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동극 대표주자, 외계인 재료로 빚은 코미디

김성호 2024. 7. 1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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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787]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갤럭시 가도>

[김성호 기자]

그간 많은 영화제를 다녔지만, 첫날부터 마지막까지 영화제의 모든 일정을 다 소화한 적은 없다고 봐야 옳을 듯하다. 어쩌다 하루 이틀 상영이 전부인 지역의 작은 영화제를 들른 일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기획전 수준의 영화제였던 탓이다.

무주산골영화제와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기간 내내 지역에 머문 일이 있기도 하였으나 이 또한 영화제를 즐겼다 하기엔 무리가 있다. 산 좋고 물 좋은 지역을 찾은 김에 하루이틀만 영화제에서 보내고 남은 날은 캠핑장에서, 또 산자락에서, 아니면 친구들과 술판을 벌이며 지냈던 것이다.

그러니 올해 봄 열린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는 내게 특별할 밖에 없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영화제 전일을 전주에서 보냈던 때문이다. 올해는 영화제 기간 치곤 이례적으로 이런저런 잡지에서 글을 써달란 청탁 또한 전혀 잡지 못하고 방문하였다. 한없이 긍정적으로 표현하자면 한 명의 영화팬으로서 순수한 마음으로 찾은 자리였다 할 수 있겠다.

1일부터 10일까지 열흘의 시간이 전주에서 주어졌다. 본래 영화를 보는 틈틈이 소설이며 출판할 글의 원고를 매만지다 오면 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였으니 그건 여행지에서 현지 사람들과 사귀고 싶다는 오지랖의 발동이자, 좋은 이를 알아채어 사귀려는 본능의 발현이라 보아야 좋을 듯하다.
  
▲ 갤럭시 가도 스틸컷
ⓒ BIFAN
 
영화제서 만난 특별한 인연

전주에서 여러 사람과 만났다. 영화 뿐 아니라 책과 술, 음악과 음식을 즐기는 이가 많았고, 쇠락하는 지역을 되살리겠다는 야심만만한 활동가들도 있었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하나가 오늘 영화를 포함하여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내가 본 영화 대부분을 추천한 이가 되겠다. 전북영화문화방 소속으로 문화를 애호하는 지역인들과 활발히 교류하는 조성민씨가 바로 그다.

명색이 기자 출신 작가이자 영화평론가로, 또 이런저런 잡지에다 2004년부터 글을 팔아온 나다. <오마이뉴스> 연재만 해도 2014년부터 10년 넘게 이어왔으니 어디 가서 영화에 대한 관심이며 애정, 지식이 밀릴 때가 얼마 없다. 그러나 조씨와 만나 이야기한 뒤 나는 내가 근 몇 년 동안 얼마나 안이하고 해이해져 있었는지, 또 영화를 진정으로 아끼던 시절로부터 얼마나 변해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그는 한 해 한국에서 개봉하는 영화 가운데 사분의 일 쯤은 극장서 챙겨보는 보기 드문 마니아이며, 여러 영화제에 발품을 팔아 한국에 수입되지 않을 법한 작품을 중심으로 챙겨보는 이다. 말하자면 한 해 못해도 수백 편은 본다는 건데, 주말이면 서너 편씩 연달아 보고 카톡방에 인증을 하는 모습을 확인하니 과연 실감이 갔다. 시사회며 영화제를 찾아달란 얘기를 듣고도 바쁘다며 손을 내저을 때가 많은 스스로가 민망하게 느껴질 정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그가 각별히 좋아하는 영화제라 했다. 제가 나고 자란 전주의 영화제보다도 이 영화제를 좋아하여 매해 여름 부천을 찾는다 하였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아끼는 이가 대부분 그렇듯이 이 영화제가 가져오는 작품군의 독특한 색채와 표현을 그가 마음에 들어 하는 듯했다. 전주에서 잠시 보았던 그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픈 마음으로 나는 일정을 맞추어 그가 본다는 영화를 따라 보았다. 그중 한 편이 바로 <갤럭시 가도>다.
 
▲ 갤럭시 가도 스틸컷
ⓒ BIFAN
 
일본 소동극의 대표주자, 10년 만에 소개된 작품

조씨는 제가 내게 소개한 다른 영화와 달리 <갤럭시 가도>는 신작이 아니라 소개했다. 2015년에 만들어진 영화로, 만들어지고 10년이나 한국에 개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영화제를 통해 소개되게 되었는데 앞으로도 수입이 원활치는 않을 듯하니 이곳에서 보려한다고 했다. 그러며 간단히 영화에 대해 말하는데 장르가 요새 그리 많지는 않은 소동극이라 했다.

