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미 공화당의 슬로건 된 ‘파이트’…폭력이 답 될 순 없다
“탕 탕 탕”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 유세장에서 연이어 울린 총성이 지난 13일 평화로운 주말 늦은 오후를 즐기던 미국 사회를 완전히 뒤흔들어놨다. 트럼프 오른쪽 귀에서 뺨을 타고 흐르는 붉은 피가 선연했다. 그런 트럼프가 주먹을 불끈 쥐어 들어 보이며 “싸우자(Fight·파이트)”고 외치는 장면은 사람들 뇌리에 깊게 각인됐다.
이틀 뒤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장. 당 대의원·당원들과 강성 보수 ‘마가(MAGA)’ 세력 사이에 ‘파이트’는 트럼피즘을 확인하고 상징하는 최대 슬로건이다. 전당대회 첫날 저녁 오른쪽 귀에 흰색 거즈를 붙인 트럼프가 나타나자 행사장을 가득 메운 수천 명의 지지자들은 모두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트럼프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파이트” “파이트”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트럼프 며느리 라라 트럼프 등의 찬조연설 중간중간에도 지지자들은 “파이트”를 연호하며 하나가 됐다.
이번 피격 사건은 혐오와 분노의 감정을 자극해 여기까지 온 트럼프가 역설적으로 정치 양극화의 피해자가 됐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피격 이후 180도 다른 사람이 됐다는 트럼프가 ‘미국의 단결’을 역설하며 ‘통합 전도사’를 자처하는 지금, 지지자들은 오히려 적을 깨부수는 ‘성전(聖戰)’을 다짐하며 투지를 불사르고 있다는 점이다. 전당대회 현장에서 만난 한 대의원은 “신의 가호가 트럼프를 살렸다. 이제 그가 미국을 되살리게 하기 위해 우리가 싸워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정치 폭력화’를 푸는 해법이 또 다른 폭력이 될 수는 없다. 2020년 대선에 불복한 트럼프 추종자들이 벌인 1·6 의사당 난입 사태 등을 떠올려 보면 11월 대선을 전후해 더욱 진화한 형태의 정치 폭력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 보수와 진보로 단순히 갈라지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증오의 정치’ ‘분노의 정치’와 결합해 극단적 테러로 표출된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상대 혐오와 악마화가 일상이 된 한국의 정치 현실도 돌아보게 된다. 송영길·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등 정치적 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흉기 피습을 당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며 정치 양극화를 조장하고 전리품만 챙기려는 행태는 이제 멈춰야 한다. 극단적 대결 정치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정치 테러의 온상일 뿐이다.
김형구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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