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봐야 몇 달… 난 왜 항상 연애를 짧게 할까?
‘사랑’이라고 하는 이 짧은 단어는 인류에게 가장 로맨틱한 단어가 아닌가 싶다. 그런 이유로 우리가 아는 문학 작품, 영화, 음악은 사랑을 다루고 있는 것들로 넘쳐난다. 그런데 이 짧은 단어,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이길래, 누구는 사랑에 죽기 살기로 덤비고 또 어떤 사람은 사랑 같은 것은 없다면서 무덤덤하기만 한 걸까? 오늘은 이 문학적이고 로맨틱한 '사랑'이라는 단어를 정신과학의 이야기로 풀어서 다루어 보겠다.
◇상대방에게 첫눈에 반한 당신, 중독자가 되어버렸다
우리가 누군가를 봤을 때 첫눈에 반하는 경우가 있다. 수업을 듣거나, 일을 하거나 뭘 하더라도 상대방에 대한 생각밖에 안 난다. 핸드폰이 울리면 대뜸 들어서 연락이 왔나 확인을 하기도 하고, 주말에 만나기로 약속했으면 며칠 전부터 들떠서 잠도 안 온다. 심지어 밥을 먹다가 음식이 상대방의 입가에 묻어도 그 모습마저 사랑스럽다. 이렇게 사랑에 빠져서 상대방에게 완벽히 미쳐있는 상태를 들여다보면 중독자의 뇌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 연애 초기 우리의 머릿속은 ’도파민(Dopamine)’이라고 하는 물질의 강력한 지배를 받는다. 도박이나 니코틴 중독을 일으키는 바로 그 도파민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도파민이 증가하면 우리는 쉽게 기쁨과 만족감을 느끼고 위험하고 도발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게 된다. 그래서 도파민에 의한 불같은 사랑을 할 때면, 하늘의 별을 따달라는 요청에 높은 곳도 서슴지 않고 올라가는 무모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늘의 별을 어떻게 따 달라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커플에게도 위기가 찾아온다. “당신 변했어!” “나에 대한 사랑이 식었어” 하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요즈음은 주말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지만 잠을 설치지도 않고, 음식이 입가에 묻은 상대방이 더 이상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그거 좀 닦고 먹어”라는 말이 툭 튀어나와 버렸다. 상대방의 말처럼 나의 사랑이 예전과 같지 않고 변한 걸까? 맞다. 사랑이 변한 거다.
우리가 사 먹는 음식의 포장지에는 전부 유통기한이 적혀있다. 유통기한이 지나면 음식은 서서히 원래의 맛과 향을 잃게 된다. 사랑도 그렇다. 정확히 말하면 도파민이 그렇다. 앞서 이야기했던 연애 대상에게 중독되도록 만드는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은 같은 대상을 만나는 동안 뇌를 지배하는 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 개인별로 차이가 있긴 하나 짧은 사람은 수개월, 길어봤자 2년을 넘기기 어렵다. 대략 1년쯤 지나면 도파민이 잠잠해지고 중독 상태에서 벗어나게 된다. 콩깍지는 벗겨지고, 사랑은 식는다. 하늘의 별을 따다 준다는 사랑스러운 허풍을 더 이상 내뱉지 않게 된다.
◇도파민의 빈자리는 변하지 않는, 더 아름다운 것이 채워간다
그런데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면 몇 년간 꾸준히 연애하는 사람도 많고, 결혼해서 오랫동안 행복하게 지내는 부부도 얼마든지 있다. 공원에 나가면 손을 꼭 잡고 산책하는 노부부의 행복한 모습을 보는 건 어렵지 않다. 이들은 무엇이 특별하길래 도파민의 중독에서 벗어나서도 서로를 아껴주는 걸까?
도파민이 사라진 자리는 사랑을 담당하는 또 다른 신경전달물질인 ‘옥시토신(Oxytocin)’이 서서히 채워나간다. 옥시토신은 ‘포옹 호르몬’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누군가를 아껴줄 수 있게 하고, 함께 있을 때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엄마가 아이를 꼭 안아줄 때, 남편이 아내의 머리를 쓰다듬을 때, 나이 지긋한 부부가 손을 잡고 산책할 때 옥시토신이 이들을 감싸게 된다. 중요한 점은 옥시토신은 도파민과 달리 유통기한이 없다. 10년이건 30년이건 변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이라면 누구나 꼭 끌어안게 만들어 준다. 그렇기에 포옹 호르몬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서로의 추억이 가득 담긴 손을 잡을 때, 우리는 사랑을 만난다
알아본 것처럼 사랑하는 대상에게 우리의 도파민은 영원할 수 없다. 음식의 유통기한처럼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사랑이 변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 가진 여러 가지 얼굴 중 하나로 변화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상대방을 열정적으로 아끼고 오직 상대방과의 관계에만 몰두하는 것이 사랑의 전부는 아니다. 요즘 문화를 살펴보면 기술의 발전에 기인해 개인의 욕구와 즐거움이 즉각적으로 충족되는 문화에 우리는 살고 있다. 가지고 싶은 물건은 다음 날 새벽이면 문 앞에 배송이 돼있고, 손가락 몇 번 움직이는 것으로 얼마든지 내가 원하는 영상과 음악을 접할 수 있다. 연예인의 일상 관찰도 사람과의 대화도 침대에 누운 채로 얼마든지 빠져들 수 있다. 마치 도파민이 원하는 세상의 모습대로 흘러가는 듯도 하다. 사랑도 마찬가지인데, 즉각적이고 강렬한 기분을 느끼는 것에 익숙해진 나머지 누군가를 오랫동안 알아가는 기쁨을 점차 잊어가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짧은 연애를 반복하는 사람이라면 도파민에 기인한 열정적인 사랑에만 몰두해 있지는 않은지 이번 기회에 생각해 보면 좋겠다. 설레는 연인의 손을 잡을 때 느껴지는 뜨거운 감정도 좋지만, 오랜 연인의 추억이 가득 담긴 손을 잡았을 때 느낄 수 있는 편안함과 안정감 역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이다. 독자 여러분들 모두 사랑하는 사람과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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