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계라고 맞았다"…케네디센터 예술감독 "임윤찬에 친근감"
한국계 첫 '케네디센터 예술감독' 제니퍼 고 인터뷰
예술가들의 꿈의 무대, 미국 워싱턴DC 케네디센터. 미국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인 이곳 무대에 서는 것은 예술가들의 꿈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1971년 세워진 이곳의 클래식 공연 담당 예술감독인 제니퍼 고는 한국계 미국인 여성이다. 아시아계가 예술감독을 맡은 건 이곳 반세기 역사 중 최초다.
제니퍼 고 본인도 음악가다. 3살 때 처음 바이올린 활을 잡은 뒤 11세에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며 이름을 알렸다. 18세였던 1994년,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에 오르는 등, 다수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2022년엔 그래미상도 클래식 음악 앨범 부문으로 받았다. 올해에도 뉴욕 카네기홀 데뷔 25주년 연주회 등 굵직한 일정이 빠듯한 그가 최근 한국을 잠시 방문했다. 지난 17일 오후 중앙일보와 만난 그는 "인종차별을 받으면서도 한국계라는 점이 항상 자랑스러웠다"며 "(임)윤찬과 (조)성진과 같은 젊은 예술가들을 만나면 진한 친근감(kinship)을 느낀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케네디센터 예술감독으로 중시하는 것은.
A : "다양성과 현재성이다. 클래식 음악이라면 대개 우리는 과거의 작곡가들을 떠올린다. 그들은 대개 백인이고, 남자다. 하지만 음악은 결국 아름다움을 소통하는 것이다. 인간이 가진 다양한 감정을 시공을 초월해 다양하게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훌륭한 신문기사나 소설이라도, 100년 전에 쓰인 것만 읽어서는 안 되지 않나.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현재에만 압도되지 않고 새 세계를 상상하고 꿈꿀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그에게 그래미상을 안겨준 앨범, '얼론 투게더(Alone Together, 따로 또 같이)'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 앨범은 2020년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 창궐 당시 기획됐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필수였던 그때, 제니퍼 고는 젊은 작곡가들에게 바이올린 독주곡 작곡을 요청했고, 자신의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연주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물리적으로는 떨어져 있으나 음악을 통해 서로와 연결된다는 뜻에서였다.
Q : 한국계 첫 케네디센터 예술감독인데.
A : "아시아계로서도 처음이다. 예전부터 한국이 자랑스러웠다. 눈부신 경제 성장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역사를 보면 한국인을 한국인이게 하는 특유의 DNA가 있다. 끈기와 회복탄력성, 혁신이다. 아시아계라는 이유로 어린 시절 학교에서 맞기도 했지만 그래도 한국계인게 좋았다."
Q : 폭행을 자주 당했나.
A :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일리노이주 한 작은 동네엔 아시아계가 거의 없었다. 5~6살 때쯤, 다른 아이들에게 아시아계라는 이유로 맞앗다. 쭈그려 앉아 주먹을 피하면서 생각했다. '너희들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어보이겠다'라고."
Q : 힘들었겠다.
A : "선함의 중요성을 배우는 계기도 됐다고 생각한다."
Q : 바이올린은 어떻게 시작했나.
A : "부모님이 어린 시절 수영과 아이스 스케이팅 등 다양한 걸 많이 시키셨고, 그중에 바이올린도 있었다. 날 가르쳐주신 선생님이 재능을 알아봐 주셨고, '더 좋은 선생님을 찾아가야 한다'며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직접 매주 편도 한 시간 넘게 운전을 해서 레슨을 시켜주셨다. 나는 솔직히 내가 솔리스트 연주자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선생님께서 나를 믿어주신 덕에 오늘날까지 왔다."
Q : 음악은 어떤 존재인가.
A : "위로(solace). 어린 시절에도 연주하며 위로를 받았다."
Q : 다양한 콩쿠르에서 두각을 드러냈는데.
A : "이 말을 꼭 하고 싶은데, 콩쿠르라는 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콩쿠르 입상이 목표가 되면 안 된다. 연주자의 일생은 길다. 다른 직업과 다르게 연주자는 죽을 때까지 연주를 할 수 있다. 2주 진행되는 국제 콩쿠르로 모든 게 결정되지 않는다. 콩쿠르에서 입상을 해도 훌륭한 연주자가 된다는 보장도 없다. 중요한 건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이것저것 많이 시도해야 하고, 실패하고 실수하며 성장해야 한다. 완벽하다는 건 곧 지루하다는 의미도 된다. 우린 인공지능(AI) 연주자가 아니니까. 다른 뛰어난 연주자 선배들을 만나고 동료들과 호흡하며 청중과 함께 소통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Q : 한국의 젊은 음악인들은 어떻게 보나.
A : "윤찬과 성진 모두 훌륭한 예술가들이다. 케네디센터에 이미 초청한 이들도 있고, 무대에 오를 이들도 있다. 중요한 건 소수의 특출난 예술가가 아닌, 많은 연주자들이 지원을 받고 자라날 수 있는 환경과 문화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Q : 한국 문화의 힘은 뭘까.
A : "혁신이라고 본다. 클래식 음악계도 더 많이 혁신을 받아들여서 크게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이미 다른 많은 분야에서 그렇게 해왔고, 클래식 음악 역시 그렇게 발전할 거라고 믿는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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