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대통령' 연임 성공한 폰데어라이엔…안보·산업 경쟁력 강조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18일(현지시간) 압도적 지지로 연임에 성공했다. 새 임기는 오는 11월 시작되며 2029년까지 5년이다. 이로써 폰데어라이엔은 '여성 최초' EU 집행위원장에 이어, '여성 최초 연임'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EU 집행위는 EU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독립 조직으로 법안 발의권부터 정책 이행, 예산의 관리·집행 등 행정부 기능을 수행한다. 집행위원장은 'EU의 정상'이자 '유럽의 대통령'으로 불린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이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인준투표에서 전체 720표 가운데 찬성 401표, 반대 284표로 재선에 성공했다. 연임 확정에 필요한 매직넘버(361표)를 여유있게 넘긴 셈이다.
"예견된 결과…기후·이민서 안보에 중점"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이날 재선이 확정된 뒤 연설에서 "지난 5년은 우리가 함께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 기간"이라며 "다시 힘을 모으자"고 역설했다.
그의 재선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는 평가다. 그가 소속된 유럽의회 정치그룹(교섭단체)인 중도 우파 성향 유럽국민당(EPP)은 의회 내 1위 그룹으로, 188석을 차지하고 있다. EPP는 이미 2위와 4위 정치그룹인 중도 좌파 사회민주진보동맹(S&D·136석)과 자유당그룹(Renew·77석)과 대연정을 구축해 총 401석을 확보해둔 상태였다.
EPP는 무기명 투표의 특성상 이탈표가 나올 것까지 감안해 녹색당동맹(53석) 등 다른 정치그룹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도 총력을 기울이며 폰데어라이엔의 연임에 만전을 기해왔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2019년 인준투표 때 가결정족수(374표)보다 9표 많은 찬성 383표로 턱걸이 통과한 바 있다.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중국의 위협, 트럼프 재선 가능성으로 위기감이 커진 상황에서 EU가 변화보다 안정을 택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달 유럽의회 선거에서 의석의 약 4분의 1을 강경 우파와 극우 정치 그룹이 차지하면서, 그간 EU가 추진해온 기후·이민 등 주요 정책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이날 폰데어라이엔의 재선으로 향후 EU 정책의 안정성과 연속성이 가능해졌다는 분석이다.
폰데어라이엔 2기엔 1기 때 집중했던 기후·이민보다 안보와 산업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투표 직전 유럽의회에서 50분 가량 연설하며 "이제는 진정한 유럽 국방 동맹을 구축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국방 담당 집행위원(국무위원에 해당)직을 신설하고, 투자 수요와 새 접근 방식을 망라한 '국방 미래 백서'를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문제와 관련해서는 '변함없는 지지' 입장을 재확인했다.
또 이산화탄소(CO₂) 배출 억제 노력을 지원하면서도 산업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하는 '청정산업딜'(Clean Industrial Deal)을 마련하겠다고 예고했다. 1기 때 집중했던 친환경 산업정책 패키지인 '그린딜'(Green Deal)의 후속 성격으로, 기후와 산업 정책 간 균형을 맞추기 위해 고심한 결과물이라는 분석이다.
EU '빅4' 중 3자리가 여성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1958년 벨기에에서 태어나 13세 때 독일로 이주했다. 영국 런던정경대(LSE)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독일 하노버 의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산부인과 의사 겸 의대 교수로 일하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42세에 정계에 발을 들였고,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에게 발탁돼 2005년 가족여성청년장관, 2009년 노동장관, 2013년 국방장관을 역임하는 등 정치권에서 승승장구했다.
2019년 여성 최초로 EU 집행위원장에 올라 코로나19 팬데믹, 영국의 브렉시트, 우크라이나 전쟁 등 역대급 악재를 관리하며 "위기의 시기에 EU의 연대와 결속을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남5녀 7남매를 둔 워킹맘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도 힘써 왔다.
한편 이날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의 연임이 확정되면서, EU 내 '여성 파워'가 공고해졌다. 앞서 16일 유럽의회 의장에 몰타 출신의 로베르타 메촐라가 재선돼 여성 의장 최초 연임 기록을 세웠다. EU 외교안보 고위 대표 후보로는 카야 칼라스 전 에스토니아 총리가 내정됐다. 칼라스 전 총리의 인선까지 최종 확정되면 EU 내 '빅4' 중 세 자리가 여성으로 채워지게 된다. 나머지 한 자리는 별도 인준투표 절차가 없는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으로 남성인 안토니우 코스타 전 포르투갈 총리가 임명됐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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