소동극이라면 나 또한 좋아한다고 답했다. 전주에서도 <야닉>이란 작품을 보았는데, 연극을 보다가 작품이 수준 이하라며 갑자기 총을 꺼내들고 배우를 겁박하는 어느 관객의 이야기였다. 제한된 환경 가운데 돌발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좌충우돌 상황이 등락을 거듭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몰입하는 즐거움을 알게 하는 것이 소동극이 아니던가.

이래봬도 명색이 프로 영화평론가가 아닌가. 나는 일본영화 가운데서도 좋은 소동극을 몇 편쯤 본 일이 있었다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이름을 댔다.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 그러자 조씨가 반색하며, 바로 그 영화가 미타니 코키의 작품이라고, 그가 20년 가까이 지나 만든 영화가 이날 볼 <갤럭시 가도>라고 했다. 나는 또 한 번 민망해졌다.
 
▲ 갤럭시 가도 스틸컷
ⓒ BIFAN
 
우주서 낙후돼 가는 외딴 휴게소

영화는 미래 우주 어느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지금으로부터 240년쯤 지난 23세기, 목성과 토성 사이 턴파이크라 불리는 우주공간이 있다. 이곳엔 '갤럭시 가도'라 불리는 일종의 고속도로가 있는데, 중간중간 휴게소가 설치돼 여행자들에게 쉼터를 제공한다. 영화가 펼쳐지는 주된 공간이 그중 한 휴게소 '산도산도 버거'다.

갤럭시 가도는 훨씬 빠른 이동수단이 생긴 뒤 낙후되고 있다. 찾는 손님이 줄어들어 낙후된 시설을 보수할 자금 또한 마땅치 않게 됐다. 이곳을 운영하는 건 갓 중년에 접어든 점장 노아(카토리 싱고 분)와 노에(아야세 하루카 분) 부부가 되겠다. 경영난에 고민이 많은 노아는 가게 문을 닫고 지구로 돌아가고 싶다. 노에는 그와 생각이 다른 듯도 하지만 그녀라고 어려워진 휴게소를 살려낼 방안이 마땅찮은 게 사실이다.

영화는 산도산도 버거를 찾는 다양한 외계인들을 비춘다. 인간의 상상으론 종잡을 수 없는 형태의 외계종족들이 가게를 찾아 온갖 이야기를 펼쳐낸다. 남편 몰래 불러온 인테리어 업자(엔도 켄이치 분)와 상담하는 노에, 제가 우주의 복면영웅인 걸 감추고서 사랑하는 여인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우주 순찰대원(오구리 슌 분), 결벽증을 딛고 성매매를 기대하는 성실한 인간 중년 남자와 그 앞에 나타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식을 하는 직업여성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포스터
ⓒ BIFAN
 
우주와 외계인, 소동극과의 조우

럭비공처럼 예상치 못한 곳으로 튀어나가는 소동극의 묘미가 인간이 아닌 외계인, 그것도 인간의 상상력의 범위를 뛰어넘는 특성을 가진 이들과 어우러져 저만의 색깔을 발한다. SF와 코미디의 장르가 무지막지하게 범벅된 이 영화로부터 왕년에 일본을 넘어 아시아 전역에 제 존재를 알린 미타니 코키의 근황을 읽어내는 건 또 다른 재미가 될 듯하다.

내게 이 영화를 소개한 조성민씨에게 작품에 대한 평을 몇 글자 적어달라 청했다. 보기 드문 영화애호가가 작품을 바라보는 방식이 영화글을 찾아 읽는 이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조씨는 "미타니 코키의 상상력은 우주라는 배경을 만나 무한하게 확장되면서 외계인들 간의 서로 다른 입장 간의 간극에서 오는 유쾌한 코미디가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준다"고 총평했다.

그는 "상상력이 커진 만큼 기존의 풍자적 요소들은 다소 약해졌고, 외계인이라는 강한 콘셉에 매몰된 캐릭터들이 되레 매력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다"면서도 "몇몇 아쉬운 점이 있지만, 그의 독창적인 유머 감각은 여전히 유효하며, 이번 작품에서도 충분히 그 매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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