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의 재발견...경영권 승계 속도·실적 날개
한화그룹 삼 형제 계열분리 속도 낼까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최근 왕성한 행보를 보이면서 눈길을 끈다. 건강을 회복하면서 회사에 주 2회 이상 출근하는가 하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 연구개발(R&D)센터, 한화 금융사가 들어선 여의도 63빌딩, 판교 한화로보틱스 본사 등 주요 사업장도 수차례 방문했다. 각각 세 아들(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이 경영을 진두지휘하는 회사다. 올 들어 대전 한화이글스 야구장도 벌써 5차례나 찾았다.
김 회장이 이처럼 적극적인 현장 경영에 나서는 것은 최근 무섭게 비상하는 한화그룹 스토리와 맞닿아 있다. 글로벌 정세 불안에 힘입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방산 수주가 날개를 단 가운데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인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방산·조선·에너지·금융·유통 등 탄탄한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오랜 기간 적자에 시달려온 한화오션은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금융, 에너지 등 주요 계열사 실적도 날개를 달았다.
여세를 몰아 삼 형제의 경영권 승계까지 속도를 내면서 김승연 회장은 숙원 과제를 차근차근 해결하는 모습이다. 가족 간 경영권 다툼에 시달리는 다른 그룹과 달리 승계 과정에서도 별다른 잡음이 없다. 조용조용 한화그룹은 지금 어디까지 와 있을까.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화에너지는 오는 7월 24일까지 한화그룹 지주사인 ㈜한화 보통주 600만주(지분 8%)를 공개매수한다. 공개매수 가격은 보통주 한 주에 3만원, 공개매수 자금은 1800억원에 달한다. 한화에너지는 응모율과 관계없이 공개매수에 응한 주식 전부를 매수할 예정이다.
한화에너지는 ㈜한화 지분 9.71%를 보유한 그룹 핵심 계열사다. 이번 공개매수가 마무리되면 보유 지분율은 단숨에 17.71%(보통주 총 1327만2546주)로 늘어난다. 공개매수 물량이 더 늘어나면 보유 지분율이 20%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번 공개매수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한화에너지는 김승연 회장(22.65%)에 이어 ㈜한화 2대 주주로 올라선다. 한화 측은 공개매수 배경에 대해 “책임 경영을 실천하고 주주 가치를 높이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재계 분석은 다르다. 한화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 승계 작업과 무관하지 않다는 진단이다.
한화그룹 삼 형제가 경영 전면에 나섰음에도 아직까지 ㈜한화 지분율은 미미하다. 장남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4.91%,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과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은 각각 2.14%를 보유해 최대주주인 김승연 회장(22.65%)에 한참 못 미친다. 삼 형제 보유 지분을 합쳐도 9.19%로 10%가 채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화에너지가 ㈜한화 지분 8% 확보에 성공하면 보유 지분율이 단숨에 17.71%로 늘어난다. 삼 형제의 기존 보유 지분(9.19%)을 더하면 삼 형제가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 지분은 총 26.9%에 달한다. 부친 김승연 회장이 보유한 지분 22.65%까지 합하면 50%에 육박한다.
한화에너지는 최근 100% 자회사인 공정 자동화 업체 한화컨버전스를 흡수합병하며 덩치를 더 키웠다. 사측은 “에너지 사업 통합을 통한 효율성 제고 목적”이라는 입장이지만 재계에서는 “한화컨버전스 합병으로 배당 능력을 높여 삼 형제의 지분 추가 매입 등에 활용하지 않겠냐”라고 내다본다.
실제로 한화그룹 삼 형제가 핵심 계열사 한화에너지를 통해 ㈜한화 지분을 늘리는 형태로 승계 작업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다. 멀리 보면 한화그룹 삼 형제 → 한화에너지 → ㈜한화 → 주요 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구축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변수는 있다. 무엇보다 공개매수 성공 여부를 장담하기 어렵다. 한화에너지의 ㈜한화 주당 공개매수 가격은 3만원. 지난 7월 5일 기준 최근 1개월 평균 대비 12.9%, 전일 종가 대비 7.7% 비싼 금액이다. 다만 공개매수 발표 이후 주가가 급등하는 분위기다. 공개매수 소식이 전해진 5일 ㈜한화 주가는 전날보다 4.31% 오른 2만905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이 같은 상승세가 이어진다면 기존 주주들의 매도 신청 물량이 목표치에 미달할 가능성도 높다. 오는 7월 24일까지 공개매수 목표치인 8% 매입을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화에너지는 “8%를 채우기 위해 매수 가격을 더 높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공개매수가 성공할 경우 경영권 승계에 속도를 내겠지만 여기에도 변수는 있다. 승계 과정에서 부담해야 하는 천문학적인 세금이 문제다.
지난 7월 4일 종가 기준 김승연 회장이 보유한 ㈜한화 지분(22.65%) 가치는 6000억원에 이른다. 김 회장 지분을 삼 형제가 증여받으면 증여세율이 최고 세율인 60%에 달한다. 단순 계산으로 3600억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는 의미다. 삼 형제 입장에서는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알짜 회사인 한화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삼 형제가 맡는 주요 회사 계열분리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구체적인 사업을 어떻게 나눌지도 여전히 미완의 과제다. 지금으로써는 장남 김동관 부회장이 방산, 우주항공, 에너지를, 차남 김동원 사장은 금융, 삼남 김동선 부사장이 유통, 호텔, 레저 사업과 함께 로봇 등 신사업을 꿰찰 것이라는 예상이다. 다만 김동선 부사장이 각종 신사업을 진두지휘하며 경영 보폭을 넓힐 경우 장남과 경쟁 구도에 돌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재계 관계자는 “김동선 부사장이 최근 (주)한화 건설부문 해외사업본부장을 맡으면서 건설업까지 손을 댄 만큼 활동영역을 계속 넓힐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8호 (2024.07.10~2024.07.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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