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하게 계획된 한화 경영권 승계…‘삼성 빅딜’ 이후 삼 형제 경영 전면에

반진욱 매경이코노미 기자(halfnuk@mk.co.kr) 2024. 7. 1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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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S&C 활용 20년간 준비 착착

“재계 주요 그룹 중에서 승계 과정이 가장 매끄럽다.”

한화그룹 승계 작업을 두고 재계 안팎에서 나오는 말이다. 상속·승계 작업 중 지분을 둘러싸고 가족 간 다툼이 벌어지고, 총수 일가의 지배력이 줄어드는 다른 그룹과 달리, 한화는 비교적 조용히 승계 작업을 진행 중이다. 삼 형제 모두 각자의 사업 부문에서 지배력도 공고히 하고 있다.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삼성토탈 등을 삼성그룹으로부터 사들인 한화의 빅딜 이후 삼 형제는 본격적인 경영 일선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인수한 기업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한화토탈 등 그룹의 매출을 책임지는 핵심 기업으로 거듭났다. 사진 좌측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엔진 공장, 우측은 한화토탈 사업장 모습. (각 사 제공)
정교하게 세팅한 지배구조

핵심은 절묘한 분할과 합병

한화그룹 승계 절차의 핵심은 ‘분할과 합병’이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차례 회사를 나누고 합치며 승계를 위한 최적의 구도를 맞춰왔다.

시작은 2001년 3월, 한화S&C 설립이다. ㈜한화의 정보부문을 분사해 자본금 30억원의 단독 법인을 만들었다. 당시 지분은 ㈜한화(66.67%)와 김승연 회장(33.33%)이 나눠 가졌다. 2005년 ㈜한화는 김동관 부회장에게 주당 5100원(총 20억4000만원)을 받고 지분을 매각했다. 김승연 회장도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에게 지분을 절반씩 나눠 팔았다. 2007년 한화S&C가 유상증자를 단행했고 김동원, 김동선 형제가 유상증자에 참여하면서 지분율을 높였다. 이때부터 한화S&C는 김동관(50%), 김동원(25%), 김동선(25%) 삼 형제의 지배구조를 확립했다.

삼 형제의 사업 분할 준비는 2014년 삼성과 한화의 ‘빅딜’로부터 시작됐다. 한화는 2014년 삼성그룹으로부터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4개 회사를 사들이는 빅딜을 진행했다. 당시 한화솔라원 영업실장(CCO)으로 근무하던 김동관 부회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물밑으로 접촉하며 인수전을 진두지휘했다. 거래 성사 후 김 부회장은 방산, 에너지 사업을 맡으며 경영 전면에 나섰다.

큰형이 경영 보폭을 넓히자 동생들도 곧바로 합류했다. 이 시기부터 각자 역할을 도맡았다. 한화그룹 경영기획실 디지털팀장으로 있던 김동원 사장은 한화생명 전사혁신실 부실장으로 옮기며 금융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김동선 본부장은 한화건설(현 ㈜한화 건설부문) 과장으로 입사한 뒤 한화갤러리아, 한화호텔앤드리조트로 자리를 옮겼다. 이때부터 방산·화학·에너지(김동관), 금융(김동원), 유통·레저(김동선)의 구도를 굳혔다.

삼 형제가 각자 사업 부문에서 영향력을 넓히는 동안, 지분 상속을 위해 만들어진 한화S&C는 그룹 내 시스템통합(SI) 사업을 맡으며 덩치를 키웠다. 처음에는 일부 사업팀이 분사한 조그만 회사였지만 2010년대 들어서는 꽤 규모가 큰 IT 회사로 성장했다.

외형이 커지며 승승장구하던 한화S&C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의 직격탄을 맞는다. 규제를 벗어나기 위해 2017년 투자회사 에이치솔루션과 사업회사 한화S&C로 분할했다. 삼 형제는 투자회사인 에이치솔루션을 통해 기존 지배력을 유지했다. 한화S&C는 2018년 한화시스템에 합병됐고 에이치솔루션은 지분 100%를 보유한 한화에너지에 흡수되며 사라졌다. 지분 승계는 한화에너지를 통해 준비하기 시작했다.

