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왕개미’ 이재명 전 대표의 금투세 간보기

고세욱 2024. 7. 19.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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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세욱 논설위원

주식 ‘찐’사랑 이재명 전 대표 금투세 또다시 유예 시사해
정치 목적 유예 남발할 바엔 폐지하는 게 차라리 낫다
왕개미 대통령 되기 위해선 주가 저평가 해소에 매진하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주식 투자에 진심이다. 30여년 전 친구 권유로 작전주를 사 2배 이상 이익을 본 게 시작이었다. 선물, 파생상품까지 섭렵했다. 이렇게 번 돈으로 아내에게 차도 사줬다. 그러다 외환위기 때 쫄딱 망했다. 그래도 굴하지 않았다. 테마주·소형주에서 우량주 투자로 바꿔 외환위기 이후 다시 돈을 모아 10억원대로 불렸다. 시민운동도 평일 주식 거래시간이 아닌 오후 늦게나 주말에 했다고 한다. 그 열정과 도전, 일반 개미들이 반할 만하다.

지난 대선 패배 직후 이 대표는 한국조선해양 1670주, 현대중공업 690주 약 2억여원어치를 샀다. 같은 당 전재수 의원이 “지지자들이 (좌절해) 널브러져 있는데 혼자 정신차려 주식 거래를 했다니 실망스럽다”고 말했지만 고수의 본능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 없다.

막상 당 대표가 되자 주식시장 언급이 별로 없었다. 본인의 사법 리스크 방탄, 입법 폭주 지휘 등에 바빠서였는지는 모르겠다. 정권 교체 원인인 부동산 문제가 더 중요해서일 수도 있다. 그나마 존재감을 보여준 게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관련해서다.

이 전 대표는 지난 10일 전당대회 출마 회견에서 “주식시장이 어려운데 금투세 (시행) 시기 문제를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당내에서 금투세 유예가 언급되기는 이번 국회 들어 처음이다. 금투세는 주식·채권 등 금융 투자로 얻은 수익이 5000만원을 넘을 경우 초과분에 대해 22%(3억원 초과분 27.5%)의 세금을 내는 제도다. 투자자의 1%(약 15만명)만 해당돼 대다수 1400만 개미들과 무관하고, 미국 일본 등 주요국들도 도입하고 있다는 게 찬성론자들 주장이다. 2023년 1월 시행 예정이었으나 여야 합의로 2년 유예됐다. 이제 5개월여 후 시행인데 다수당의 절대자 격인 이 전 대표가 속도 조절을 언급해 2차 유예가 확실시된다.

1차 유예도 이 전 대표의 역할이 컸다. 2022년 11월 정부의 금투세 유예와 민주당의 시행 당론이 팽팽히 맞섰다. 최고위원회의에서 “투자 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강행하는 게 맞나”라고 반문했다. 지금과 논리가 똑같다. 윤석열 대통령과 소수 여당이 금투세 유예나 폐지를 주장할 때 꿈쩍도 안하던 야당이 결국 움직였다. 이 전 대표가 결정적일 때마다 당론과 다른 선택을 한 셈이다. 중도층 확장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 총선을 건너뛰고(1차 유예), 차기 대선 전에 금투세 결정권을 재차 행사할 수 있는(2차 유예) 절묘한 시점까지 고려한 정치적 노림수도 엿보인다.

다만 유예는 시간만 벌 뿐 이도저도 아닌 상태다. 법적 안정성, 예측 가능성을 고려하면 입법 권력을 쥔 다수당 1인자로서 시행이든 폐지든 결정을 해야 맞다. 금투세를 정치 수단으로만 삼는다는 이미지가 되레 독이 될 수 있다. 그는 “세계에서 주가 떨어지는 몇 안 되는 나라에서, 가끔씩 주가 오를 때 금투세를 때리면 억울할 것”이라며 주가 저평가를 정부 탓으로 돌렸다. 30년 주식 고수에게 묻고 싶다. 자본시장 개선 없이 국내 주가가 상승세를 타고 금투세 시행까지 가능하겠냐고.

최근 10년간 상장사의 평균 주주환원율은 29%다. 미국(93%)과 신흥국(37%)은 물론, 사회주의 중국(32%)에도 뒤처졌다. 미국 기업이 1000만원을 벌면 930만원은 배당금이든 자사주 매입이든 주주에게 돌아가는데 한국은 290만원에 그친다는 얘기다. 지난해 연말 대비 18일 기준 미국 나스닥과 일본 닛케이는 약 20% 안팎 올랐지만 코스피 상승률은 6.4%다. 이러니 “국장(한국 주식시장) 탈출은 지능순”이란 말이 나온 거다. 주요 선진국처럼 주가 상승 환경을 갖춰주면 누가 세금 내기를 두려워하겠나.

민주당 특유의 ‘1% vs 99%’ 갈라치기도 구태의연하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에 따르면 금투세 대상자들의 투자금은 약 150조원이다. 삼성전자 시총의 3분의 1을 웃돈다. 이 돈 일부가 빠져나가면 어떻게 될까. 자본시장에선 큰손의 영향력이 판을 좌우하곤 한다. 1%와 일반 개미 99%가 별개일 수 없다.

정치 스케줄에 맞춰 금투세 유예를 반복할 바에야 폐지하는 게 낫다. 시행하려면 고질적인 주가 저평가 현상부터 해결해야 한다. 후진적 지배구조와 각종 규제 개선 등 기업 밸류업을 모색할 법안 마련이 우선이다. 이 전 대표는 ‘왕개미’ 최초의 대통령을 꿈꾼다고 했다. 꿈을 이루려면 금투세 간보기가 아닌 정공법으로 가야 한다.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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