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끝나면 폐기물로 변신…1000억 쓰레기 만드는 韓 미술관들[지속가능한 K-미술]①

김희윤 2024. 7. 1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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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1.5만 건 전시회 개최, 전시 폐기물 추산 불가
전시 폐기물 정부 정책·규제 부재…글로벌 경쟁력 약화 지적

전시는 두 가지를 남긴다. 하나는 감동이다. 관람객의 가슴 속, 작품이 남긴 감동이 오랜 시간 살아 숨 쉰다. 다른 하나는 쓰레기다. 전시를 위해 설치한 가벽, 시트지, 팸플릿 등은 전시가 끝나면 곧 쓰레기로 변한다. 전시 기간은 짧으면 3~4일, 길면 1~2개월. 미술계는 올해 국내에서 열리는 전시회 수를 약 1만5000건으로 본다. 1회당 전시연출을 위해 쓰는 비용을 약 1000만원으로 잡으면 한국 미술계는 연간 1000억원에 달하는 돈을 쓰레기를 만들고 치우는 데 쓰는 셈이다.

2021년 5월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 전시 전경. 이전 전시에 쓰고 버린 5톤 트럭 2대 분량 폐기물을 작품처럼 쌓아 선보였다. [사진제공 = 부산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국현)의 2022년 예산을 보자. 국립현대미술관 실내 기획전시 1회 평균 비용은 약 2억7000만원. 전시 공간에 가벽을 설치하고 페인트칠과 시트지를 붙이는 이른바 ‘전시장 연출’에 통상 20~30%를 사용한다. 또 작품을 설치하고 철거하는 데에도 예산의 20%가 쓰인다. 말하자면 5000만원이 넘는 돈을 써서 공들여 만든 전시연출물을 만든다. 길어도 5~6개월이면 이게 쓰레기로 변한다. 또 이 쓰레기를 철거하고 폐기하는 데 5000만원 이상 돈이 든다. 쉽게 말해 1회 전시에 1억원이 넘는 돈을 쓰레기를 만들고, 버리는 데 쓴다.

대형 전시공간의 기준인 1000~1600㎡ 규모에서 진행하는 전시 기준 폐기물 무게는 평균 5~7t. 중소형 미술 전시 한 번에도 t 단위 폐기물이 생긴다. 대부분 전시 공간 가벽에 쓰는 석고보드, 합판, 철골 또는 전시 설명을 새겨넣기 위해 쓰는 플라스틱 등이다. 목재와 철골 등은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페인트를 칠한 석고보드나 PVC 등은 가열 시 유해 물질이 발생하는 악성 쓰레기로 재활용이 어렵다고 폐기물 업계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정부는 2021년 9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녹색성장기본법(약칭 탄소중립기본법)을 제정했다. 한국 미술계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계기로 기후위기 대응에 나섰다. 국공립미술관과 대형 사립미술관 중심으로 매뉴얼과 자료집 제작, 관련 프로젝트와 전시를 진행했지만 대부분 단발성 행사로 끝났다. 기업은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인식하고 사회적 책임을 지기 위해 행동을 시작했다. 반면 미술관은 전시 폐기물 문제를 사각지대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는 상태다. 환경에 대해 고민을 시작했지만 현재 정확한 전시 폐기물 규모나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추산도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시각예술 전시 통계. [자료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시 폐기물 업체 관계자는 “일반 미술 전시는 5t 전후, 산업 전시는 9m² 크기 부스 1개당 평균 270kg, 대형 전시 폐기물은 회당 20t 정도 발생한다”고 말했다. “연간 1만건의 전시회가 개최된다고 보면 폐기물만 한 해에 20만t 이상 나온다”는 설명이다.

코로나19가 끝나고 전시 개최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20년 3993회에 그쳤던 국내 미술 전시는 2021년 5441회로 늘어났고, 이듬해엔 8437회까지 증가했다. 관계자들은 올해 1만회에 가까운 전시회가 열릴 것으로 본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전시가 늘어난 만큼 전시 폐기물이 늘어난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국현이나 리움 같은 대형 박물관 정도만 폐기물을 재활용하거나 제대로 처리하고 있는 설정”이라고 덧붙였다.