2020년대부터 한화에너지는 꾸준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20년에 걸쳐 준비해온 승계 작업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는 신호가 내·외부적으로 쏟아진 탓이다. 한화에너지는 한화그룹 내에서도 알짜 회사로 손꼽힌다. 전남 여수, 전북 군산에서 열, 전기를 공급하는 집단에너지 사업을 바탕으로 매년 안정적인 수익을 올린다. 지난해 매출 4조7110억원, 영업이익 2150억원을 기록해 영업이익률이 5% 수준이다. 자금도 넉넉하다. 지난해 말 기준 현금성 자산은 6269억원에 달한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지분 50%,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과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이 각각 25%씩 보유한 사실상 ‘삼 형제 개인회사’다.

한화에너지는 그동안 지주사인 ㈜한화의 지분을 계속해서 매입, 9%까지 지분을 늘리며 영향력을 높였다. 이번 공개매수 목표 달성에 성공하면 한화에너지의 ㈜한화 보유 지분은 17.7%가 된다. 김승연 회장에 이어 2대 주주로 등극한다.

넘어야 할 과제도

옥상옥·RSU 논란 돌파해야

다른 그룹에 비하면 매끄럽게 승계 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한화그룹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일부 있다. ‘옥상옥’의 지배구조와 RSU(Restricted Stock Unit) 논란이다.

지배구조 부문에선 옥상옥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옥상옥이란 집 위에 또 집을 짓는다는 뜻이다. 오너 일가가 직접 지주사 지분을 보유하지 않고, 다른 회사를 통해 지주사와 그룹에 영향력을 미칠 때 쓰인다. 한화에너지가 ㈜한화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면 삼 형제 → 한화에너지 → ㈜한화 → 한화그룹 계열사로 이어지는 구조가 된다. 전형적인 옥상옥 지배구조다.

이런 옥상옥 형태를 비롯한 간접 지배 형식은 최근 재계에서 지양하는 분위기다. 선진화된 지배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선진국이 요구하는 기준의 지배구조를 갖춰야 한다. 때문에, 국내 대기업 다수가 옥상옥 형식의 지배구조를 개선해왔다.

과거 총수 일가 회사인 SK C&C로 SK㈜를 지배했던 SK그룹이 대표적인 사례다. 외부로부터 옥상옥 구조를 꾸준히 지적받던 SK그룹은 SK C&C와 SK㈜를 합병하고 나서야 문제를 해소했다. 재계 관계자는 “그룹 핵심 사업인 방위 산업 무대가 글로벌 시장인 만큼 한화그룹 입장에서는 옥상옥이라는 비판을 무작정 외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한화그룹 측은 “일반적으로 옥상옥은 최대주주가 해당 회사의 지분 보유를 주된 사업 목적으로 하는 법인을 의미한다. 한화에너지는 태양광, LNG 등 친환경 에너지 사업을 주된 사업으로 영위한다. 옥상옥과 같은 기형적 지배구조와는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최근 논란에 휘말린 RSU 문제도 정면 돌파해야 한다. RSU는 양도제한조건부주식이라는 뜻이다. 단기 성과에 집중하는 성과급이나 스톡옵션과 달리, 수년 후 주식을 주는 ‘장기 성과 보상 제도’다. 김동관 부회장은 지난해 상반기 ㈜한화 16만6004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6만5002주, 한화솔루션 4만8101주를 RSU로 받았다. 해당 내역이 알려지며, 지분 확보를 위해 제도를 악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 휩싸였다. 해당 논란에 한화는 “최초 부여 시점부터 20년이 지난 2040년까지 김 부회장이 실제 취득하는 ㈜한화 주식은 1%대에 불과하다. 책임 경영 강화 차원이다. RSU는 회사의 장기발전 차원에서 전사적으로 도입한 것이지 승계와는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 사측의 해명에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사회 일각에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향후 시나리오는 어떻게

㈜한화-한화에너지 합병설 솔솔

시장에서는 공개매수 이후 향방을 두고 온갖 예측을 쏟아낸다. 조용히 승계를 마무리 지을 최적의 방안을 두고 여러 소리가 오간다.

