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더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 민주노총 특수고용노동자 대책회의 관계자들이 지난 6월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노동권 보장을 위한 노조법 2·3조 개정 요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 연합뉴스 |
셋째, 지원책의 실효성 문제이다. 노동약자지원법안이 아직 구체화하지는 않았지만 앞서 자문단장 권혁 교수의 언급을 미뤄보면 노동약자에 대한 사회안전망 확대를 법안 내용에 포함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지원의 실효성이다. 사각지대 노동자에 대한 사회안전망 적용은 이미 시행하고 있는 '노무제공자'에 대한 고용보험, 산재보험 적용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노무제공자 개념이 도입된 개정 고용보험법이 2022년 1월에 시행되고, 전속성 조항과 적용제외 신청 조항이 폐지된 개정 산재보험법이 2023년 7월에 시행되면서 대부분의 플랫폼 노동자는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에 의무가입하게 되었다. 전속성 조항이란 "주로 하나의 사업 운영에 필요한 노무를 상시적으로 제공하고 보수를 받아 생활"해야 한다는 조건을 말한다. 법 개정에 따라 산재보험에 가입된 노무제공자 규모가 2022년 80만 5000명에서 2023년 7월 145만 8000명으로 크게 증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용보험, 산재보험 가입을 의무화했다고 해서 사회안전망의 보호효과가 플랫폼 노동자에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개의 플랫폼을 이용하는 플랫폼 노동자의 경우는 '실업'의 개념이 일반 노동자와 달라서 부분실업이 인정되지 않는 현재의 제도에서는 실질적인 고용보험 가입효과를 누리기가 어렵다.
산재보험도 비슷하다. 일반노동자의 경우 휴업급여의 하한선이 최저임금으로 정해져 있으나 플랫폼 노동자의 경우는 하한선이 없다. 생활에 필요한 급여 수준에 못 미치는 휴업급여를 받으며 산재치료를 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산재보험에 의무가입했으나 산재로 인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아파도 일할 수밖에 없는 것이 플랫폼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플랫폼 노동자의 사회보험 가입을 넘어서 실질적인 보험 가입 효과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플랫폼 노동의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 고용보험에서 '부분실업' 인정을 적극 검토해야 하고, 산재보험제도 역시 노무제공자에게 최저임금에 준하는 휴업급여 하한선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약자지원법의 취지가 제대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앞서 살펴본 노동자성 문제, 근로기준법 확대적용 문제, 정책의 실효성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문제의 본질을 비껴가는 방식은 노동자들의 호응을 얻기 어렵다.
▲ 남우근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
ⓒ 남우근 |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남우근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근 관심은 돌봄노동,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입니다. 보건복지자원연구원 정책연구위원, 우분투재단 운영위원, 노동공제연합 풀빵 운영위원 등 노동 관련 단체의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는 <다시 묻는 사용자책임 - 간접고용 노동 실태와 해법>(공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의 길>(공저) 등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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