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수의 카운터어택] 유로2024를 보다가

장혜수 2024. 7. 19.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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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 콘텐트제작에디터

가나에서 태어난 그는 12살이던 1992년 가족과 독일로 이민했다. 프로축구 분데스리가 하노버 유스팀에서 축구를 시작한 그는 샬케04에서 뛰던 2001년 5월 뉴스의 중심에 섰다. 2002한일월드컵을 앞두고 독일 국가대표로 뽑혔다. ‘전차 군단’ 최초의 아프리카계 선수가 된 것이다. “얼굴색으로 축구를 하진 않는다”는 그를 향해 일부 독일 팬은 바나나를 던지는 등 공공연히 인종차별적 행동을 했다. 그는 게랄트 아사모아다. 오래전 일 같기도, 얼마 안 된 일 같기도 하다.

스페인 라민 야말(왼쪽)과 니코 윌리엄스가 유로2024 결승전에서 선제골을 합작한 뒤 흥겹게 자축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새벽잠을 설치게 했던 2024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24)가 지난 15일 스페인의 우승으로 끝났다. 개최국 독일은 8강전에서 스페인에 져 탈락했다. 이번 독일 대표팀에는 아프리카계 선수가 5명 있다. 수비수 안토니오 뤼디거, 벤야민 헨리치, 조나단 타흐, 공격수 르로이 사네, 자말 무시알라 등이다. 대회 직전 독일 공영방송 ARD의 설문조사가 논란에 휩싸였다. “대표팀에 백인 선수가 더 많아야 하는가”를 물었고 응답자 21%가 “그렇다”고 답했다. 축구와 다양성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한 설문이었다고 ARD는 해명했다. 그럼에도 율리안 나겔스만 독일 대표팀 감독 등 많은 사람이 ARD의 무신경을 비판했다. 아사모아로부터 20여년. 많이 변한 것 같기도, 별로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유로2024 기간, 24개 참가팀의 여러 경기를 보며 거의 모든 팀에서 인종 다양성이 커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과거에도 프랑스, 잉글랜드, 벨기에, 네덜란드 등은 다인종 대표팀을 꾸렸다. 그런 추세가 이제는 유럽 국가 전체로 퍼진 분위기다. 유로2024에 출전한 624명의 선수 중 80명이 귀화 선수라는 통계가 있었다. 체코, 네덜란드, 덴마크, 오스트리아만 한 명도 없고, 심지어 알바니아는 26명 중 18명이 귀화 선수다. 물론 일부 선수는 국가대표가 돼 월드컵이나 유럽선수권 같은 대회에 출전하려고 국적을 바꾼다. 하지만 많은 선수가 이민자, 드물게는 난민 가정 출신으로 복수 국적 중에서 선택하거나 변경한 경우다.

유로2024 결승전에서 스페인은 잉글랜드를 2대1로 꺾고 우승했다. 라민 야말의 어시스트를 니코 윌리엄스가 마무리하면서 스페인이 선제골을 뽑았다. 스페인 대표팀에도 20여년 전인 유로2000 당시 적도 기니 출신 빈센테 엔공가라는 아프리카계 선수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나 이민자 가정 출신 윌리엄스와 적도 기니 및 모로코 출신 부모를 둔 라민 야말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 덕분에 인종 다양성이 더욱 두드러졌다. 물론 “다양성이 성적을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반론할 수도 있다. 그래도 순혈주의를 버리고 다양성을 높이는 건 세계 축구의 대세적 흐름이다. 인구 소멸로 운동할 아이가 없다고 한숨 쉬는 동아시아 끝의 어떤 나라가 유로2024에서 참고할 바다.

장혜수 콘텐트제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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