현재 거론되는 시나리오는 크게 3가지다. 한화에너지가 김승연 회장의 지분을 매입하는 방안, 김승연 회장이 직접 자식들에게 지분을 증여하는 방안, 그리고 ㈜한화와 한화에너지 합병이다.

우선 한화에너지가 김승연 회장의 지분을 매입하는 방안이다. 7월 9일 종가 기준, 김승연 회장이 가진 ㈜한화의 주식 가치는 약 4915억원이다. 현금 창출력이 없던 에이치솔루션과 달리, 한화에너지는 연간 4조원 넘는 매출, 2000억원 넘는 영업이익을 올리는 우량회사다. 지분 매입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한화에너지가 김승연 회장 지분을 사들이면 삼 형제는 자연스레 최대주주로 올라선다.

다만, 이 경우 문제가 있다. 김승연 회장이 지분을 매도하면 차익분이 발생한다. 이에 따른 양도소득세를 김 회장이 부담해야 한다. 한화에너지 재무 구조도 부담스럽다. 자회사까지 포함한 한화에너지 현금성 자산은 넉넉하다지만, 한화에너지만 가진 별도 현금성 자산은 759억원에 그친다. 또, 가장 큰 문제로 꼽히는 옥상옥 지배구조가 해결되지 않는다.

두 번째 방안은 김승연 회장이 자신의 지분을 직접 자식에게 증여하는 것이다. 지난해 작고한 김 회장의 부인 故 서영민 여사 보유 지분은 형제 3명에게 균등 상속됐다. 삼 형제의 ㈜한화 보유 지분이 늘어나면 ‘간접 지배’ 논란은 수그러들 확률이 크다. 다만, 상속세를 삼 형제가 부담해야 한다. 상속세 마련을 위한 재원 확보가 과제다.

마지막 방안은 한화에너지와 ㈜한화의 합병이다. 시장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시나리오다. 옥상옥 지배구조 논란은 물론 각종 증여세, 양도세 등의 세금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이 때문에 재계와 증권가에선 덩치를 키운 한화에너지가 ㈜한화와 합병하는 식으로 승계를 마무리할 것으로 내다본다. ㈜한화가 최근 몇 년에 걸쳐 해상풍력과 플랜트 사업을 한화오션에, 태양광 장비 사업을 한화솔루션에 각각 양도한 것도 결국 승계와 관련이 깊다. ㈜한화 덩치를 줄이고, 한화에너지의 덩치를 키워 합병을 매끄럽게 하기 위한 방안으로 해석됐다. 업무 조정과 관련해 한화그룹 관계자는 “사업군 통합과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일뿐, 승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전했다.

승계를 매듭지을 가장 확실한 방법이나 한계가 없지는 않다. 각종 분할과 조정 작업에도 불구하고 한화에너지와 ㈜한화는 자산 규모에서 3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한화와 한화에너지가 합치면, 삼 형제의 한화에너지 지분 영향력이 줄어든다. 현재의 대주주 지위가 바뀌기 어렵다.

특히 상장사인 ㈜한화와 달리 비상장사인 한화에너지는 기업가치를 산정하기 어렵다. 자칫 삼 형제 승계를 위해 합병 비율이 불공정하게 산정됐다는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 상장사인 ㈜한화와 합치는 과정에서 다른 주주들까지 설득해야 한다. 특히 인수 과정에서 주가까지 하락하면 부담은 더 커진다. 정부당국이 ‘밸류업 프로그램’이라는 말까지 만들며 주가 부양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이런 와중에 총수 일가의 승계 여파로 회사의 주가가 떨어지는 상황은 정부에 달갑지 않다. 자칫하면 한화그룹이 정부 정책에 반하는 모양새가 된다. 사측으로서는 곤란한 상황이다. 단, 한화 측은 현재 (주)한화와 한화에너지 양사의 합병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8호 (2024.07.10~2024.07.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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