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만 29세가 되면 ‘과거 안 준 양육비 달라’ 소송 못한다
이혼 후 자녀를 키운 배우자가 전 배우자에게 ‘양육비를 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시효는 ‘자녀가 서른살이 되기 전까지’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8일 “기존 약정이 없었다면 과거 양육비 청구권은 자녀가 성인(만 19세)이 된 시점부터 생겨나고, 이후 10년이 지나면 소멸한다”고 판결했다. 자녀가 만 29세가 넘으면 과거 양육비 청구를 할 수 없다는 기준을 새로 제시한 것이다.
과거엔 마흔 넘어도 ‘양육비 달라’ 청구 가능
이 소송을 제기한 A씨는 1984년 이혼한 뒤 당시 1살이었던 아들을 혼자 키웠다. 그러다 아들이 43세이던 2016년 전 남편을 상대로 ‘혼자 아들을 키우며 쓴 과거 양육비 1억 1930만원을 달라’며 전 남편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자녀를 둔 부부가 이혼할 때 양육비를 어떻게 할 지 정하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재판으로 이혼하는 경우 양육비에 대해서도 법원이 결정하지만, 과거엔 협의이혼을 하는 경우 양육비에 대해 구체적인 협의 없이도 이혼이 가능했다. 민법에는 1990년부터 이혼 부부 당사자 간에 ‘양육에 관한 사항을 협의로 정하라’(837조 1항)는 조항이 있었지만, ‘양육비용 부담에 관해서도 협의하라’(837조 2항)는 조항은 2007년에야 생겼다. ‘이혼 절차에서 양육비 관련 내용을 협의한 양육비 부담조서를 가정법원이 작성해야 한다’고 규정한 건 2009년부터다.
A씨는 협의이혼 당시 양육비 관련 합의를 하지 않았다. A씨의 사건에선 ‘양육비에 관한 합의가 애초에 없었을 경우, 과거 양육비 청구권은 언제 생기며, 언제 사라지는지’가 쟁점이었다. 그간 대법원 판례는 ‘법원에서 정하거나 쌍방이 합의한 양육비 지급 약속이 있다면 그 때부터 청구권이 생기고, 소멸시효도 진행된다’고 봤다. 아무 약속이 없었다면 청구권이 생기지도, 따라서 소멸시효가 진행되지도 않는다는 거였다.
1심 재판부는 이 판례를 그대로 인용해 A씨가 청구한 금액 중 6000만원을 인용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A씨의 자녀가 성년이 된 후 이미 10년이 넘게 지나 “과거 양육비를 청구할 권리가 사라졌다”며 A씨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자녀가 미성년일 땐 장래 양육비가 계속 발생할 수 있고, 성년이 된 후에는 양육비 금액이 확정돼 변동 가능성이 없게 되므로 자녀가 성년(만19세)이 된 시점부터 청구권이 생긴다고 봐야 한다는 거였다. 청구권이 생긴 뒤에는 민법상 10년인 채권의 소멸시효를 따지는데, A씨의 자녀가 성년이 된 1993년 11월로부터 10년이 이미 지나 권리가 없다는 게 항소심의 판단이다.
대법 “자녀 성년 되면 즉시 ‘10년’ 소멸시효 시작”
대법원도 항소심의 판단을 그대로 인정하며 자녀가 미성년인 동안에는 과거 양육비 청구권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권리이니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않고, 성년이 된 뒤부터 진행된다고 판례를 변경했다. 다수의견은 “자녀의 복리를 위하여 자녀가 성년이 되기 전까지는 시효로 소멸하지 않는다고 봐야한다”며 “자녀가 성년이 된 뒤 양육의무가 종료되면 그간 지출비용을 부부 간에 정산하는 관계만 남아 단순 '재산권'으로 보고,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한 쪽이 언제든 원하는 시기에 과거 양육비를 달라고 청구할 수 있다면, 상대방은 일생동안 불완전한 상태를 감수해야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증거가 없어지는 등 적절한 방어가 어렵다”고도 했다. 권영준 대법관은 ‘양육비 지출이 시작된 때부터 소멸시효를 계산해야 한다’는 별개의견을 덧붙였다.
이에 대해 노정희‧김상환‧노태악‧오경미‧신숙희 등 5명의 대법관은 반대 의견을 냈다. 자녀가 성년이 됐다고 해서 과거 양육비 청구권을 순수한 재산권의 성질로 볼 수는 없고, 이미 지출한 비용에 대한 구상권 행사라고 본다면 그건 가사사건이 아니라 민사사건이 돼 법적 혼란이 우려된다는 이유다. 아직 양육비 지급에 관한 인식이나 규범이 부족하고, 자녀가 성년이 된 이후에도 곧장 독립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아닌 점 등을 들어 “과거 양육비에 관한 절대적 보호를 선언한 판례의 태도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했다.
법원 결정이나 합의로 양육비를 정하지 않은 협의이혼은 2009년 이후론 불가능해 이번 판결은 기본적으로 ‘2009년 이전 양육비 협의 없이 협의이혼한 경우’에 적용된다. 2009년 이전에 이혼했고,자녀가 1994년 이전에 출생해 만 29세가 넘었다면 과거 양육비 청구권은 소멸된 것으로 간주돼 앞으론 소송을 낼 수 없다. 2009년 이후 이혼했지만 합의 내용에 ‘추후 결정’ 등 여지를 남겨둔 경우에도 이번 판결이 적용될 수 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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