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리더십 개편 ‘정면 돌파’ 절실한 한국축구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그동안 한국 축구는 1988년 서울올림픽부터 2020 도쿄올림픽까지 9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 2022년 카타르 월드컵까지 11회 월드컵 본선 진출 등 화려한 역사를 자랑했다. 하지만 지금 한국 축구계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2023 AFC 아시안컵 결승 진출 실패의 충격에 이어 2024년 파리올림픽 예선 탈락은 축구 팬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그런데 위기를 지혜롭게 잘 극복해야 할 축구협회가 안이하게 대응하면서 더 큰 갈등과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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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놓고 분란
행정력·경기력 리더십 신뢰 잃어
재도약 위한 개혁과 결단 불가피
」
2013년 1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KFA) 회장은 취임사에서 한국 축구의 구조적인 문제 해결, 유소년 축구 시스템 강화, 투명하고 효율적인 협회 운영을 약속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축구협회는 정 회장의 그림자 속 조직으로 변모했다. 마케팅 대행사 선정, 스폰서십 기업 유치, 방송 중계권사 선정, 상품화 사업 마케팅 대행사 선정 등 주요 의사 결정 과정에서 정 회장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공공연하게 외부로 알려졌다.
해외 언론까지 주목한 손흥민과 이강인의 불화 사태에서도 정 회장은 사실관계를 회피하고 팬들과 언론에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명확한 해명이나 협회의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했다. 경기력 운영 문제로 해임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자신의 무능력을 뒤로 한 채 축구협회의 불투명성과 비효율적인 소통을 지적했다. 협회의 문제를 해외 언론에 폭로해 나라 망신을 당했다. 이는 결국 협회의 리더십 부재와 그림자 속 조직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것 아닌가.
급기야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사달이 났다. 지난 5개월간 대표팀 감독 선임 논의를 거친 전력강화위원회의 결정도 축구협회장의 승인 없이는 확정할 수 없는 구조라 본다. 객관적이고 투명한 평가 과정 없이 국내 프로팀 홍명보 감독을 선임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번 결정은 축구계 안팎의 공감을 충분히 얻지 못하고 있다. 박주호 전력강화위원은 내부자로서 이의를 제기했고, 이천수 전 사회공헌위원장도 협회가 기본적인 절차나 규정을 준수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영표 전 부회장을 비롯한 대표팀 출신 선수들도 협회의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전례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축구협회를 신뢰해온 월드 스타 손흥민 선수가 협회에 대한 실망감을 팬들에게 전달해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박지성 전 유소년 축구발전위원장과 이동국 전 축구협회 부회장도 협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리더십 부재와 행정의 비효율을 비판했다.
스포츠 조직의 성공을 위해서는 경기력·리더십·재정자립도, 그리고 팬들과의 소통이 핵심이다. 한국 축구는 선수들의 경기력과 재정자립도 측면에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축구 행정 리더십을 보여줘야 할 축구협회장과 경기력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대표팀 감독이 팬들의 신뢰를 제대로 얻지 못하는 실정이다.
중국 고전의 군주민수(君舟民水) 가르침이 지금의 상황을 적확하게 설명해준다.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라는 뜻이다. 축구 팬(백성)은 축구협회(배)를 띄울 수도 뒤집을 수도 있다. 지금 축구 팬들의 성난 민심은 축구협회라는 배를 뒤집기 직전의 위태로운 상태다. 축구에 대한 관심도를 나타내는 ‘7단계 피라미드 구조’(무관심 집단부터 탐닉 집단까지)의 모든 층위에서 축구협회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성적 부진이나 개인적 선호에 따른 변화 요구가 아니다. 축구협회 회장의 퇴진을 향한 강력한 목소리로 봐야 할 것이다.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며 어두운 그림자 속 조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결론적으로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서는 정 회장의 퇴진이 불가피해 보인다. 축구 팬들의 비판과 요구 사항은 한국 축구라는 배를 띄워 큰 바다로 나가도록 하기 위한 절실한 외침이다. 리더는 군주민수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근본적인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한국 축구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한국 축구의 재도약을 위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남희 한국스포츠산업협회 포럼위원장·고려대 국제스포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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