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 종식’ 외친 한미약품 오너家…최종 승자는 개인주주 ‘신동국’이라는데
진흙탕 싸움을 방불케 했던 한미약품그룹(이하 한미그룹) 경영권 분쟁이 일단 멈춰 섰다. 한미그룹 지주사 개인 최대주주 신동국 회장과 오너가 장남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이 ‘분쟁 종식’을 선언하면서다. 신 회장과 임 사장은 7월 10일 발표문을 내고 “가족 간 불협화음이 극적으로 봉합됐다”며 “창업주 故 임성기 전 회장은 물론 배우자와 자녀 일가로부터 두루 신뢰받는 신 회장을 중심으로 가족 간 분쟁이 종식됐다”고 밝혔다.
다만 진정한 ‘대화합’으로 이어질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향후 경영진 구성 등을 두고 신 회장과 임 사장 사이에 미묘한 온도 차가 감지되기 때문. 이번 발표문은 임 사장 주도로 작성됐다. 신 회장은 모녀(송영숙 한미사이언스 회장·임주현 부회장)와 장·차남 양측 모두와 화합할 계획인 것은 맞지만 경영진 구성이나 향후 방향성 관련해서는 결정된 게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임 사장 주도로 작성된 입장문에는 “책임경영과 전문경영을 하이브리드 형태로 융합한다”는 내용이 실렸다. 하이브리드 형태 경영진 구성은 전문경영인을 기용하면서도 형제 역시 경영에 적극 참여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는 ‘완전 전문경영인 체제’를 강조하는 신 회장 의견과 맞지 않는다. 한미그룹 측도 “회사 공식 입장문이 아니기 때문에 (하이브리드 경영) 등을 두고서는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2000억원으로 한미그룹 움켜쥐어
경영권 분쟁이 표면상 멈춰 서면서 재계는 ‘승자 가리기’에 나섰다. 분쟁의 최종 승자를 주변인이던 신 회장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미그룹 창업주 임성기 회장의 30년 지기 고향 후배인 신 회장은 2010년 첫 한미사이언스 지분 취득 이후 그동안 한미사이언스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로 규정했다. 말 그대로 “경영권에는 관심 없다”는 태도였다. 하지만 최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등장했다.
이번 경영권 분쟁은 지난 7월 3일 한미사이언스 ‘주식 등의 대량 보유 상황 보고서’ 공시가 기점이다. 신 회장이 주당 3만7000원에 송영숙 회장과 임 부회장이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각각 5.7%, 0.7%씩 사들였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투입한 비용은 1600억원. 신 회장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율은 기존 12.4%에서 18.9%(거래 마무리 시점 9월 3일 기준)로 늘어났다. 모녀 측과 지분 거래가 공시된 이후 신 회장은 언론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이와 관련 모녀가 신 회장을 등에 업고 경영권 탈환에 나선 게 아니라 신 회장이 모녀 지분율을 ‘의도적’으로 확보했다는 분석이 힘을 받는다.
당초 장·차남을 지지했던 신 회장은 왜 마음을 바꿨을까.
표면상 이유는 ‘주주 가치 제고’다. 신 회장 측은 모녀 측과 지분 거래가 공시된 직후 발표한 입장문에서 “(임종윤·종훈 형제가) 한미그룹을 해외 사모펀드에 매각한다는 소문이 시장에 퍼지며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의 주식 가치가 30% 이상 하락했다. 그룹 경영권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당사자들 중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한 큰 어른으로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대승적 결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다만 사안을 잘 아는 관계자들은 오너가 장·차남에 대한 실망감이 배경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지난 3월 주총 표 대결 직후 장·차남 측은 새로운 투자자 유치와 상속세 해결 등을 약속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는 상태다. 일각에서는 “신 회장 지분을 높은 가격에 매입하겠다는 암묵적 약속도 있었다”는 말도 나오지만 확인 불가한 내용이다. 개인적 실망감도 변심 배경이다. 장·차남이 그룹 경영 관련 결정을 내릴 때마다 신 회장과 별도 상의 없이 진행했다는 점이 이유로 꼽힌다. 결국 본질은 신 회장과 장·차남의 갈등인 셈이다.
모녀 측 지분을 일부 사들인 신 회장은 한미사이언스의 압도적 개인 최대주주가 됐다. 임종윤·종훈 사장 측은 물론이고 송 회장(6.1%)과 임 부회장(9.7%) 지분을 더해도 신 회장을 넘지 못한다. 사실상 앞으로의 한미그룹 경영 방향키는 신 회장이 쥔 셈이다. 지분을 매각한 송 회장도 “(본인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한미는 신 회장을 중심으로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해 새로운 한미그룹으로 재탄생하기를 바란다”며 신 회장에 힘을 실어줬다.
