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부고를 전하게 되어 유감입니다 [배우 김지성 에세이]
1994년 연극으로 데뷔해 영화와 연극, 드라마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배우 김지성의 사는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김지성 기자]
"꽁지가 죽었어."
간만에 동네 카페를 들어서마자 접한 뜻밖의 비보였다. 꽁지는 지난 몇 년간 아파트단지 안에서 기거해온 길고양이다. 꼬리가 짧고 소시지처럼 뭉뚝해서 다들 '꽁지'라 불렀다. 비록 살랑살랑 흔들고픈 꼬리는 갖지 못했어도 거친 영역 싸움에서 당당히 승리한 수컷이었다. 단지 내에 모든 새끼 고양이들의 아버지는 단연 '꽁지' 였다.
꽁지는 거의 뛰는 법이 없었다. 항상 느긋하게 마실 다니듯 동네를 활보했다. 수많은 자식들을 거느린 아비여서 그런가, 걸음걸이에서도 한껏 위엄이 배어나오는 듯 했다.
▲ 꽁지는 지난 몇 년간 아파트단지 안에서 기거해온 길고양이다. |
ⓒ 김지성 |
올 봄에, 옆 동 주민 샤샤(반려묘) 엄마가 꽁지를 제외한 암컷과 새끼고양이들에게 중성화 수술 봉사를 강행했다. 더는 후사 볼 길이 막혔음에도 동네를 떠나지 않고 식솔들을 두루두루 살폈던 꽁지는 그야말로 의리의 사내였다.
꽁지가 로드킬을 당한 장소는 학교 앞 4차선 도로였다. 제한속도 30km로 아파트 단지 정문으로 들어가는 직진 방향과 초,중,고등학교가 사방에 위치해 있어 서행운전이 필수인 곳이다. 아침 등교시간을 제외한 평소 도로 위 상황도 늘 한산한 편이었다.
그 덕에 길고양이들도 어렵지 않게 길을 건넜다. 꽁지 역시 길을 건너는 동안 서두르지 않았다. 조금만 신경 쓰고 좌우를 살피면 무탈히 건널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꾸준히 밥을 주는 샤샤 엄마와, "꽁지야~!" 하며 친근히 불러주는 주민들이 있었기에 믿었을 것이다. 사람을.
대체 누가 그랬을까. 어둠이 깔리기도 전인 어스름한 저녁, 살금살금 길 건너는 고양이를 왜 발견하지 못했을까. 만약 보았다면 다 건너갈 때까지 잠시 기다려 줄 순 없었을까. 심지어 가해 차량은 꽁지를 치고도 제대로 된 사후 처리 없이 현장을 떠났다고 했다. 다행히 사고 직후에 녀석을 알아본 동네 주민과 샤샤 엄마가 달려와 사체를 고이 수습해 주었다.
사람이 범한 과오로 인해 꽁지의 고단했던 풍찬노숙도 끝이 나고 말았다. 녀석의 슬픈 소식과 더불어 카페 안의 착잡한 공기 또한 거둘 길이 없었다. 동네 이웃들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씁쓸한 여운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마 다 같은 심경이지 않았을까. 인간으로서 한없이 부끄러운 마음.
"그나저나 가을이가 꽁지를 기다리고 있을텐데... 어떡해...!"
가을이는 꽁지가 일편단심으로 애정했던 암컷고양이다. 가을이 역시 원인불명의 사고 이후, 한쪽 다리를 절고 다녔다. 종일 풀밭에 숨어 지내다가도 꽁지가 찾아와 부르면 "엥~" 화답하고 모습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한가로이 동네 산책길을 거닐며 둘만의 오붓한 데이트를 즐겼다. 가을이가 중성화 수술로 교미를 할 수 없는 상태임에도 여전히 순수한 사랑을 이어가는 모습에, 다들 신기해하며 흐뭇하게 지켜봐 왔었다.
어제와 오늘, 유독 구슬프게 들리는 길고양이의 울음소리는 누구의 것일까. 꽁지의 새끼들일까. 아니면 가을이일까. 진정 꽁지의 죽음을 알고 있는 것일까. 사람도 동물도 편히 잠들지 못할 애통한 밤만 깊어가고 있다.
▲ 꽁지는 거의 뛰는 법이 없었다. 항상 느긋하게 마실 다니듯 동네를 활보했다. |
ⓒ 김지성 |
꽁지야. 지금은 좀 편안해졌니. 너처럼 죄없고 가여운 생명들과 행복한 공존을 이루며 살아가면 참 좋으련만. 본래 인간들이 이기적인 동물이라, 작은 배려심조차 품지 못한 채 메마르고 비루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어.
우린 너희들보다 강하다고 자주 착각하며 살아. 우주의 먼지 한 점 만치도 못 되는 미물 주제에 말이지. 그런 오만함이 결국 너를 안타깝게 보낸 것 같아 마음이 천근만근 무겁다. 너에게 진심으로 미안해.
게다가 인간은 망각의 존재이기도 해서, 오늘이 지나고 나면 너의 일 또한 차츰 잊고 말 거야. 밥 주고 관심만 가져주면 절대 고마움을 잊지 않는 너희들에 비하면 한심하기 짝이 없지? 차라리 우리 인간들을 불쌍히 여겨주겠니.
그럼에도 너의 명복을 빌어주고 싶은 일말의 양심까진 지울 수 없었나 봐. 단 글 몇 자라도 너의 흔적을 어딘가에 남겨주고 싶었어. 험난한 묘생길이었지만, 비가 오고 눈이 와도 제법 잘 살아냈잖아. 다행히 너의 지난 날을 추억해주는 동네 사람들이 여럿 돼. 그러니 떠나는 길 부디 외롭지 않기를.
이제 무지개 다리 건너 별이 된 꽁지야. 그 곳에선 걱정없이 마음껏 뛰어 놀아. 두 번 다시 길 위에서 태어나지 말고. 짧은 생이었지만 고생 많았다. 이제 편히 쉬도록 해. 안녕. 꽁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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