전시 폐기물의 가장 큰 핵심은 ‘가벽’이다. 한 번 사용하면 재활용이 쉽지 않아 사실상 일회용에 가깝다. 하지만 많은 큐레이터가 자신만의 전시 개념과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 새롭고 압도적인 공간을 만들고 싶어한다. 이때 꼭 필요한 것이 가벽이다.

2021년 부산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 전시는 미술관에서 나온 가벽과 전시 폐기물 3t을 철거하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전시장 한쪽에 쌓아 오브제처럼 전시해 화제가 됐다. 쓰레기를 통한 부산현대미술관의 자기 고백은 사실 현대미술이 이렇게 많은 쓰레기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예술적’으로 보여준 실험이었다.

리움미술관의 모듈파티션 설치 전경.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은 모듈형 파티션 재활용을 통해 전시 폐기물 배출을 줄이고 있다. [사진제공 = 삼성문화재단]

국현은 폐기물 감축을 위해 2014년부터 전시 구조물 철거를 그다음 전시 담당이 맡도록 업무 시스템을 바꿨다. 통상 전시 구조물은 외주업체를 통해 일괄 설치 및 폐기한다. 김용주 국현 전시운영 총괄은 “이를 다음 전시팀에 맡겨 재사용할 부분을 직접 파악해 자재와 보양재, 전시 가구 등을 절약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2022년 ‘미술관-탄소 프로젝트’ 당시 밝혔다.

그렇다면 민간 미술관은 어떨까. 리움미술관은 2022년 전시 기획부터 전시 폐기물 감축을 추진했다. 리움이 지난해 개최한 김범 개인전 ‘바위가 되는 법’이 끝나고 나온 폐기물은 15.4t. 당초 예상 배출량(40.4t)보다 25t이 줄어든 숫자다. 전시 좌대와 쇼케이스를 재활용하고 모듈 파티션을 적용한 결과다. 리움은 전시 폐기물 처리 비용도 700만원 정도 줄었다고 밝혔다. 김성태 리움 수석디자이너는 "모듈 파티션을 활용해 가벽 폐기물을 줄이는 동시에 전시 설치 시간을 확보하고 현장 인력을 감축하는 효율적 성과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역 고미술 전시기관 관계자가 찾아와 쇼케이스 활용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얻어가기도 했다.

세계 2대 아트페어로 꼽히는 ‘프리즈’(Frieze)가 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C·D홀에서 열렸다. 첫날은 VIP 티켓 소지자만 입장하고, 일반 관람은 내일(3일)부터 시작한다. 프리즈 서울은 21개국 갤러리 110곳이 참여해 동시대 최고 작가들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문호남 기자 munonam@

국내 미술계도 ‘탄소 중립’의 거대한 파도에 올라타기 위해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폐기물 감축에 대한 미술계의 고민이 시작된 시기, 전 세계 2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프리즈가 서울에서 개최되며 글로벌 미술계의 관심이 한국에 집중됐다. 하지만 전시 폐기물에 대한 정부 정책과 규제의 부재는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미술의 설 자리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이어졌다. 기후위기 시대, 글로벌 아트페어 개최를 통해 전시 폐기물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고민을 산업전시 분야에서는 어떻게 먼저 해결하고 있었을까.

윤영혜 동덕여대 글로벌MICE학과 교수는 "전시는 사람이 모이는 산업적 특성상 탄소배출이 많고, 배출원 추적도 쉽지 않기 때문에 기술 융합이 필요한 산업"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면 인센티브를, 반대의 경우 페널티를 주는 방법으로 관리해야 한다”며 “독일에서 개최하는 유럽 최대 마이스 전시회인 아이멕스(IMEX)의 사례처럼 정량적 수치의 탄소 절감량을 비롯해 실제 사전 설계와 성과 창출까지 과정을 보여주는 보고서 발표를 통해 탄소 감촉 성과를 업계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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