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완의 시선] 아파트는 빵처럼 찍어낼 수 없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믿고 내 집 마련의 달콤한 꿈을 꾸다가 날벼락을 맞은 사람들이 있다. 약 2년 전 민간 아파트 사전청약에 당첨됐지만 난데없이 취소 통보를 받은 예비 입주자들이다. 올해 들어서만 이런 현장이 벌써 다섯 곳이나 나왔다. 이 중 경남 밀양을 제외한 네 곳은 수도권으로 1200가구가 넘는다. 경기도 파주 운정신도시와 화성 동탄2신도시, 인천 서구 가정2지구 등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이미 사전청약을 마쳤지만 아직 본청약을 받지 않은 단지(24곳, 1만2800가구)도 많이 남아 있다. 이 중에서 사업 취소 현장이 추가로 나올 가능성이 작지 않다. 애꿎은 피해자만 낳은 사업 실패에 정부도, 사업 시행사도, 건설사도 전혀 책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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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데없는 사전청약 취소 통보에
정부 정책 믿었던 당첨자 날벼락
수도권 주택 공급 부족 우려 커져
」
아파트 사전청약은 2021년 문재인 정부에서 부활시킨 제도다.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서 대표적 실책으로 꼽히는 주택 공급 부족과 깊은 연관이 있다. 느긋하게 기다리기엔 정부도, 주택 수요자도 마음이 급했다.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취지로 사전청약을 도입했다.
당시 주택 공급 부족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발언이 있다.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는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의 말이다. 2020년까지 부동산 정책을 총괄했던 김 전 장관은 국회에서 이 말을 꺼냈다가 ‘마리 빵뚜아네트’라고 조롱을 받았다.
사전청약에는 공공 분양과 민간 분양의 두 종류가 있다. 현 정부는 민간에 이어 공공 분양에서도 신규 사전청약을 폐지했다. 문제는 기존에 사전청약 당첨자로 선정된 사람들이다. 일단 공공 사전청약은 정부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어떻게든 책임을 지기로 했다. 입주 시기 등이 예정보다 늦어질 순 있어도 사업 자체가 엎어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하지만 민간 사전청약 당첨자들의 사정은 전혀 다르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렸던 사업이 취소되면 처음부터 다시 내 집 마련을 알아봐야 한다. 그동안 잃어버린 시간과 기회비용은 아무도 보상해주지 않는다. 정부가 내놓은 조치는 이들의 청약통장을 되살려 준다는 게 고작이다. 이 통장을 들고 다른 아파트 단지의 청약에 다시 도전해 보라는 얘기다. 말은 쉽지만 성공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미 수도권 핵심 입지에선 웬만한 청약 가점으로 명함도 내밀기 어려울 정도다. 청약 경쟁률이 치솟으면서 당첨 확률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혹시라도 전 정부가 벌인 일이라서 현 정부가 ‘나 몰라라’ 한다면 무책임한 처사다. 일반 국민에겐 전 정부나 현 정부나 같은 대한민국 정부다. 사전청약이란 제도는 보수나 진보의 이념 대립과도 전혀 관계가 없다. 사실 이 제도를 처음 시행했던 건 2009년 이명박 정부였다. 용어는 사전예약(이명박 정부)과 사전청약(문재인 정부)으로 약간 다르지만 실질적 내용은 같았다.
당시 주택 정책을 담당했던 정종환 전 국토해양부 장관은 자신의 회고록(『강에는 물이 넘쳐 흐르고』)에서 사전예약 제도를 도입한 배경을 이렇게 전했다. “보금자리 주택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준비 기간이 1년 6개월 필요하다는 보고가 있었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국토계획국장을 역임한 주무 장관이 보기에는 그럴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이 제도가 집값 안정에 기여한 성공작이라고 자평했다. “주변 시세의 70~80% 선으로 사전예약 방식의 청약 제도를 도입하자 신혼부부들의 청약 열기가 뜨거웠고 반값 아파트라고 불리며 빠른 시간에 히트 상품이 됐다.”
사전청약 취소로 인한 문제는 일부 당첨자들의 개인적 손해만이 아니다. 부동산 시장에 공급 부족이란 신호를 보내는 점을 심각하게 봐야 한다. 오랜 시간 사업을 추진했던 현장마저 엎어지는 마당에 신규 주택 공급의 활성화를 기대하긴 어렵다. 특히 주택 공급 대책의 핵심인 수도권 3기 신도시에서도 사업 차질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업 지연을 인정한 사업장만 따져도 경기도 남양주 왕숙1, 2지구와 하남 교산지구 등에서 5600가구가 넘는다.
정부는 18일 제7차 부동산 관계 장관회의를 열고 최근 시장 상황을 점검했다고 밝혔다. 발표 자료는 그럴듯했지만 가장 중요한 주택 공급 부족에 대한 절박한 인식은 보이지 않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주택 건설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주택 수요자들이 선호하는 대단지 아파트라면 더욱 그렇다. 3~4년 뒤에 신규 주택 부족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서둘러야 한다. 아파트를 빵처럼 찍어낼 수 없다는 건 4년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말이다.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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