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로 악용된 112상황실 [강주안의 시시각각]
신임 경찰청장에 제청된 조지호 후보자보다 물러나는 윤희근 경찰청장에게 더 눈길이 간다. 윤 청장 취임 두 달여 만에 이태원 참사가 터졌다. 사고 네 시간 전부터 경찰에 112 신고 전화가 이어진 사실이 드러났다. 전직 경찰 고위 인사들은 윤 청장 퇴진을 당연시했다. 그러나 2년 임기를 온전히 마쳤다. 이태원 참사의 상흔이 아물지 않는 이유 중엔 책임지지 않는 고위직에 대한 분노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렇게 관대한 인사와 대비되는 장면이 있다. 행정안전부 경찰국 설립 반대자에 대한 보복이다. 민주화 이후 사라진 경찰 관할 조직을 행안부에 부활하는 시도는 각계의 반발을 샀다. 당사자인 경찰관의 반대도 당연한 일이다. 경찰서장급인 총경들이 2022년 7월 이 문제를 논의하려 경찰인재개발원에 모인 ‘총경 회의’가 정권의 심기를 건드렸다.
전원을 대상으로 감찰을 벌였으나 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당시 총경만 대기발령을 받았다. 문제는 이어진 2023년 2월 정기 인사다. 회의 참석을 이유로 모두 좌천당했다. 이를 분석한 논문이 최근 경찰법연구 학술지에 실렸다. '행정법의 일반원칙과 경찰청장 인사재량권의 한계'. 필자인 경기북부경찰청 이은애 여성청소년과장 역시 총경 회의에 참석했다가 경찰인재개발원으로 좌천됐던 인사다.
이 논문은 경찰의 좌천 인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분석에 따르면 총경 회의 참석자 55명 중 교육 대상자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9명을 제외한 46명 전원이 ‘하향 전보’(좌천)를 당했다. 총경의 40% 정도가 경찰서장인데, 회의 참석자는 한 명도 서장에 임명되지 않았다. 수사·경비·정보 분야에도 자리를 주지 않았다. 범죄예방 분야에 29명을 몰아서 배치했다. 경찰관에겐 고달픈 분야지만 시민의 안전에 직결되는 범죄예방 파트가 유배지임이 드러났다.
신고 묵살한 이태원 참사 겪고도
미운털 박힌 총경들 112로 내몰아
더욱 심각한 대목은 112상황팀장 인사다. 46명 중 25명이 112상황팀장으로 발령됐다. 이 자리는 원래 총경 아래 직급인 경정이 근무하던 보직이다. 이를 계급 하향 배치가 가능한 ‘복수직급제’로 만들더니 귀양지로 삼았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인사에 앞서 복수직급제를 발표하면서 “이태원 참사 대응 과정에서도 확인됐다시피 미흡한 경찰의 사고대응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총경 회의' 참석자를 대거 보냈다. 복수직급제 직위로 전보된 총경 중 총경 회의 참석자 29명의 총경 근무 경력은 평균 4.4년으로, 나머지 복수직급 총경의 근무 경력 0.43년보다 10배가량 길다. 한 전직 경정은 “112상황팀장은 야간조까지 있어 경정도 기피하는데, 고참 총경을 보내면 모멸감이 엄청날 것”이라고 말한다. 회의에 참석했던 일부 총경들은 경정(총경 승진 후보자)인 112종합상황실장의 지휘를 받도록 배치했다고 이 총경은 공개했다. 이 장관 말대로 “초동조치와 현장지휘를 총괄해야 하는 막중한 직위”가 어수선해졌다. 이태원 참사 직후 근무 기강 확립이 절실했던 112상황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작년 폭우에 오송 참변 터져
큰 비극을 겪고서도 시민의 안전보다 정권의 심기를 앞세운 인사가 또 한 번의 참변으로 이어졌다. 임기를 무사히 마친 윤 청장과 더불어 이 장관 역시 이번 개각에서 유임되리란 얘기가 무성하다. 화성 배터리 공장 참사 수습 때문이라는데, 장관이 사고에 책임을 지는 게 아니라 문제가 터질수록 생명이 오히려 연장된다. 과거 정부에서 볼 수 없던 뉴노멀이다. 정권의 심기보다 시민의 안전이 우선되는 나라로 변하지 않는 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현 정부가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50% 아래로 떨어지는 일은 일어나기 어렵다.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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