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2주째 뭇매… 축구협 무너진 시스템이 분노 키웠다
한순간 말 뒤집은 홍도 원인 제공
문체부, 여론 반영 협회 조사키로
협회 “월드컵 못 나갈 수도” 맞서
2002 한일월드컵 4강의 영웅이었던 홍명보(사진)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이 악당 취급을 받고 있다. 그가 대표팀 감독으로 발표된 지 2주가량 지났지만 축구팬과 축구인들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그를 향한 분노의 본질은 감독 선임 과정에서 드러난 대한축구협회의 ‘무너진 시스템’에 있다.
올해 1월 아시안컵이 시작될 때 한국은 손흥민 이강인 등을 앞세워 64년 만의 우승을 다짐했다. 하지만 4강에서 요르단에 패해 물거품이 됐다. 이후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선임 과정의 문제가 불거졌다. 전임 파울루 벤투 감독 선임 때 작동했던 시스템이 사라졌다.
세계 축구계에서 선호도가 떨어졌던 클린스만을 납득할 수 없는 절차로 데려온 게 드러났다. 축구팬들은 주먹구구식 행정으로 돌아간 것에 실망과 분노를 드러냈다. 그리고 올바른 과정을 밟아 좋은 감독을 선임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났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황선홍, 김도훈 임시감독 2명을 거쳤다. 황 감독은 올림픽 대표팀과 겸임하는 무리수를 뒀고, 결국 올림픽 10회 연속 진출 실패라는 오점을 남겼다. 외국인 감독 후보는 제대로 된 협상도 해보지 못했다. 선임 업무를 맡은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은 돌연 사퇴를 선언했고, 애초에 권한이 없는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회장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았다”며 갑자기 홍 감독을 대표팀 감독으로 발표했다.
임무를 시작한 홍 감독은 외국인 코치 선임을 위해 유럽 출장 중이다. 조만간 손흥민 등 주요 선수들과 만날 예정이다. 하지만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선임된 그를 향한 비판은 여전히 거세다. 홍 감독과 함께 2002 월드컵 4강 신화를 썼던 박지성, 이영표, 이천수 등 축구인들은 차례로 목소리를 냈다. 하나같이 홍 감독 선임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었다.
국가대표 주장 출신 구자철은 18일 SNS를 통해 “협회의 행정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가면 솔직히 미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2012 런던올림픽과 2014 브라질월드컵 때 홍 감독과 사제지간이었다.
축구팬들이 홍 감독에게 분노하는 이유는 홍 감독의 언행에도 있다. 홍 감독은 클린스만 전 감독이 경질된 지난 2월부터 차기 사령탑 유력 후보로 거론됐다. 프로축구 K리그 울산HD의 지휘봉을 잡고 있던 그는 줄곧 대표팀 감독을 맡는 일은 없을 거라고 강조해 왔다. 지난 5일 수원FC전을 앞두고도 “(협회와) 만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랬던 그가 한순간에 말을 뒤집었다. 협회는 지난 7일 홍 감독 내정 사실을 알렸다. 홍 감독은 “저는 저를 버렸다” “내 인생의 마지막 도전을 응원해 달라”고 말했다. 자신이 한 선택을 두고 한국 축구를 위해 희생한다는 느낌을 주는 발언에 팬들의 배신감과 분노는 치솟았다.
홍 감독 선임으로 여론이 들끓자 문화체육관광부까지 나섰다. 문체부는 협회 운영 전반과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을 조사하기로 했다. 협회는 정부가 협회 행정에 개입하면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에 따라 월드컵 출전권을 잃을 수 있다는 논리로 맞섰다. FIFA 정관 14조 1항과 15조 등에는 ‘회원 협회는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한다. 제3자의 간섭을 받아선 안 된다’ ‘모든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FIFA가 해당 조항을 근거로 경고 수준을 넘어선 제재를 한 적은 거의 없다. 프랑스는 2010 남아공월드컵 16강 진출 실패 후 도메네크 감독과 장-피에르 에스칼레트 협회장을 국회 청문회에 세웠다. 당시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은 “프랑스 협회는 국가 권력기관의 정치적 간섭이 있다면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고 했을 뿐 실질적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브라질 법원이 지난해 12월 축구협회장 선거 무효 판결을 내렸을 때도 권고 이상의 조치는 없었다.
협회 내부에선 문체부와 대립각을 세운 대응 방식에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협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날 국민일보에 “협회가 FIFA 규정을 언급하는 건 국회의원들이 불체포특권을 언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지금과 같은 사안에 그 잣대를 들이대는 건 옳지 않다. 합리적인 선에서 감사든 조사든 받으면 된다”고 말했다.
박구인 이누리 기자 capta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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