결국 신 회장은 단순 계산시 약 2000억원으로 한미그룹을 쥐락펴락하게 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신 회장은 2010년 한미사이언스 지분 12%(113만1692주)를 주당 3만7150원에 사들였다. 당시 기준 약 420억원 규모다. 이번 지분 거래에서 투입한 1600억원을 더하면 약 2000억원이다. 증권가는 “당분간 신 회장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한다. 추가 자금 조달 여력 때문이다. 한미그룹 오너가는 주식 대부분이 담보로 묶여 있어 자금 조달 창구가 막힌 상태다. 상속세 납부 때문이다. 반면 신 회장은 얼마든 주식을 담보로 한 자금 조달도 가능하다. 현재 시점 기준 신 회장 지분 12.4%는 약 2700억원 가치다. 이 주식을 담보로 1000억원 이상 자금을 끌어올 수 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신 회장이 100% 지분을 갖고 있는 한양정밀도 현금 창출 여력이 높은 편이다. 기계와 자동차부품 판매 기업 한양정밀은 지난해 기준 매출 878억원, 순이익 60억원을 냈다. 지난해 말 기준 총 차입금은 32억원, 현금성자산은 52억원 정도다. 사실상 무차입 경영 상태다. 부채비율도 18.1%로 우량한 재무 구조를 유지 중이다. 이를 고려하면 신 회장은 필요에 따라 한양정밀을 활용한 자금 조달도 가능하다. 다만 신 회장은 추가 지분 확대 여부 등은 고민할 단계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창업자 별세 후 대표 변경만 4회
표면상 분쟁은 종식됐지만 한미그룹의 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신 회장과 임 사장이 바라보는 경영 방향성이 다를뿐더러 창업주 일가 2세의 경영 참여 여부와 역할 등도 정해진 게 없기 때문이다. 한미그룹 측도 “논의를 거쳐 추후 설명하겠다”고 말할 뿐이다. 주주들이 염원하던 경영 정상화 역시 단기간에는 어렵다는 게 업계 반응이다.
한미사이언스는 그간 4년 동안 4번의 리더십 변동을 겪었다.
임 회장 별세 직후인 ① 2020년 9월 임종윤 단독대표에서 임종윤·송영숙 각자대표 체제로 전환됐다. 이때 경영에 거리를 뒀던 송 회장도 전면에 등장했다. 이후 ② 2022년 3월 10년 넘게 회사를 이끌었던 임종윤 대표 재선임이 불발돼 송 회장 단독대표 체제가 자리 잡았다. 경영권 분쟁도 이 시기 시작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경영권 분쟁은 지난 3월 주총 표 대결로 이어졌고 ③ 지난 4월 송영숙·임종훈 공동대표 체제로 전환했다. ④ 한 달 뒤인 5월에는 임종훈 단독대표 체제가 굳혀졌다. 신 회장이 전문경영인 체제를 강조하고 임 사장이 하이브리드(전문경영+책임경영)를 강조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리더십 변동을 둔 추가적인 갈등은 불가피해 보인다.
업계 관계자들 역시 비슷한 인식이다. ‘대화합’으로 보기에는 힘든 대목이 있다는 것. 특히 한미사이언스 전문경영인 선임이 가능할지를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대표이사 선임은 이사회 권한이다. 최대 10인 구성이 가능한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는 현재 장·차남 측 5인(임종윤·임종훈·권규찬·배보경·사봉관)과 모녀 측 4인(송영숙·신유철·김용덕·곽태선)으로 꾸려졌다. 신 회장 혹은 신 회장 측 관계자가 이사회에 들어오더라도 5 대 5 구성이다. 장·차남 측이 양보하지 않는 한 전문경영인 대표이사 선임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기존 장·차남 측 이사진을 해임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화합을 외쳐놓고 또다시 갈등을 벌이는 모양새가 될 수 있어서다. 또 이사 해임은 특별결의 사항인 만큼 출석주주 3분의 2 이상, 총 발행 주식 수 3분의 1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 실질적인 전문경영인 선임 방안을 묻는 질문에 신 회장 측 관계자는 “방향성은 뚜렷하다”며 말을 아꼈다.
자본 시장은 분쟁이 끝나더라도 ‘경영 정상화’까지 시간이 걸리지 않겠느냐는 전망을 내놓는다. 문제는 경영 정상화가 늦춰질수록 근본적인 주가 회복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최근 경영권 분쟁 종식 소식이 전해지자 한미사이언스 주가가 반짝 올랐지만, 다시 제자리를 찾고 있다. 한미사이언스 주가는 故 임성기 회장 별세 이후 수년째 지지부진하다. 특히 오너 일가 갈등이 시작됐다고 평가받는 2022년 이후에는 큰 틀에서 ‘우하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당장 올해 주가만 봐도 하락세다. 연초 3만9200원이던 주가는 7월 10일 종가 기준 3만3900원까지 떨어졌다. 올해만 13.5% 하락이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8호 (2024.07.10~2024.07.23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호중, 징역 30년형 수준 중범죄”…사실상 지상파 퇴출 - 매일경제
- “아파트도 아닌데 3억 껑충?”...신고가 잇따르는 이곳 [김경민의 부동산NOW] - 매일경제
- 조선미녀? 생소한데 美서 대박...매출 2000억 노리는 K뷰티 등극 [내일은 유니콘] - 매일경제
- 아리셀 화재 충격 ‘일파만파’ 다시 보는 중대재해법 [스페셜리포트] - 매일경제
- 앞선 사례에서 배운다…중대재해법 이러면 처벌받는다 - 매일경제
- 중대재해 발생했다면 초동 대처 가장 중요…유족 위로도 - 매일경제
- 아직 살림 팍팍한데…KTX 요금 올리자는 코레일 - 매일경제
- 중대재해법의 핵심은 예방…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갖춰라 - 매일경제
- 인프라 수원·서울 접근성 좋은 부천…광주는 다세대주택 거래 활발 - 매일경제
- “한양증권 팝니다”...최대주주 한양대학교 재단 경영난에 -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